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선언 30주년…품질 제고로 초일류·초격차 달성
세계 1위 제품 20여개…글로벌 Top5 브랜드로 성장
대규모 투자·선행기술 확보에도 중장기 성장전략 표류
"패스트 팔로워에 안주…강력하게 견인할 '비전' 필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자로부터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부산 소재 도금 기업 '동아플레이팅'을 방문해 제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자로부터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을 받은 부산 소재 도금 기업 '동아플레이팅'을 방문해 제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듭시다. 제가 그 앞에 서겠습니다."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취임사를 대신해 이 같은 각오를 다졌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이 만든 '초격차'의 신화를 넘어 '뉴삼성'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다만 이 회장의 '뉴삼성'은 현재로선 밑그림에 가깝다. 특히 그룹의 핵심동력인 삼성전자는 대내외 변수로 녹록치 않은 상황. 이 선대회장의 프랑크푸르트선언(신경영선언)처럼 직관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 독한 혁신

6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7일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선언이 30주년을 맞는다. 

신경영선언은 삼성의 사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기업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은 신경영선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국내에 안주하던 삼성이 이건희 선대회장의 주문에 따라 내부 혁신에 돌입, 비로소 글로벌 기업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93년 이 선대회장은 삼성의 성장방정식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삼성의 근간이라 자부했던 '제일주의'가 흔들리는 현장을 목도해서다. 그 해 이 선대회장은 미국 LA 현지 매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먼지를 뒤집어 쓴 삼성의 제품을 발견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장에서는 규격이 맞지 않는 세탁기 덮개를 칼로 깎아서 억지로 맞추는 모습을 확인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1993년 신경영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1993년 신경영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에 같은 해 6월 이 선대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전 세계 임원을 소집했다. 생산·판매 현장에서 위기의 징조를 감지한 그는 새로운 삼성을 위한 특명을 내렸다. 이 선대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된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라며 "자칫 잘못하면 (삼성이) 암 말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선대회장은 양(量)에서 질(質)로 경영 기조를 완전히 바꾸기로 결단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며 고강도의 쇄신을 주문했다. 품질경영을 위해 '일정 수준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생산을 중단해도 좋다'고까지 했다. 덕분에 세탁기 등 생활가전 불량률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내부의 안일한 경영방식이 지속돼자 1995년에는 극단적인 충격요법을 쓰기도 했다. 애니콜 휴대폰의 불량률이 10%를 넘어서자 150억원에 달하는 제품을 임직원 앞에서 불태우는 '화형삭'을 벌였다. 

이후 '불량=암'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품질경영은 삼성의 기본 방침으로 자리잡았고, 다양한 제품들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4년 세계 최초로 256Mb D램을, 1996년에는 1Gb D램을 개발에 성공했다. 1998년에는 128Mb 낸드플래시를 해외 시장에 선보였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 양쪽에서 점유율 1위에 등극하며 현재까지 선두주자로 자리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를 포함, 스마트폰(2012년), TV(2005년) 등 삼성전자가 배출한 세계 1위 제품은 20여개에 달한다. 신경영선언이 초일류 제품의 초석이 된 셈이다. 

제품 양질화는 회사의 양적 팽창으로 이어졌다. 그룹의 실적을 견인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1993년 약 8조원에 불과했던 연매출이 2022년 302조2300억원으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약 440조원, 자산은 448조원으로 불어났다. 국내외 임직원 수 역시 2021년 26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수직상승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3년 연속 글로벌 5위에 오르며 애플, 구글 등 세계 유수의 빅테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뉴삼성' 깃발 올린 지 3년…"명확한 청사진 필요"

신경영선언은 이후 이어지는 혁신적 경영 화두를 알리는 서막이 됐다. 천재경영론(2003년), 위기론(2010년), 창조 경영(2012년) 등 이 선대회장은 삼성의 초격차 DNA를 강화하며 극적인 성장사를 써내려갔다. 그룹 전체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1993년 3조1000억원이던 삼성 계열사 시가총액은 600조원을 넘겼다. 매출 역시 41조원에서 466조8000억원으로 뛰었다.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랐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심상치 않은 경영 여건 때문이다. 초유의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 미중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변수 등이 맞물려 주력사업이 고전 중이다.

핵심 수익원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 DS 부문은 1분기에만 4조580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감산'에 돌입했지만, 주요 고객사와 회사가 보유한 재고 수준이 높았던 탓이다. 시장에서는 메모리반도체 업황 반등이 연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실상 올해 반도체 사업은 실적 방어도 어려운 상황이다. 

단기 성적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중장기 전략의 표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오너 경영의 강점이었던 추진력이 꺾이고 있다"며 "미래 비전과 차세대 사업 전략에 대해 보다 명확한 청사진이 제시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홈페이지 갈무리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홈페이지 갈무리

이 회장은 시스템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을 다음 먹거리를 낙점했다. 이와 관련, 2027년까지지 국내외에 총 450조원을 투자해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약했던 시스템반도체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반도체 설계(팹리스) 역량을 제고하기 속도전에 돌입했다. 20년 간 300조원을 투입,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이동통신 기술표준 단체인 3GPP 의장석 최다 보유기업이 되면서 6G 주도권 확보에 청신호가 켜졌다. 배터리는 전고체 기술 내재화에 나섰고, 바이오 또한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제2의 반도체로 육성 중이다. 

경영 속도가 속도를 올리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퀸텀점프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든다. 이 회장이 '뉴삼성' 깃발을 올린 지 3년 가까이 지났지만, 혁신적인 성장방정식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그룹 전체를 관통하는 비전이 부재하다 보니, 계열사 간 또는 사업 간 상승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나마 이 회장이 의지를 보이는 미래 동행 분야에서만 선순환 생태계의 확장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신경영선언에 버금가는 비전을 이 회장이 보여줘야 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은 퍼스트 무버를 지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30년 간 삼성에 고착화된 경영전략인 까닭에, 발상의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신경영선언처럼, 내부를 결집시키고 강력하게 견인할 '메시지'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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