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베트남 출장 확정…현지 사업 점검 후 국내외 투자 구상할 듯

이재용, 반도체 사업 정상화 매진…M&A·고객사 확보 위해 미국行 유력

“사면·복권 당위성 입증해야…실질적 성과 내기 위해 왕성히 움직일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각 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각 사.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경영 제약이 풀린 재계 총수들이 현장경영을 본격화할 조짐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각각 집행유예, 법정구속 되면서 운신의 폭이 제한됐었다. 총수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서 롯데그룹과 삼성은 대규모 인수합병(M&A)과 설비투자 등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웠다. 지난 15일 나란히 사면·복권된 두 총수가 그룹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조만간 두 총수가 산업계 동향을 살피고자 해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신동빈 회장은 사면·복권되자마자 광폭 행보를 예고한 상태다. 현재 일본에 머물며 그룹의 미래 전략을 구상 중인 신 회장은 베트남행을 결정했다. 신 회장은 다음달 2일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열리는 투티엠 에코스마트시티 기공식에 참석한 뒤 현지 사업을 점검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최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재계 5위의 위상이 무색할 만큼 삼성, SK, 현대차, LG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재계 순위로 아래지만, 유통 비중이 상당한 사업 구조를 지닌 GS그룹과 견주어 봐도 미래 경쟁력 측면에서 아쉽다. GS그룹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며 바이오·친환경·첨단 기술 등으로 영역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롯데그룹은 유통과 호텔, 식품 등 주력사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취약점이 드러난 가운데 성장 동력 확보가 더뎠다. 체질 개선과 사업 확장에 속도를 올려야 할 시점이다. 이 같은 고민이 신 회장의 베트남행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2022 하반기 VCM에서 계열사 주요 경영진의 의견을 듣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2022 하반기 VCM에서 계열사 주요 경영진의 의견을 듣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롯데그룹의 모태는 유통사업이다. 유통사업 특성상 꾸준한 소비 수요가 발생하는 지역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중국사업에 힘을 줬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 조치로 타격을 입었다. 한때 119곳에 달했던 점포들은 문을 닫았고 마지막 남은 롯데백화점 청두점도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탈중국을 택한 롯데그룹이 눈을 돌린 곳이 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이다. 아세안 지역은 인구 6억7000만명에 각 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총합이 3조달러를 웃도는 거대 시장이다. 코로나19 여파에도 5%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소비력을 지닌 계층도 증가하고 있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 또한 높은 편이다. 또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어 다양한 서비스를 추진할 수 있다. 오프라인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 중인 롯데그룹으로서는 성장 잠재력이 높고 구매 여력이 충분한 아세안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실제 롯데마트는 2008년 진출 이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각각 15곳, 49곳의 점포를 운영하며 사세를 넓히고 있다. 

아세안 지역 중에서도 베트남은 롯데그룹이 가장 공을 들이는 곳이다. 규모가 큰 만큼, 파급력이 상당해 베트남에서 성공할 경우 아세안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용이하다. 1998년 롯데리아를 시작으로 베트남 시장에 문을 두드린 롯데그룹은 다양한 사업을 영위 중이다. 롯데리아는 38개 이상 지역에 270여개 매장을 운영하며 입지를 굳히고 있고, 롯데백화점·호텔롯데·롯데면세점·롯데물산·롯데건설 등 총 19개 계열사가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룹의 방향성을 점검하기에 최적의 지역인 셈이다. 

게다가 초대형 프로젝트도 진행될 예정이다. 롯데건설이 진행할 투티엠 에코스마트시티는 5만㎡ 부지에 연면적 68만㎡ 지하 5층 지상 60층 규모의 쇼핑몰과 오피스·호텔·아파트·금융시설 등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총사업비만 9억달러(약 1조1600억원)가 투입된다. 때문에 신 회장은 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 현지 유통 사업도 면밀하게 살피고 해외 진출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 혁신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해 산업계 지형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바이오·헬스케어·미래 모빌리티 등 신사업을 포함해 37조 국내 투자 밑그림도 그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앞다퉈 투자를 본격화하며 사업 다각화에 힘을 싣고 있다. 호텔롯데는 블랭크코퍼레이션 지분 18%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절차가 마무리 되면 호텔롯데는 블랭크코퍼레이션의 2대 주주로 올라선다. 블랭크코퍼레이션은 마약베개 등 생활용품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홍보방식으로 입소문을 탔다. 롯데그룹의 온라인 경쟁력을 끌어올려줄 한 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전에 참전했다. 석유사업의 변동성을 상쇄하고 성장 추진력을 얻기 위해 롯데케미칼은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전기차 배터리 필수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세계 5위다. 3조원이라는 자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인수에 성공하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일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신 회장이 경영 보폭을 확대하면서 재계 안팎의 시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쏠리는 분위기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 캠퍼스에서 열린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하며 공식 복귀를 알렸다. 그는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며 기술 경영, 품질 경영이라는 삼성의 ‘초심’을 상기시켰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 그룹의 핵심자원들이 경쟁사들에 밀린다는 우려가 높아진 만큼, 이 부회장이 국내외 사업장을 찾아 분위기 쇄신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 부회장은 매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까닭에 움직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공판이 없는 추석연휴를 이용해 해외 출장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출장에 나설 경우, 미국행이 가장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제2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데, 그동안 행정 절차로 인해 착공식을 연기해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착공식이라는 이벤트만 열리지 않았을 뿐,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테일러 공장은 해외 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착공식에 참석해 공사 진행상황을 점검할 수 있다. 

반도체 사업은 ‘오너’ 이재용의 고급 인맥이 필요한 상황이다. 파운드리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은 선주문 후생산 구조다. 2024년 하반기 제품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 고객사 주문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TSMC는 다음달 3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칩 양산에 앞서 애플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이 부회장은 미국, 아시아, 유럽 등 세계 유수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주요 경영진과 교류해왔다. 지난해 11월 미국을 찾았을 때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구글 등 ICT기업 리더들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버라이즌, 디시 네트워크 수주 과정에서 자신의 황금 인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무엇보다 미국발(發) 변수가 커지고 있어, 이 부회장의 조력이 절실하다. 미국은 제조기술력을 갖춘 한국을 끌여들여 중국에 대한 기술 장벽을 쌓을 심산이다. 반도체법에도 세제 혜택과 같은 지원을 제공하는 대신 첨단 반도체 시설 증설을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넣었다. 이대로라면 삼성전자는 중국 사업장 설비투자가 어렵게 된다. 삼성전자에서 생산하는 낸드의 약 40%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사업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이 정·재계 인맥을 동원해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율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M&A 타진하기 위해서도 미국행을 강행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반도체 설계 역량은 시스템반도체 성능을 좌우할 정도로 핵심 기술이지만, 삼성전자는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인 ARM이 매물로 나온 터라, ICT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에서 시장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인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독려하고 M&A 후보군을 살필 요량으로 DS미주총괄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를 찾을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 정상화에 시동을 건 점도 미국행을 점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사면·복권 후 반도체부터 챙겼다. 반도체 사업은 최근 1~2년 사이 위기 징후가 뚜렷해졌다. 매출 비중이 높은 D램과 낸드플래시 사업은 후발주자들에게 ‘신기술’ 추격을 허용했다.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견인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서도 세계 최초 3나노 양산에 성공했지만, TSMC가 제품 양산 전에 고객사를 확보하며 매섭게 따라 붙었다. ‘철수설’을 부인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역시 갤럭시S23 시리즈 탑재가 불분명하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반도체 사업의 발원지이자 초격차의 산실인 기흥캠퍼스를 찾은 것은 사업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 위해서였다.

재계에서는 그룹의 성장 엔진 재점화 외에도 신 회장과 이 부회장이 대외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본다. 두 총수는 전사 차원에서 경영 전략이 불분명해진 가운데 복귀의 당위성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자면 단기적으로는 고용·투자를 챙겨야 하고, 정부의 ‘민간경제 활성화’ 기조에 걸맞게 사업 영업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지만, 두 그룹만은 정부의 기대에 일정 부분 ‘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실질적 성과를 내려면 총수가 움직이는 게 최선이다. 당분간 신동빈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바쁘게 국내외를 오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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