복권 조치로 취업 제한 족쇄 풀려…총수 복귀 임박

경영 공백으로 핵심 경쟁력 저하…사업 환경 급변

정상화 급선무…전략 점검 및 실행 전략 요구할 듯

느슨해진 기강 일소…현장경영 및 파격 인사로 쇄신

AI 등 첨단 기술 확보 본격화…공격적 M&A 추진 전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삼성의 총수가 돌아온다.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15 특별사면으로 복권 조치 됐다. 오는 15일부터 이 부회장은 공식 직함을 달고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벌써 6년째 총수 공백으로 고군분투했던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귀환에 기대감이 감돈다. 

다만 이 부회장이 ‘꽃길’을 걸을지는 미지수다.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된 데다, 주력 사업들의 핵심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등기임원 복귀에 나서는 한편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제 살리기 선봉장 돼 달라” 특명 부여

법무부는 이날 8.15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자를 발표했다. 서민생계형 형사범과 주요 경제인, 노사관계자, 특별배려 수형자 등 1693명을 15일 자로 특별사면·감형·복권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등이 명단에 포함됐다. 

한동훈 장관은 “범국가적 경제위기 극복이 절실한 상황인 점을 고려, 적극적인 기술투자와 고용 창출로 국가의 성장 동력을 주도하는 주요 경제인들을 엄선해 사면했다”며 “생계형 형사범과 장애인 등 온정적 조치가 필요한 대상자들에 대한 사면으로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배려하고자 했다. 아울러 집단적 갈등 상황을 극복하고 노사 통합을 통한 사회발전의 잠재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요 노사 관계자도 대상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면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첫 사면이라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첫 사면을 통해 국정운영 철학을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터라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은 정치인은 제외하는 대신 경제 상황을 고려해 경제인들의 족쇄를 풀어줬다. 

때문에 윤 대통령이 경제인에데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제약을 풀어줄 테니, 보다 왕성한 활동을 통해 경제 위기 극복에 나서달라’는 요구다. 윤 대통령도 이날 출근길)에서 “경제가 활발히 돌아갈 때 (민생경제에) 숨통이 트이기 때문에 (경제 회복에) 방점을 뒀다”며‘민간 경제 활성화를 통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더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족쇄가 풀린 대신 투자·고용에 나서야 하는 기업인들의 어깨가 무거워지게 됐다. 

특히 이번에 복권된 이재용 부회장의 부담은 상당할 전망이다. 경영 공백이 워낙 길었던 탓이다. 삼성 측은 ‘경영 현안을 챙겨왔다’고 밝혀왔지만, 사실상 이 부회장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17년 1월 법정 구속된 뒤 같은 해 8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부회장 측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2심에서 승계 작업이 존재하지 않았고, 명시적·묵시적 청탁 또한 없었다는 점을 들어 2018년 2월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돼 석방됐다. 그러나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심의 판단을 뒤엎고, 지배권 강화를 위한 승계작업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뇌물공여 인정 금액을 50억원 가량으로 늘렸다. 

이후 이 부회장 측은 총수 공백을 막기 위해 대책들을 내놨다. 2020년 3월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의견을 수용해 준법감시위원회를 설립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무노조경영·4세 승계 포기 등을 담은 대국민사과를 했다. 하지만 2021년 1월 실형이 확정돼 다시 법정 구속됐다가 같은 해 8월 가석방됐다. 

수사와 재판, 수감이 되풀이되면서 이 부회장의 운신은 좁아졌다. 더욱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에 따라 5년 간 삼성전자의 경영인으로서 취업할 수 없었다. 해외출장 역시 법무부 장관이 예외적으로 승인해주지 않으면 불가능 했다. 전 세계에 걸친 고급 인맥을 활용해 사업 기회를 만들고 핵심 인재를 영입하는 등 ‘총수’로서 역할이 제한되면서 삼성 내부에서도 ‘총수가 사라졌다’는 말이 공공하게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한 달만 총수가 자리를 비워도 경영상 중요한 결정들이 밀리는 판국인데 오죽했겠느냐”며 “사업상 중요한 기회들을 놓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미래 경쟁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산적한 과제, 악화된 경영환경…곳곳에 ‘암초’

지난 1분기 삼성전자는 3개 분기 연속으로 매출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영업이익도 반도체 초호황기 버금가는 수준을 달성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주가가 떨어진 것은 물론, 증권사들의 목표 주가도 줄줄이 하향 조정됐다.  삼성전자는 ‘초격차 기술력’을 강조하며 반도체 회로 선폭을 밝히는 기술 마케팅을 띄웠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회사의 미래 전략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커진 탓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현재 삼성전자는 투자자가 공감할만한 비전이 사라졌다는 느낌”이라며 “전략 부재를 상쇄할만한 ‘한 방’이 필요하다”고 기적했다. 

이 부회장이 사업부 단위 계획을 조정하거나 조 단위 투자를 지휘하는 등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지 못하면서 단기 대응력뿐만 아니라 중장기 투자 실행력이 떨어졌다. 특히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이 멈췄다. 

이는 경쟁사들에 역전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 세계 D램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또 다시 ‘세계 최고’ 타이틀을 가져갈 태세다. 마이크론은 2020년 176단 낸드를, 2021년 10나노급 4세대(1a) D램을 세계 최초로 생산했다. 이번에도 232단 낸드를 가장 먼저 양산하기 시작했고, 연내 10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급 5세대(1b) D램 양산 계획도 밝혔다. D램과 낸드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추격 중인 SK하이닉스도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업계 최고층인 238단 낸드 개발에 성공했고, 차세대 D램에서도 기술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중이다. 2020년 7월 업계 최초로 3세대 고성능 D램인 HBM2E를 내놓더니, 올해 업계 최초로 HBM3 상용화까지 들어갔다. 지난해 7월부터는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EUV)를 적용한 10나노급 4세대(1a) D램을 양산했다. 해당 칩은 14나노급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전자의 턱 밑까지 쫓아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이끌어 줄 사업들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세계 최초 3나노 양산으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초미세 공정 분야에서 대만 TSMC를 앞질렀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자국 내 제조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파운드리 투자를 늘리고 있는 인텔 등에 측면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자체 개발 의지에도 불구하고 엑시노스 개발 중단설이 끊이지 않는다. 

삼성전자를 스마트폰 제왕으로 만든 모바일 사업도 기로에 있다.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를 포함해 스마트폰 완성도를 둘러싼 논란이 수년째 되풀이되면서 갤럭시 브랜드 충성도가 약해지고 있다. 단적으로 프리미엄폰 시장 점유율은 줄어들고 있다. 올 1분기 전년 대비 점유율 추이를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18%에서 16%로 내려간 데 반해 애플은 57%에서 62%로 확대됐다. 무선이어폰·스마트워치 등 충성 고객군을 늘려줄 웨어러블 제품 성장도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영 환경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활력을 잃는 가운데 거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소비가 얼어붙어 실적 방어를 장담키 어려워졌다. 지난 7월 기대인플레이션이 4.7을 기록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8년 7월 이후 최대치로, 앞으로 1년간 소비자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체감도를 반영하는 소비자심리지수 또한 3달 연속 하락해 86.0에 머물렀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등 핵심 사업이 받는 대외 압력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동맹 참여를 놓고 고심 중이다. 칩4 동맹에 합류한다면 기술이전이나 반도체 소재·장비 확보와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순 있다. 반면 장기적으로 중국 사업이 축소될 수밖에 없고, ‘신뢰와 협력의 대가’로 삼성전자 등에 반도체 제조기술 공유를 요구할 경우 자칫 핵심기술이 경쟁국에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9월 삼성 디지털플라자를 찾아 프리미엄 가전을 체험하고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의 등이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 노출돼 눈길을 끌었다. 이때 이 부회장은 재판이 이어지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 국내외 사업장을 챙겼는데, 이날도 세트부문 사장단과 전략 회의를 가지자 마자 삼성 디지털프라자로 직행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9월 삼성 디지털플라자를 찾아 프리미엄 가전을 체험하고 있다. 당시 이 부회장의 등이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 노출돼 눈길을 끌었다. 이때 이 부회장은 재판이 이어지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 국내외 사업장을 챙겼는데, 이날도 세트부문 사장단과 전략 회의를 가지자 마자 삼성 디지털프라자로 직행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삼성전자.

이사회 복귀 이후 경영 정상화에 주력할 듯

일단 이 부회장은 중순 이후 경영인으로 복귀할 것으로 점쳐진다.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등기임원 복귀부터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1분기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등기임원은 총 11명이다. 한종희 부회장·경계현 사장·노태문 사장·박학규 최고재무관리자(CFO)·이정배 사장 등 5명이 상근임원으로 분류된다. 반면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2019년 10월부터 미등기임원·비상근임원 상태다. 

등기임원이 돼야 이사회에서 회사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 동시에 경영상 과실에 따른 법적인 책임이 따르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 일가가 등기임원을 맡아 ‘책임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무엇보다 총수가 등기임원을 맡지 않을 경우, 대외신임도에서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기업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한국 기업이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을 동력 삼아 발전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이런 오너가 주요 현안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미등기임원이자 비상근임원의 신분이라면, 자연히 회사가 오너의 비전대로 발전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함께 경영 정상화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3분기부터 실적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높다. 2분기까지는 기초체력으로 버텼지만, 3분기 사업 환경이 불투명하다. 스마트폰·TV·생활가전 등 소비재 판매가 줄면서 메모리반도체 재고가 쌓였고 가격 하락 폭이 커지고 있다. 2분기 매출 성장세가 꺾인 마당에 주요 사업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50조원대에 머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부회장은 사업부문별로 핵심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전략 수정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경영인들에게 수익성 강화와 시장 지배력 확대를 위해 방향성을 조정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총수가 세세한 부분까지 손대지는 않지만, 삼성전자의 부진이 경영 변수에서 기인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나설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 혁신’을 강도 높게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구체적 실행전략을 재정립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 경영을 강화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부회장은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현장을 더 자주 챙겼다. 사법리스크가 커졌던 2020년 상반기에만 20차례가 넘게 국내외 사업장을 누볐다. 주요 임원부터 경영 최전선에 있는 판매직원까지 두루 만나며 작은 부분까지 챙겼다. 이로 인해 국내외 현장 경영에 다시 나설 것으로 여겨진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르면 다음달 미국 테일러시 제2 파운드리 공장 착공식을 시작으로 해외 출장이 잦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아울러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이례적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내부 기밀이 유출되는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전임 특허담당 총괄과 특허 침해를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정평이 나있던 조직 관리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는 징후들이다. 

새 인사개편안으로 연차·성별·국적에 관계없이 등용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파격 인사로 조직의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케팅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미 후임에게 팀장을 맡기고 기존 팀장은 물러나는 형태의 인사 실험이 진행 중”이라며 “조직이든 기술이든 핵심은 사람이기 때문에 확실한 ‘신호’를 보내는 차원에서라도 물갈이는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경영이 안정화 되면 이 부회장은 미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움직일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가장 공격적인 행보가 예상되는 분야는 인수합병(M&A)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하만 인수가 끝으로 유의미한 M&A가 없었다.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차세대 통신 등에서 경쟁사들과 달리 삼성전자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특히 첨단 핵심 기술로 꼽히는 초거대 AI 경쟁에서 삼성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이재용의 시대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삼성의 성장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한 ‘한 방’이 없었다”면서 “4차 산업혁명 이후를 대비해 거시적 관점에서 준비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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