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테슬라 등 글로벌 CEO20명과 회동…매일 1명꼴로 면담
바이오·AI·전장 등 미래 성장사업에 집중…‘실행전략 구체화‘ 전망

이재용(왼쪽에서 세 번째)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일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처음으로 만나 완전자율주행(FSD) 반도체 공동 개발 등을 논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에서 세계 유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났다. 22일 간 이 회장이 만난 CEO는 20명에 달한다. 매일 한 명씩 사업상 논의를 이어간 셈이다. 

이 회장의 강행군을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의 '넥스트 스텝'에 대한 고민이 읽힌다는 평가다.

지난해 10월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뒤, 이 회장은 ‘도전’과 ‘혁신’을 강조해왔다. 국내외 사업장을 돌며 기술 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해외 출장 등에서는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도 했다. 다만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와 지정학적 변수, 경기 침체 등으로 삼성의 중장기 비전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첨단 ICT 산업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이 회장은 산업계의 격변과 삼성이 직면한 도전의 체감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미래산업 분야에서의 CEO들과의 논의를 통해 중장기 실행전략을 점건한 이 회장이 성장 엔진을 가속화하기 위한 투자·협업에 속도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15일 삼성전자와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20일부터 약 3주간 미국에 머무르며 거물급 CEO들과 차례로 면담했다.

이 회장은 매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까닭에 대내외 행보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공판이 없거나 대통령 수행과 같은 대외적 명분이 분명한 일정을 이용해 해외 현지 사업을 점검해왔다. 이번에도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지원한 이 회장은 임무를 마친 뒤 미국에 남아 중요한 고객들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만난 CEO들은 광범위하다. 그가 미국을 찾을 때마다 만났던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외에, 팀 쿡 애플 CEO,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존슨 CEO, 조반니 카포리오 BMS CEO, 누바르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CEO, 크리스토퍼 비에바허 바이오젠 CEO, 케빈 알리 오가논 CEO까지 다양한 기업인들과 논의를 이어갔다. . 

특히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일본 머스크 테슬라 CEO다. 삼성의 핵심 현금창출원인 반도체 경쟁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다.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수요가 늘어나고 메타버스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삼성전자도 기존 사업과의 연계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네이버와는 네이버와 함께 초대규모 AI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만드는 한편, 구글, 퀼컴과 확장현실(XR) 기기 개발에 들어갔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설계 역량을 높이기 위해 다각적 협업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개방적 협업을 도모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다. IT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전통적인 산업과 달리, ICT 분야는 경계가 없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경쟁자가 된다는 의미”라며 ”외부와의 협업은 상호 윈-윈이 가능하되, 잠재적 경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바라는, 기술 내재화가 가능한 범위까지 공유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엔비디아와 지식자산(IP) 협력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상호 부담이 없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서 사업적 시너지를 검토했을 공산이 크다.  

파운드리는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의 견인차다. 세계 최초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공정 양산에 성공하고도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의 시장 점유율 차이는 3배 이상, 종합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에 수주를 맡길 경우 기밀 유출을 우려한 대형 고객사들이 선뜻 갈아타지 않은 탓이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반도체 분야 선도기업인 만큼, 파운드리 외에도 메모리 분야에서도 추가 수주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CXL 2.0 기반 메모리 개발을 끝냈고, 파운드리에서도 3나노 1세대 개발이 진행 중이다.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 공급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에서 더 낫다는 점을 설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이 젠슨 황(왼쪽) 엔비디아 CEO와 미국 출장 기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만난 일식집 사장이 SNS에 사진을 게재하면서 회동 사실이 노출됐다./사진=페이스북 갈무리.

머스크 CEO와의 회동 역시 사업적 성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 회장이 머스크 CEO와 따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 특히 테슬라 측이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연구소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던 점을 미뤄볼 때 수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삼성전자와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며 차세대 IT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양사의 협력 덕분에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모빌아이 등의 고성능 파운드리 주문을 따내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반도체 생산 경험을 토대로 엔비디아, 모빌아이 등 고성능 파운드리 주문을 따내는 등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공격적으로 확장 중인 사업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D램 실적 악화로 DS 부문에서만 4조58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는데, 장기계약이 이뤄지는 차량용 반도체는 업황의 영향을 덜 받는다. 

시장의 성장성도 좋다. 자율주행을 탑재한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고 고해상도 지도, 동영상 스트리밍, 고사양 게임 등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고용량·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KPMG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등 첨단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43%에서 2040년 80%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견조한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021년 450억달러 수준이던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30년 11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차량용 반도체는 파운드리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키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객사와 이해상충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어서다. 차량용 반도체에서 점유율을 늘릴 경우,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위상도 탄탄해지게 된다. 이미 삼성전자는 미국 AI 반도체 전문기업인 암바렐라의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로부터 수주 계약을 따냈다. 암바렐라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고성능·저전력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는 미국 반도체 설계(팹리스) 회사다. 이 회사의 최신 시스템온칩(SoC)이 삼성전자 5나노 공정에서 생산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4나노 공정을 차량용 반도체에 적용하는 한편, 자율주행 차량 분야 신규 고객사를 늘려 2027년까지 파운드리 사업에서 모바일 외 제품군의 매출 비중을 50% 이상 높일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테슬라와 삼성과 반도체 이외의 분야에서도 협력을 가시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회장과 머스크 CEO와 회동 당시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이 동석했기 때문이다. 액정표시장치(LCD) 사업 철수,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환으로 새 먹거리가 필요한 삼성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 사업을 키워가는 중이다. 아우디, 현대차, BMW에 이어 최근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도 고객사로 맞아들였다. 차량용 OLED는 고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전 세계 차량용 OLED 패널 시장 매출이 올해 2억6960만달러에서 연평균 26%씩 성장, 2029년 13억9041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테슬라와 사업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외에도 다양하다. 디지털 콕핏, 고성능 텔레매틱스 등과 연계한 자율주행 솔루션, 전장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카메라 모듈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의 생활가전에서도 협력이 가능하다. 슈드레서, 공기청정기 등을 모듈형으로 제작, 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제약사 최고 경영진과 연달아 만나, 바이오 분야 협력을 모색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11월 미국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본사를 찾아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제약사 최고 경영진과 연달아 만나, 바이오 분야 협력을 모색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11월 미국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본사를 찾아 누바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사진=삼성전자.

다만, 재계의 시선은 세일즈 성과 이상에 가 있다. 이 회장은 미국 출장에서 AI, 전장 중심의 반도체, 바이오를 챙겼다. 해당 사업은 2018년 이 회장이 미래 성장사업으로 낙점한 분야다. 안타깝게도 이 회장의 의자와 달리 질적·양적 성장에서 아쉬운 분야들이기도 하다. 특히 AI는 이 회장이 들인 공에 비해 경쟁사에 밀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회장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핵심 IT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AI에서 절대 우위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8년 집행유예로 풀러나자마자 유럽·북미를 돌며 세계적 석학들과 논의하고 AI센터를 찾아 연구 현황을 점검한 데 이어, 그해 10월 유럽·북미 출장 당시 캐나다 토론토 AI 연구센터를 다시 찾았다. 2021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첫 출장에서도 캐나다 삼성전자 AI센터 챙겼다. 

AI연구센터 설립, 핵심인재 영입, 삼성 AI포럼 개최, ’올해의 삼성 AI 연구자상’ 제정 등을 통해 AI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투자 자회사 삼성넥스트와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AI스타트업에 투자, 기술 수혈을 통해 경쟁력 고도화 역시 꾀했다. 덕분에 2020년 총 5073개의 AI 신규 특허를 취득하며 IT 강자 IBM(2062개)보다 2배 이상 많은 특허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선제적으로 기술을 확보하고도 상용화에서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네이버, LG전자, 카카오, SK텔레콤, KT 등이 초대규모 AI 모델을 내놓은 것과 대조적이다.

전장 또한 갈 길이 멀다. 이 회장은 2월 중국 출장에서 IT·전장용 MLCC와 카메라 모듈을 만드는 삼성전기 톈진 사업장을 점검하며, 전장 의지를 드러냈다. 신속한 투자 결정이 지연되면서 전장에서 절대 우위에 올라서는 데 실패했다. 삼성SDI는 배터리 3사 중 설비투자가 가장 늦게 진행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G디스플레이에 비해 차량용 OLED 포트폴리오가 한정적이다. 극적인 성장을 예고한 전장 분야에서 승기를 빼앗길 처지라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전 세계 전장 시장의 규모는 2024년 4000억달러, 4년 뒤인 2028년에는 7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는 바이오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달성한 정도가 위안거리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 확대,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1위에 올랐다. 단, 이 회장의 구상대로 바이오가 그룹의 매출 효자가 되려면 자체 의약품 개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이번 미국 출장에서 뉴삼성의 실행전략을 구체화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분위기다. 실제 이 회장은 AI 분야 세계 석학과 만나 사업 방향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은 중장기 투자 계획을 1년 사이 두 차례나 내놨지만, 방향성은 모호한 부분이 있다”면서 ”불황을 이겨내는 것 이상으로 중장기 성장엔진을 재점화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다. 이 회장이 이와 관련한 밑그림을 그리고 핵심 경영진, 현지 관계자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