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간 450조 투자·8만명 고용…고용유발 효과만 107만명 ‘역대급’

반도체 경쟁력에 초집중…메모리-팹리스-파운드리 ‘동반 성장‘ 초점

240조 투자 약속 1년 만에 대폭 증액…“총수 복귀 염두한 듯“ 해석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가운데)이 지난해 네덜란드 ASML 공장을 찾아 관계자와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와 함께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가운데)이 지난해 네덜란드 ASML 공장을 찾아 관계자와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와 함께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2020년 평택 투자 결정 이후)

삼성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래에 베팅했다. ‘투자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대로 이재용 부회장은 대규모 투자·고용을 통해 삼성의 도약을 이끌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24일 삼성이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5년 간 국내외에 450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고, 8만명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연평균 투자 규모를 30% 이상 늘리면서 전체 투자액은 지난 5년간 투자액(330조원)보다 120조원 증가했다. 

이에 투자 규모는 우리나라 올해 예산(607조원)의 약 74%에 해당하고, 고용 유발 효과는 107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액과 효과 모두 역대급이다. 재계 맏형으로서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고 국가 경제의 성장엔진에 불을 붙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평가다. 

‘성장 동력 못 만들었다’…통렬한 성찰 

삼성이 내놓은 투자 계획을 관통하는 단어는 역동과 혁신, 미래다. 경쟁사와 비교해 기술 우위에 서지 못했고,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는 성찰이 담겼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또 다시 투자계획을 확정지을 것으로 봤다.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에서 풀려난 2018년과 2021년 삼성은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경영 공백을 메우려면 공격적으로 ‘쩐의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올해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회사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위기론에 직면했다. 삼성전자는 3개 분기 연속으로 최고 매출액을 경신하고, 영업이익도 반도체 초호황기 버금가는 수준을 달성했다. 전자업계의 비수기로 불리는 1분기에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저력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성적과 달리 시장의 우려는 점차 증폭되던 상황이었다. 1분기 실적 설명회에서는 회사의 기술력을 지적하며 미래 전략을 묻는 애널리스트들의 질문이 계속됐다. 관련업계의 평가도 유사했다. ‘실속 없는 성장’이라는 자적까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전자공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중요한 건 비전인데, 삼성전자의 제품과 서비스에서는 그게 불분명하다는 인상”이라며 “매출과 기업가치가 반대로 가는 흐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길어지면서 산업구조 재편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메모리반도체에서는 경쟁사들의 추격이 턱 밑까지 따라 붙었고,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에서는 좀처럼 점유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LG전자 등 경쟁사들이 전략적 인수·합병(M&A)을 단행하면서 인공지능(AI)과 차세대 통신, 전장 등 미래 유망 사업에 매진하면서 매출과 시장 내 영향력을 모두 키우는 모습과 대비된다. 반도체에 투자가 집중된 이유다. 성장 가능성이 큰 핵심 전략 사업에 집중해 시장 개척과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4일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인터페이스 'UFS 4.0' 규격의 고성능 내장형 플래시 메모리를 업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4일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인터페이스 'UFS 4.0' 규격의 고성능 내장형 플래시 메모리를 업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진. 삼성전자

핵심은 ‘반도체’…살아나는 공격본능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산업이자 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다. 다만 반도체가 ‘중추’ 역할을 하는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공급난을 겪으면서 반도체는 안보 전략무기로 부상했다. 세계 각 국은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무한 경쟁에 들어갔다. 중국은 2030년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매년 첨단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고 있다. 신규 반도체 건설 계획만 28개, 투자금도 26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52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시설 투자 시 세액의 25%까지 공제해주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가져오겠다는 목표 아래 430억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 일본 또한 경제안보법을 의결하고 5000억엔의 재정 지원을 하기로 했다. 

각 국의 지원을 노린 기업들의 투자 경쟁도 달아올랐다. 미국 인텔은 지난해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뒤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4월 20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신설 계획을 발표한 지 5달 만에 10년 간 950억달러를 들여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 신규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올 1월에는 200억달러를 추가해 미국 오하이오 주에 2개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로 했고, 곧이어 2월에는 이스라엘 반도체 기업인 타워 세미컨덕터를 54억달러에 사들였다. 

대만 TSMC 역시 전투적이라는 표현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투자 행보가 가파르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등지에 내년까지 1000억달러를 투자해 6개 공장을 짓는다. 일본에서는 소니, 덴소와 손잡고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립한다. 싱가포르, 이탈리아 등에서도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TSMC의 올해 투자액은 지난해(300억달러)보다 40% 가량 늘어난 400억~44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생산능력을 증강시키는 것과 함께 기술적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 후공정에 강한 일본과 함께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확보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투자를 늘리기는커녕, M&A도 지연되고 있다. 최근 단행한 대규모 투자는 지난해 미국 제2파운드리 공장 신설 건이다. “3년 내 유의미한 M&A” 실현을 약속했지만 벌써 1년 넘도록 깜깜 무소식이다. 

압도적 기술 우위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초=삼성'이라는 공식에 균열이 갔다. 이와 관련, 미국 마이크론은 176단 낸드 플래시를 먼저 개발한 데 이어 올해 말 232단 신제품 양산을 예고했다. 미국 웨스턴디지털도 단위 면적이 가장 작은 162단의 낸드플래시를 조만간 출시하고, 2024년까지 200단 이상의 초고층 낸드를 양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새 먹거리로 육성 중인 파운드리에서도 경쟁사들이 먼저 초미세 공정기술 청사진을 제시했다. 인텔은 2025년 2나노 양산을 선언했고, TSMC는 하반기 3나노 양산이 들어가기도 전에 1.4나노 공정 개발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반도체 설계(팹리스), 파운드리의 삼각편대를 형성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메모리반도체에서 첨단기술을 먼저 적용해 리더십을 다질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지난해 10월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한 14나노 D램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 D램은 미국 마이크론의 10나노급 4세대 D램보다 선폭이 짧아 앞선 기술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14나노 D램 생산에 EUV 장비를 활용하는 레이어(층)를 5개로 확대해 업계에서는 최초로 멀티 레이어 공정을 사용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EUV 가술을 조기에 도입하고 미세공정의 한계를 깰 수 있는 신소재·신구조에 대한 연구개발(R&D)를 강화해 시장 점유율을 늘릴 예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1분기 D램 점유율은 43.5%로 지난해 4분기 대비 0.7%포인트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입지를 넓혀가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태계 조성에 앞장선다. 고성능·저전력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초고속통신 반도체, 고화질 이미지센서 등 팹리스 시스템반도체와 센서가 주 공략대상이다. 

시스템반도체는 데이터를 센싱하고 분석·처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반도체로 종류가 8000여종에 이른다. 용도와 수요가 사실상 무한대라 시장 규모는 메모리반도체의 2배 이상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5년 4773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다만 중앙처리장치(CPU)는 인텔,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엔비디아, 시스템온칩(SoC)은 퀄컴, 이미지센서는 소니 등 선두주자의 자리가 공고하다.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의 모바일 SoC, 이미지센서 등에서 1위와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아울러 국내에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파운드리 사업의 목표는 점유율 1위다. 세계 1위로 도약한 경우, 삼성전자보다 큰 기업이 국내에 추가로 생기는 것과 비슷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추격의 고삐를 죈다.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해 3나노 이하 제품을 조기 양산하고 차세대 패키지 기술을 확보해 연산기능을 갖춘 메모리반도체 솔루션을 개발해 1위 TSMC와의 점유율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조 바이든(왼쪽에서 두번째)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윤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조 바이든(왼쪽에서 두번째)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윤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맏형의 책임’ 강조했지만…윤 정부와의 관계 염두

삼성은 지난해 8월 2023년까지 240조 투자·4만명 고용을 약속한 지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투자액과 고용인원을 대폭 늘렸다. 국가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일자리 창출에 적극 기여해 국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마중물이 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ㄷ. 삼성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핵심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향상시켜 사회 전반에 역동성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한국 대표기업으로서 ‘경제 재도약’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경제안보 측면에서 반도체·바이오 공급망을 국내에 두는 것은 단순히 수치 이상의 전략적 의미가 있다”며 “사업의 성공이 연관산업 발전과 국민소득 증대, 국가 경제 발전을 이끌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계 주요그룹 중에서도 압도적 투자·고용 계획을 내놓은 것은 책임의식의 발로였다는 얘기다. 

재계에서는 발표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성장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긴급 처방일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하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오는 25일 중소기업중앙회 출범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윤석열 대통령과 재회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하루 앞두고 투자·고용계획을 밝힌 것은 앞으로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민간 중심 경제를 강조하면서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초격자 전략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초강대국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게다가 지난주 조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반도체가 한미 기술동맹의 핵심임을 천명하면서 삼성전자의 역할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삼성이 지난 5년간 투자액(250조원) 대비 40% 늘어난 360조원을 국내에 쏟아 붓는 이유다. 윤 정부의 국정 운영 구상에 힘을 실어줘 우호적 관계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을 둘러싼 경영 환경을 낙관적이지 않다. 이 부회장의 ‘선제 투자론’을 적용하기엔 대외 변수가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 연준의 고강도 긴축, 새 정부 출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안보 동맹 합류, 중국의 IPEF 보복 가능성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는 ‘투자는 보수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전략적 투자의 밑그림임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띈다. 투자계획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난해 계획안에서 액수가 늘었을 뿐 내용면에서 대동소이하다. 배터리·로봇과 같은 분야는 이번에는 제외됐다. 대신 동반 성장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소개해 사회와 호흡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는 이 부회장의 소신을 재확인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을 의식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 안팎의 위기론은 역으로 생각하면 전문 경영인의 역량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업종을 막론하고 ICT 기술 경쟁이 치열한 지금 같은 때엔 이 부회장의 발이 묶이면서 기업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 이재용이라는 구심점이 절실한 만큼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구축해 경영 족쇄를 풀어보자는 기대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