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부문 이끄는 경계현 사장 ”내용적 1등 강조

TSMC. 올해만 440억달러 투자…삼성의 4배 수준

세계 최초 3나노 양산에도 애플 등 TSMC 선택

기술 특장점 확실…초미세 공정 1위로 전략 수정

(좌측부터) 정원철 파운드리사업부 상무,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가 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에서 3나노 웨이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좌측부터) 정원철 파운드리사업부 상무,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가 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에서 3나노 웨이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내용적 1등을 달성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의 발언이 일주일 넘도록 회자되고 있다. ‘내용적 1등‘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핵심인 반도체 부문을 이끄는 수장으로 한 발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미심장하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평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반도체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구상을 공식화 한 뒤 설비 증설·신축, 신기술 개발처럼 반도체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재차 목표 달성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왔다. 

그러나 약속의 날까지 남은 기간은 8년도 되지 않는다. 때문에 경 사장의 발언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나아가 시스템반도체 전략 수정을 시사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 1등’ 향한 집념, 메모리 초격차로 이어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함축한 표현은 ‘초격차‘였다.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술력으로 압도하겠다는 게 초격차 전략의 핵심이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고 이듬해 메모리 시장 1위로 올라선 뒤 현재까지 세계 1위를 수성할 수 있었던 것도 초격차 전략의 힘이 컸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공격적으로 설비투자를 늘려왔다. 지난해 설비투자 규모는 43조6000억원, 한 해 동안 반도체에서 벌어들인 매출(94조1600억원)의 46.3%를 시설 확충에 썼다. ‘세계 1등’을 향한 집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덕분에 반도체는 삼성전자의 확실한 현금 창출원으로 자리잡았다.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2분기만 해도 DS부분이 회사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71%에 달했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시스템에서도 초격차 전략이 통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메모리와 함께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말하자면 방어와 공격을 병행해야 하는데, 반도체 산업 특성상 설비는 곧 경쟁력이기 때문에 시스템 투자를 늘리면 메모리에서 그만큼 줄여야 한다”며 ”메모리에서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투자 속도를 조절하기가 어렵다. 시스템은 메모리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450조원 투자 계획은 이러한 고민이 담겼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설계(팹리스)-파운드리의 삼각 편대를 구축할 방침이다. 눈여겨 볼 점은 메모리의 DNA를 응용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고성능·저전력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초고속통신 반도체, 고화질 이미지센서, 파운드리를 공략 대상으로 꼽았다. 모바일과 네트워크 장비 등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부와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시장에서의 비중도 자연스럽게 늘릴 수 있는 분야들이다. 초격차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파운드리는 점유율 1위를 강조하면서도 초미세공정 기술력에 매진할 것임을 밝혔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시장 전체가 아닌, 5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이하 미세 공정 시장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만 TSMC 로고. 사진. TSMC 홈페이지
대만 TSMC 로고. 사진. TSMC 홈페이지

투자에서 밀리고 고객과는 경쟁

삼성전자와 TSMC의 점유율 차이는 상당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기준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 53.6%, 삼성전자 16.3%다. 

투자에서도 양사의 차이는 크다. TSMC는 올해 파운드리에만 440억달러를 쏟아 붓는다. 올해 삼성전자가 120억달러를 파운드리에 투자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TSMC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파운드리 매출을 상회하는 설비투자를 단행하기도 쉽지는 않다. 1분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매출액은 53억2800만달러, 올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해도 연매출은 213억1200억달러다. 시장 전망대로 투자를 집행해도 이미 매출의 절반 이상을 설비에 쓰는 셈이 된다. 

더욱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은 약점을 안고 있다. 삼성전자는 부품과 완제품을 모두 만들기에 파운드리 고객사라도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태블릿 등과 같은 IT 기기 시장에서는 승부를 내야 하는 상대다. 

반면 TSMC는 파운드리만 한다. “TSMC의 성공은 곧 고객의 성공“ “절대 내 제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고객이 설계를 빼앗길 걱정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 TSMC는 고객 영입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큰 손으로 불리는 애플은 TSMC에 3나노 주문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3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한 삼성전자 대신 TSMC를 택한 것은 IT 기기 시장에서 경쟁관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같은 이유로 인텔·퀄컴·미디어텍·엔비디아·브로드컴·AMD 등 주요 업체들도 TSMC에 주문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 사장 역시 “삼성의 시스템 LSI 분야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쪽으로만 집중돼 있어 전반적으로 확대돼 있지 않다“면서도 “일부 고객이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30일 GAA 기술 기반 3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다. 영상.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30일 GAA 기술 기반 3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다. 영상. 삼성전자.

초미세 공정 기술력이 돌파구

다행히 삼성전자는 기술력에서 TSMC보다 앞서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3나노부터 차세대 트랜지스터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에 독자기술인 MBCFET 구조를 적용했다. 반면 TSMC는 3나노까지는 핀펫을 유지하고 2026년 2나노부터 GAA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GAA는 핀펫과 비교해 반도체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GAA 1세대 공정은 기존 5나노 핀펫 공정과 비교해 전력을 45% 절감하고 성능은 23% 향상된다. 반면 면적은 16% 줄어든다. GAA 2세대는 전력 50% 절감, 성능 30% 향상, 면적 35% 축소된다. 

삼성전자가 중국업체 외에 공급망 안정을 위해 생산라인을 이원화하려는 IT 기업을 잡으려면 초미세 공정에 화력을 모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TSMC가 올해 투자액의 최대 80%를 2나노 공정 개발에 쓰겠다고 선언한 만큼,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4나노 이하 공정에 매달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로 인해 경 사장의 “내용적 1위“ 발언은 초미세 공정 집중 전략을 확인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 사장은 “(내용적 1위를 하는 방법으로는) 선단 노드 공정에서 이기는 방법도 있고, 주요 고객에서 이기는 방법도 있다“면서 “3나노를 적극 개발하고, 4·5나노도 성능과 비용을 개선해 내년 말이 되면 파운드리의 모습이 지금과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초미세 공정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비중은 40 대 60”이라며 “3나노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면서 기술력에 자신감이 붙었으니, 초미세 공정에서 ‘1위’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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