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중심 체제 유지…총수 공백으로 경영 리스크 증대

품질관리부터 조직체계까지 곳곳서 누수…재정비 필요

‘이재용 부회장 승진‘ 관측 높지만…“준법경영 의지 고려해야”

기업가 능력 입증에 관심…등기이사 맡아 책임·권한 동시 강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최근 재계의 뜨거운 감자는 삼성이다. 리더십의 변화 징조가 포착되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분에 삼성은 견조한 성과를 올렸지만, 주가 흐름은 좋지 않았다. 차기 총수가 제시한 미래 비전과 전략이 구체화되지 못해서다. 삼성의 ‘넥스트 스텝’에 대한 기대도 줄어들었다. 

그랬던 삼성의 경영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룹 차원에서 5년간 450조원 투자 계획을 내놓은 뒤 성장 엔진을 달구기 위한 전략들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메모리와 위탁생산(파운드리), 설계(팹리스), 바이오 등 분야별 중장기 실행계획이 확정됐다. 특히 다시 초격차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삼성의 도전정신이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적 관리에 무게를 실었던 점을 고려하면 확연한 변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폭을 넓히고 있는 만큼, 조만간 리더십 변화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명분은 만들어졌다

그룹이 해체되고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삼성의 구심점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그리고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은 회사의 리스크가 됐다. 

삼성의 투자 속도가 느려졌고, 주력사업에서 기술 격차가 좁혀졌다. 벌써 2년여 전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내줬다. 애니콜 화형식까지 불사하며 독려했던 품질경영에서도 잡음이 발생했다. 갤럭시 스마트폰과 생활가전 등에서 품질 문제가 연거푸 터졌다. 위기관리 측면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핵심 기술 유출 시도가 잦아졌고 회사를 겨냥한 특허 분쟁 역시 증가했다. 경영 기조부터 체계까지 모두 흔들린 셈이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라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삼성이기에 확대 해석됐다고 반박한다. 그렇지만 재계의 진단은 다르다. 문제가 누적되고 공론화 됐다는 자체가 부정적 신호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이전까진 적시에 깔끔하게 대응해 논란의 불씨를 남기지 않았던 거고,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누수가 발생했다는 의미”라면서 “이처럼 관리의 삼성이라는 신화에 균열이 간 데에는 리더십의 공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그룹보다 강력한 오너 리더십을 내세우고 있는 까닭에 총수가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총수의 부재로 인해 삼성 내부의 기강이 흐트러졌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 부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총수로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부회장의 직위 변화를 더 이상 늦출 명분도 마땅치 않다. 8.15 광복절 특별 복권으로 경영 제약이 풀렸다. 다른 그룹 총수들과 비교해도 체제 안정화 기간이 길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와병 이후 이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왔다.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이후 이 부회장 승진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게다가 이 부회장의 행보는 승진설에 불을 당길 법하다. 경영 보폭을 넓혀가고 있어서다. 국내외 사업장을 누비며 현지 시장을 살피고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바이오의약품 위탁 개발·생산(CDMO)처럼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챙겼다. 여성, MZ세대, 비주력 계열사 임직원 등 보다 다양한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한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2기 위원들과도 만났다. 총수 자격으로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당시 양국 정상의 평택공장 시찰을 안내했고, 2030 부산국제박람회 유치전을 뛰고 있다. 이 같은 광폭 행보는 ‘삼성의 총수’라는 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회장 승진을 앞두고 대내외 여론을 조성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6년 만에 열리는 임시 주주총회 역시 이 부회장의 승진과 무관치 않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번 주총에서 삼성전자는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허은녕 서울대 공대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두 사람의 이력을 보면, 삼성전자가 대외 대응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읽히기 떄문이다.

유 전 본부장은 산업부 통상교섭실장과 통상교섭본부장을 거쳐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를 지냈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허 교수는 세계에너지경제학회 부회장, 한국혁신학회 회장,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두 사람 모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이사회 전문성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들이기에 회장 승진에 따른 부정적 이슈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판을 깔렸다는 점에서 오는 27일 정기 이사회에서 이 부회장 승진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이뤄진다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11월1일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이나 11월19일 이병철 창업주 35주기가 유력하게 거론되는데, 이사회가 바로 직전에 열리기 때문이다.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비판여론 등 역효과는 부담

다만 이 부회장의 승진이 꽃길을 보장할지는 알 수 없다. 이 부회장이 실질적 총수이기에 ‘셀프 승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이 부회장의 과거 발언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려우나, 앞으로 그룹 회장이란 타이틀은 없을 것이고, 와병 중이신 이건희 회장님께서 마지막으로 삼성그룹 회장님이란 타이틀을 가진 분이 되실 거라고 저 혼자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2020년 대국민사과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며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이 부회장이 미등기임원 상태라는 점도 현 시점에선 유리하지 않다. 오너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경영인데, 미등기임원이라면 성립되지 않는다. 실제 10대 그룹 중 미등기임원이 총수인 곳은 삼성과 한화그룹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 일가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 재직하면서 권한과 이로 인한 이익은 향유하면서도 그에 수반되는 책임은 회피하려 한다”고 미등기임원 재직을 문제 삼았다. 

기업법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취업 제한 문제가 있었을 땐, 미등기·무보수 임원이라는 점을 내세워 법망을 피해갔지만, 회장 승진을 하고자 한다면 그런 변칙에 기대선 안 된다”며 “준법 경영은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므로,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등기임원이 되면 이사회 활동, 보수 등이 공개되고 경영적 판단에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 만큼, 경영 투명성이 제고되고 절차적 당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법적 시비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반(反)삼성 여론이 결집될 걱정도 덜 수 있다. 

이 부회장도 직함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경영자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의중을 여러 차례 내비치며, 주변의 회장 승진 권유를 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의 결별을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승진을 서두르기보다 이사회 입성 후 의장을 맡아 경영을 안정화 시키고 삼성에 맞는 지배구조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데일리임팩트에 “이 부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단정할 순 없다”면서도 “자신이 한 말을 뒤집고 승진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될 수 있는데, 4세 경영 무승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 소장은 이어 “삼성의 1인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 직책에 연연할 필요성이 현저히 낮다”며 “경영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하되 책임경영을 강화하고자 이사회 의장을 맡는 방안이 묘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