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A 기술 적용한 3나노 공정 양산 돌입…고성능 HPC용으로 공급

세계 최초 공정에 차세대 기술 승부수…“TSMC와 격차 줄어들 것”

SAFE 협력사들과 수율 개선 총력…고객사 300곳 이상 유치 목표

이재용, 파운드리 임원 교체 등 초강수…기술 초격차 가속화 전망

삼성전자가 30일 GAA 기술 기반 3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다. 영상.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가 30일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양산을 시작했다. 종합반도체기업으로 메모리와 시스템을 모두 챙겨야 하는 입장인 데다, 4나노 공정 파운드리 수율 논란을 겪었던 만큼, 삼성전자가 양산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2022년 상반기 내 양산’ 약속을 지키며 세계 최초 신기록을 가져갔다. 시장의 비관적 전망을 딛고 양산을 성공한 배경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파운드리 조직 재정비라는 초강수까지 두며 3나노 성공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 특히 이 부회장이 ‘초격차’를 강조하며 기술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중을 밝혔다는 점에서 TSMC 추격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처음만으론 만족 못해” 최초에 최초를 더한 삼성전자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 수요가 증가했다. 반도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회로 간격을 줄여야 한다. 웨이퍼에 더 미세하게 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미세 공정은 반도체 성능 외에도 수익성과도 직결된다. 정밀하게 새길수록 불순물을 씻어내고 새기는 과정을 줄이는 한편, 웨이퍼 한 장당 나오는 반도체 숫자를 늘릴 수 있다. 생산성이 향상되는 만큼, 이윤이 늘어난다. 

회로의 간격을 뜻하는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다. 성인 머리카락 한 올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워낙 세밀하다보니 나노 수를 줄이는 건 녹록치 않다. 다만 나노 수 하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성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된다. 4나노와 비교하면 3나노는 소비 전력은 25~30% 줄고, 연산 능력은 10~15% 빨라진다. 미세 공정에 힘을 싣는 이유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회로를 정밀하게 그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나노 하나를 줄인다는 것은 현재보다 더 미세하게 회로를 새긴다는 의미인데, 선단공정 기술력을 진전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존 핀펫 대신 신기술을 사용했다. 차세대 트랜지스터 기술인 GAA에 독자기술인 MBCFET 구조를 적용했다. 반도체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과 채널을 제어하는 게이트로 구성된다. 반도체 크기가 줄어들면 트랜지스터 크기도 작아져야 한다. 문제는 게이트 역시 작아져 전류가 중간에 새는 등의 문제가 발생해 채널을 제어하기 어려진다는 점이다. 공정 미세화로 인해 트랜지스터 성능이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GAA는 채널의 4면을 게이트가 둘러싼다. 게이트 면적이 넓어지면서 채널 제어 능력이 높아진다.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이 그만큼 올라간다. 채널 또한 얇고 넓은 모양의 나노시트 형태로 만들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반도체 성능은 게이트와 채널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느냐에 달렸는데, 나노시트의 폭을 조정하면 채널의 크기를 다양하게 변경할 수 있어 핀펫이나 일반적인 나노와이어 GAA보다 전류를 더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GAA 1세대 공정은 기존 5나노 핀펫 공정과 비교해 전력을 45% 절감하고 성능은 23% 향상된다. 반면 면적은 16% 줄어든다. GAA 2세대는 전력 50% 절감, 성능 30% 향상, 면적 35% 축소된다. 더 작지만 성능과 전력 효율이 우수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도 D램처럼” 기대감 들뜬 업계 

삼성전자의 3나노 성공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삼성전자가 신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이를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관련 생태계가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고 이듬해 메모리 시장 1위로 올라선 뒤 국내 메모리반도체 생태계를 견고해졌다. 일본, 미국, 중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이 빠르게 향상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 세계 최초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 반도체 기술발전이 이뤄졌다”며 “파운드리에서의 도전정신이 국내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반도체  패키징 테스트 외주업체(OSAT) 등에도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흐름도 긍정적이다. 팹리스 중에서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경우, 반도체의 크기를 줄이되 다양한 기능을 넣어야 하는 까닭에 선단공정을 이용해왔다. 최근에는 애플, 구글, 아마존, 테슬라, 페이스북처럼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생산은 파운드리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어 선단공정 주문량이 밀려들고 있다. 

특히 3나노 파운드리는 빠르게 성장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3나노 이하 공정의 매출은 올해 39억7100만달러로 시작해 2024년에는 5나노 공정 매출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85%에 달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3나노 양산이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을 점친다. 파운드리 사업은 일종의 수주산업이다.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선제적으로 고객사를 확보해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신기술을 먼저 내놓은 파운드리 업체가 고객사를 쓸어간다. 파운드리 업체들이 벌써 2나노 공정 개발 계획을 내놓으며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TSMC를 추월하면서 두 회사 간 격차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3.6%, 삼성전자 16.3%로, 두 회사의 격차가 3배 이상이다. 미세 공정 분야로 좁히면 TSMC 60%, 삼성전자 40%로 차이가 확 줄어든다. 이에 두 회사의 위치가 역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세를 고려하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지난해 매출은 약 169억달러로 추산된다. 자체 매출집계가 시작된 2018년 117억달러와 비교해 연평균 약 13%의 고성장을 이어왔다. 파운드리 시장 연평균 성장률(12%)을 웃도는 수준이다. 고객사 역시 30곳에서 3배 이상 증가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3나노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팹리스라면 GAA 기술을 먼저 내놓은 삼성전자로 눈을 돌릴 것”이라며 “퀄컴, 엔비디아, AMD 같은 탑티어급 주문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역시 관건은 수율이다. 공정 미세화가 진행될수록 수율 관리가 어려워진다. 4나노 공정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이 저조하면서 퀼컴을 비롯한 고객사들이 TSMC에 주문을 맡겼다. 3나노 수율은 2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한 수율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고객사 확보가 요원해진다. 수율이 60%는 돼야 글로벌 빅테크들이 움직인다. ‘맞춤형’ 제품이기에 수율이 낮아도 양산을 가능하지만, 생산시간과 비용이 증가해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 “나노 수에 연연해선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율 개선이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TSMC는 올해 하반기, 인텔은 내년 하반기부터 3나노 양산에 들어간다. 짧게는 수 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여유가 있어 기술을 검증하고 고도화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재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수율 문제를 겪는 것은 TSMC도 마찬가지”라며 “삼성전자는 최소 반년의 시간동안 기술을 최적화시킬 수 있으므로, 수율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도 데일리임팩트에 “초반 수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면서 “먼저 시작한 만큼 검증할 시간도 많기 때문에 TSMC보다 앞서 수율을 안정화시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수율 확보와 신규 고객사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반도체 설계와 검증, 적용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시높시스, 케이던스 등 SAFE 협력사들과 함께 반도체 설계 인프라·서비스를 제공, 빠른 시간에 제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성능 컴퓨팅(HPC)용에서 모바일 시스템온칩(SoC)로 영역을 넓힌다. 첫 주문은 중국업체로 알려져 있는데, 2026년까지 글로벌 빅테크를 포함해 300곳 이상 고객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기술 기술 기술’ 초격차 의지에 파운드리도 반전 드라마

시장에서는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는 선단 기술을 내놓기만 하면 빠르게 정상을 차지했다. 메모리반도체에서도 지장 진출 10년 만에 1위로 등극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5년, 별도의 사업부로 독립해 투자가 본격화된 것은 2017년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 17년 만에 TSMC를 미세 공정 분야에서 제칠 기회를 잡았다. 

삼성전자가 예정된 시간 안에 3나노 양산에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추측이 조심스레 제기됐었다. 반도체 사업 전반에 걸쳐 기술력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메모리는 수성, 시스템은 공격이라는 투트랙 전략으로 기술 우위를 입증해야 했다. 게다가 연간 매출 280조에 육박하는 거대 조직인 만큼, 스마트폰과 IT, 생활가전, TV 등 다른 사업들도 챙겨야 했다. 파운드리에만 공력을 쏟을 수 없다는 얘기다. 

수차례 시점을 못 박았기에 양산 일자가 늦춰지면 자칫 대외 신임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차질 없는 양산’에 초점을 맞췄다. 이달 초 파운드리사업부를 메모라반도체 담당 임원들에게 맡겨 분위기를 쇄신했고 3나노 GAA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수율 관리에 들어갔다. 

이 부회장은 파운드리가 삼성전자의 전기를 열어줄 마중물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2018년과 지난해, 그리고 올해 천문학적인 반도체 투자안을 내놨는데 적지 않은 액수가 파운드리 기술 연구개발과 증설에 투입된다.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 장비 수주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2020년과 이달 초 네덜란드 ASML을 찾아 장비 협상을 했다. 업계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물량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 등 내부 구성원들을 향해 초격차 정신을 상기시키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 부회장의 의지에 힘입어 파운드리 사업도 기술 리더십을 갖추게 되면서 반도체 비전 2030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새 공정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기술을 선보였다는 것은 승부수를 던졌다는 의미”라며 “2나노 등 선단공정에서 주도권을 잡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의 초석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가 2나노 양산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2025년 2나노 양산에 들어간다. TSMC도 같은해 GAA 기반 2나노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텔은 삼성전자, TSMC보다 빠른 2024년 하반기께 GAA를 적용한 2나노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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