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행사나 메시지 없이 예정된 일정 소화

급박한 기업 환경·달라진 조직문화 고려한 듯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제가 (뉴삼성을 만드는 길) 그 앞에 서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7일 부회장으로 오너 경영인으로 입지를 다진 지 10년 만에 승진했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356조3960억원이고, 올해 연간 매출 300조원을 돌파할 예정이다. 전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이자 메모리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첨단산업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각 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글로벌 기업의 사령탑으로 공식 직함을 달았음에도 이 회장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 중요한 현안을 챙기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 사내게시판을 공유 취임 일성도 이틀 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2주기 당시 사장단에게 전한 각오였다. 

이 회장의 ‘조용한 승진’을 두고 재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대한민국 대표기업 리더인 데다, 삼성은 수년간 총수 부재의 리스크가 있었지 않느냐“며 ”사기 독려 차원에서 ‘이벤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따로 메시지를 내거나 사내 행사를 갖지 않은 배경에는 승진이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부친인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왔고,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삼성그룹 동일인으로 지정되며  총수로 인정받았다. 2020년 10월 부친이 별세한 뒤에는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됐다. 이 회장은 5월 한미 양국 정상이 평택캠퍼스 시찰 때 안내를 맡았고, 7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장단과 회동하는 등 삼성의 대표자로 역할했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라는 부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날도 이 회장은 서초동으로 향했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법적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승진을 대대적으로 공표하기엔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회장의 실리주의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만 놓고 보면 3분기 최대 성적이지만, 영업이익은 30%나 급감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3분기 연속 분기 최대 매출을 경신했음에도 주가는 신저가를 찍는 등 다른 흐름을 보였다. 삼성전자의 미래 비전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형식을 앞세우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회장이 ‘뉴삼성’에 대한 구상을 다시 밝히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회장은 ‘뉴삼성’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한 이래 경영 철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미래 준비를 위해 기술 리더십을 강화하고, 반도체·바이오·차세대 통신·인공지능 등에서 동력을 만들겠다”며 투자 계획을 구체화 했다. ‘말 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재계 총수들은 허례허식에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20년 10월 회장 취임 당시 사내 방송을 통해 취임의 변을 밝혔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2018년 6월 임시 주주총회서 등기이사로 선임되고 이사회에서 회장 직함을 받자 이사회 인사말로 취임사를 대신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1년 임원 인사 때 취임을 알렸다. 선대 회장들처럼 경영철학을 공유하는 행사를 열거나 ‘OO경영’처럼 브랜드화 하기엔 기업 환경과 조직 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재무관리나 경영 전략만으로 기업의 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미·중 갈등, 전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변수가 단기 실적은 물론, 중장기 목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울러 임직원 가운데 MZ세대 비중이 높아지고 회사와 직업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어, 과거처럼 제왕적 리더십을 부각시킬 수 없게 됐다. 

특히 비교적 보수적이었던 삼성전자 내부 분위기는 요즘 바뀌고 있다. 직원들이 경쟁사인 애플의 아이폰을 들고 이 회장을 거리낌없이 사진을 찍을 정도다.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소속감이 달라졌음을 방증한다. 

때문에 이 회장이 오너 경영인으로서 무엇을 보여줄지에 대해 시선이 쏠린다. 굵직한 투자를 결정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 엔진을 가열하는 외에 그룹의 DNA를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할 시점이라서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데일리임팩트에 “이 회장이 취임 메시지를 내지 않은 건 아쉽다”면서 “삼성전자의 역성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때, 오너 리더십을 부각한 건 이 회장의 결의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의 구상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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