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주도권 둘러싼 설비투자-신기술 경쟁 격화

TSMC, 다음달 3나노 양산…애플·엔비디아 등 고객사로

인텔, 투자합작사 설립…설계부터 후공정까지 통합 지원

속도전서 밀리는 삼성전자…M&A로 획기적 전략 마련할수도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주도권을 둘러싼 삼성전자와 TSMC, 인텔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세계 최초로 3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칩 양산에 성공한 삼성전자는 미세공정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쟁사들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파운드리 1위 TSMC는 다음달 3나노 공정 칩 양산에 돌입한다. 매츨 순위에서 삼성전자에 밀리며 자존심을 구겼던 인텔은 파운드리 공정에 적용될 최신 기술을 공개하고, 새 공장을 위한 300억달러 재원까지 마련했다. 

TSMC와의 초미세공정 경쟁은 원점으로 돌아간 데다 인텔이 공격적으로 생산력 증강에 나서면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굴기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다음달 3나노 칩 양산을 시작한다. 인텔의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제품 생산이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업계에서는 TSMC의 3나노 양산도 연말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3나노를 먼저 선보인 삼성전자가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업계의 추측과 달리 TSMC는 3나노 양산은 물론, 대형 고객사까지 확보했다. 첫 고객은 애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M2 프로 칩이 TSMC의 3나노 공정으로 제작된다. M2 프로 칩이 들어가는 14·16인치 맥북 프로, 고급형 맥 미니가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 출시될 예정인 점을 고려하면 TSMC가 9월부터 3나노 대량생산을 시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애플이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폰15 프로용 A17 바이오닉 칩, 맥북 에어와 13인치 맥북 프로 등에 탑재되는 M3 칩도 TSMC에 몰아줄 가능성이 크다. 

미세공정의 핵심은 회로 선폭을 얼마나 세밀하게 좁히는가에 있다. 선폭을 의미하는 나노미터는 성인 머리카락 한 올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선폭을 줄일수록 반도체 성능과 전력 효율이 향상되는 까닭에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미세 공정이 필수적이다. 

특히 가장 앞선 기술로 불리는 3나노의 경우, 4나노와 비교해 소비 전력은 25~30% 줄고, 연산 능력은 10~15% 빨라진다. 기존 칩보다 더 정밀하게 회로를 그려 넣기 때문에 불순물을 씻어내고 새기는 과정은 줄이되, 웨이퍼 한 장당 나오는 반도체 숫자는 늘어난다. 그만큼 수익성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파운드리 업계가 미세 공정에 매진하는 이유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나노 하나를 줄인다는 것은 현재보다 더 미세하게 회로를 새긴다는 의미”라며 “선단공정 기술력을 진전될수록 반도체 성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 차이. 이미지. 삼성전자. 
반도체 트랜지스터 구조 차이. 이미지.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쥔 지 3개월 만에 TSMC가 3나노 대열에 합류하면서 초미세 공정 경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아직 겨뤄볼만한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같은 선폭이라도 삼성전자가 더 앞선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에 결코 불리한 경쟁은 아니다”면서 “물론 TSMC가 얼마나 수율을 안정화시켰는지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지만, 기술만 놓고 보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3나노부터 신기술을 도입했다. 차세대 트랜지스터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에 독자기술인 MBCFET 구조를 적용했다. 반도체 크기가 작아질수록 전류가 중간에 새고, 반도체 성능도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채널을 얇고 넓은 나노시트 형태로 만든 뒤 채널의 4면을 게이트가 감싸는 형태로 만들어 전류 제어력과 반도체 성능을 개선시켰다. GAA 1세대 공정은 기존 5나노 핀펫 공정과 비교해 전력을 45% 절감하고 성능은 23% 향상된다. 반면 면적은 16% 줄어든다. GAA 2세대는 전력 50% 절감, 성능 30% 향상, 면적 35% 축소된다. 더 작지만 성능과 전력 효율이 우수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반면 TSMC는 3나노까지는 핀펫을 유지하고 2026년 2나노부터 GAA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최신 기술로 칩을 생산하려는 ICT업체들이 삼성전자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앞선 기술력만으로 삼성전자가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반박도 나온다. 또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해마다 설비투자에만 수백억달러를 쓰는 TSMC가 핀펫을 고집한 건 안정적 공급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있다”며 “고객사 입장에서도 ‘도박’을 하느니 기술 신뢰도가 입증된 핀펫이 낫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이 60%는 돼야 애플·구글·퀼컴 같은 대형 고객사가 움직인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완제품을 모두 만드는 까닭에 고객들과 다른 영역에서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세운 TSMC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대만 언론들은 TSMC가 애플 외에도 인텔·퀄컴·미디어텍·엔비디아·브로드컴·AMD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응용처에서 복수의 대형 고객사를 이미 확보했으며, 다수의 고성능컴퓨팅(HPC)·모바일 고객과 수주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비트코인 채굴 주문형반도체(ASIC)를 만드는 중국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인 판세미 외 알려진 고객사가 없다. 

대만 TSMC 로고. 사진. TSMC 홈페이지
대만 TSMC 로고. 사진. TSMC 홈페이지

TSMC 추격전으로 버거운 삼성전자 앞에 또다른 경쟁자가 나타난 것도 파운드리 굴기에 대한 우려를 자아낸다. 인텔은 반도체 투자 실탄을 마련하고, 신기술을 공개하는 등 공격적 행보를 예고했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인텔은 브룩필드자산운용과 합작사를 설립하고, 올해 말까지 계약 체결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인텔이 지분의 51%와 공장 운영권을 갖고, 브룩필드가 나머지 지분 49%를 소유하는 구조다. 수익은 지분에 따라 나눈다. 

일단 확정된 투자는 애리조나주 챈들러 공장 건이다. 양사는 300억달러를 들여 2곳의 공장을 건설한다. 지난해 인텔은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하면서 애리조나 공장 설립 계획을 밝혔는데, 이번에 마련된 재원이 여기에 쓰이게 된다. 

에너지·통신 업계에서는 공동 투자를 하는 사례가 자주 등장했지만, 기술 보안에 민감한 반도체 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반도체 사업은 생산력이 곧 경쟁력이다. 신규 고객사 확보 후 신속하게 제품을 양산할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춰야 한다. 다만 반도체 제조비가 상승해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적기에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투자 속도를 올리기 위해 공동 투자 방식을 택했다는 게 인텔의 설명이다.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자본 집약적인 반도체 산업을 위한 자금 조달 모델임을 강조하면서 “인텔이 뒤쳐져 있어 향후 몇 년 동안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 사이클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실탄 마련의 압박을 줄어듦에 따라 추가 투자에도 속도가 붙을 수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와 독일 공장 단지에 각각 1000억달러까지 투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각 국의 반도체 내재화 전략을 활용해 230억달러로 예상되는 올해 자본 지출을 20~30% 가량 줄일 계획이다. 

이날 인텔은 파운드리 고객사를 겨냥한 신기술도 선보였다. 반도체 학술행사인 핫칩스 34를 통해 인텔은 “리본펫, 파워비아, 하이NA 리소그래피, 2.5D·3D 패키징 등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패키지 당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현재 1000억개에서 2030년까지 1조개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이 제조 지원을 넘어 시스템반도체 역량이 보다 강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첨단 패키징, 개방형 칩렛 생태계, 소프트웨어 등을 통합한 패키지를 제공해 고성능컴퓨팅 기능과 응용처별 맞춤 지원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인텔은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주도하며 지식재산권(IP)을 축적해온 데다,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들과의 네트워크도 갖췄다. 더욱이 인텔의 미세공정 기술력은 알려진 것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텔의 14나노급 공정은 삼성전자·TSMC의 10나노급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인텔 본사. 사진. 인텔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인텔 본사. 사진. 인텔.

인텔은 파운드리 집중화 전략을 밀어 붙이고 있다. 삼성전자·TSMC 보다 먼저 ASML와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인 하이NA 도입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에는 초미세공정 개발 계획도 공유했다. 인텔은 2024년 2나노격인 20A(옹스트롬·100억분의 1m) 공정을 도입하고 2025년에는 1.8나노 격인 18A 공정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설비투자도 과감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팻 갤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유럽 등지를 찾아 투자 혜택을 요구할 정도로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시장이 TSMC-삼성전자-인텔의 3강 제체로 재편될 가능성을 크다고 분석한다. 기업들도 이를 의식해 광폭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TSMC는 지난해 3년간 1000억달러 투자를 예고했다. 일본에서는 소니와 함께 1조1000억엔 규모의 구마모토 공장을 건설 중이고, 미국 애리조나에서도 120억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고 있다. 인텔 역시 지원 혜택을 저울질하면서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이다. 이미 10년 간 950억달러를 들여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달러를 투입해 첨단 반도체 공장 2곳을 세우기로 했다. 지난 2월에는 이스라엘 파운드리 기업인 타워 세미컨덕터를 54억달러에 사들였다. 

투자 속도도 빠르지만, TSMC와 인텔의 기술 진전도 업계의 예상보다 조속히 이뤄지고 있다. 메모리와 시스템을 모두 챙겨야 하는 삼성전자에게는 힘겨운 싸움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53.6%), 삼성전자(16.3%), UMC(6.9%), 글로벌파운드리(5.9%) 순이다. 지금 선두와 격차를 좁혀야 파운드리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 인수합병(M&A)를 통해 경쟁사들과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4차 산업 핵심기술들은 기업 한 곳이 모두 개발할 수 없다”며 “삼성전자도 반도체 신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M&A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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