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손정의, 다음달 면담…인수 대신 전략적 협력 가능성 제기

ARM, 광대한 IP 자산 보유…반독점 문제에 높은 몸값은 부담 요인

오픈소스 아키덱쳐안 라스크 파이프 활용 증가…시장 지배력 흔들

AST·하만 등 M&A 효과 미미…지분 투자로 효용성 극대화할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다음달쯤 손정의 회장이 (ARM 인수를) 제안하실 것 같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과 ARM 간 전략적 협력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ARM 인수에 대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입을 뗐다. 두 사람 모두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조 단위 인수·합병(M&A)을 결정하는 결정권자들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셈이라 물밑에서 교감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하지만 논의의 물꼬가 트인 것과 별개로 ARM M&A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양측 모두 M&A의 필요성을 분명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아서다. 특히 대형 M&A 이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삼성전자의 경우, 가격 대비 효용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때문에 삼성전자가 단독 인수보다는 부담이 덜한 컨소시엄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와 소프트뱅크 사이 ARM 관련 논의는 일단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은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다음주나 다음달에 손정희 회장께서 서울로 오실 때, (인수) 제안을 하실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손정의 회장이 다음달 한국 방문을 거론하면서 ”이번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삼성과 ARM 간 전략적 협력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점만 놓고 보면, 망설이는 이 부회장에서 손 회장이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3년 만에 한국을 찾는 손 회장이 삼성전자를 콕 찍어 ARM 관련 논의를 하겠다고 한 것은 그만큼 딜 성사에 대한 의지를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ARM의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는 ARM 매각을 타진해왔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첨단 기술의 확산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반도체는 귀한 몸이 됐다.

더욱이 ARM은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반도체 설계(팹리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ARM은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중앙처리장치(CPU), AI 반도체 등의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판다. ARM이 저작권료를 받고 설계도를 공급하는 업체는 1000여곳에 달한다. 이 중에는 삼성전자, 퀼컴, 애플 같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모바일 AP의 90% 이상이 ARM의 설계도를 사용한다. ARM 인수는 반도체 사업의 근원적 경쟁력 강화는 물론, 안정적인 지식재산권(IP) 수익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이런 이유로 그래픽처리장치(GPU) 강자 엔비디아는 ARM 인수를 밀어 붙였다. GPC와 CPU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잡겠다는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였다. 인수액이 400억달러에서 660억달러 치솟았지만 엔비디아는 1년 넘게 딜 성사를 기다렸다. 특정기업의 IP 독점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중립적 사업 모델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하며 언론 플레이까지 했다. 그러나 경쟁당국에 막혀 딜을 접었다. 

물론 엔비디아가 겪었던 반독점 문제를 감수해야 하더라도 ARM의 매력은 유효하다. 다시 매물로 나오자마자 퀼컴, 인텔, SK하이닉스 등이 관심을 보일 정도다. 문제는 소프트뱅크가 다른 딜을 기다릴 여유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비전펀드의 투자가 연달아 실패하면서 소프트뱅크의 적자가 껑충 뛴 탓이다. 2분기 소프트뱅크는 3조1267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창사 이래 분기 최대 손실이다. 소프트뱅크는 우버, 알리바바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진 급여를 깎으며 버티고 있지만 미봉책이라는 지적이다. 손실 규모를 줄이고, ARM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소프트뱅크가 통째로 매각하기보다는 지분 매각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공산이 크다. 손 회장의 ‘전략적 협업’라는 표현은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 한다. 

ARM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법은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고려해볼만한 카드다. 반도체, 스마트폰 등 주력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팹리스 역량 강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를 20년 가까이 수성하면서 제조 기술력은 인정 받았지만, 설계 역량은 얘기가 다르다. 야심차게 진행했던 몽구스 프로젝트가 무산된 이후 시장은 삼성전자의 팹리스 역량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전자가 ‘내용적 1등을 목표로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내실화를 꾀하겠다는 의미인데, 설계와 제조에서 실력을 갖춰야 가능한 일”이라며 ”설계 역량을 단 번에 올리려면 IP를 가진 기업을 사들이거나 더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것 외엔 없다”고 짚었다. 

실제 삼성전자의 시스템LSI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모바일 사업이 최근 기대에 못 미치는 근본 이유로 팹리스 역량을 꼽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파운드리에서 4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수율 논란이 벌어진 것이나, 갤럭시S 시리즈 성능 문제가 불거진 것은 각 제품에 최적화된 설계가 이뤄지지 못한 이유가 크다는 것이다. 모바일 AP 엑시노스 2200이 대표적이다. AMD의 RDNA2 설계구조(아키텍쳐)를 바탕으로 개발된 엑시노스 2200은 GPU 성능이나 전력 효율에서 퀼컴에 미치지 못했다. 갤럭시S22 탑재량이 확 떨어지면서 모바일과 파운드리, 시스템LSI 사업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할 경우, 잠재적 경쟁자들과 기술을 공유해야 하는 문제는 있다. 투자 실익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ARM의 시장 지배력이 미래에도 지속될지 불투명한 까닭이다. IP 사용료가 필요없는 오픈소스 기반 아키텍처인 리스크 파이브(RISC-V)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리스크 파이브 기술력이 극적으로 향상되지 않더라도 ARM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반도체 설계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고도화 되고 있는 점도 ARM의 지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지분 투자를 통해 ARM과의 IP 협상에서 좀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독점적 기술을 가진 기업과 가까워질수록 협상력이 높아지기 마련“이라며 “비록 수직 계열화를 하지 못하더라도 IP자산의 안정적 확보 측면에서는 유용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ARM을 단독 인수한다면 비극적 결과를 맞을 것이라는 예견이 적지 않다. 고객사들과의 이해관계가 상충된다는 이유에서다. 파운드리 사업이 탄력받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칩 생산을 맡기면서도 스마트폰, 태블릿, 반도체 등에서 고객사들은 삼성전자와 겨루는 입장이다. 기술 유출의 가능성을 배제키 어려운 셈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주문을 넣는 빅테크들은 최신 제품을 맡기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이 ARM 인수 이후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도리어 IP와 파운드리에서 고객사 이탈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특히 지분 투자는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동시에 M&A 부담을 줄일 묘수이기도 하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M&A에 보수적이었다. 인텔, SK하이닉스, 애플 등 경쟁사들이 기업 쇼핑에 나섰을 때도 정중동 행보를 유지했다. 총수의 부재도 있었지만 ‘M&A 트라우마’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1997년 세계 5위 PC업체인 AST를 인수했지만, 4년 만에 매각했다.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기업 문화에 거부감을 느낀 구성원들의 이탈이 이어지는 등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게다가 삼성전자 최대 빅딜로 주목받았던 하만 인수 효과 역시 아직까지는 아쉽다. 하만의 디지털 콕핏 점유율은 2020년 27.5%에서 지난해 25.3%로 줄어들었다. 

지분 투자를 통해 상징적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 인텔처럼 설계부터 생산까지 가능한 종합반도체기업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박주근 리더스인텍스 대표는 데일리임팩트에 “팹리스까지 갖추면 진정한 종합반도체기업으로서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면서 “팹리스-메모리-파운드리의 삼각 편대를 구축하는 건 삼성전자의 성장 전략이기도 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인수 자금 문제 역시 자연스럽게 풀린다. 소프트뱅크가 ARM의 몸값을 낮추더라도 최소 50조원 이상을 제시할 것이라는 업계의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ARM의 인수가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삼성전자가 인수 대금을 대려면 경영 전략을 수정해가면서까지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투입해야 하는데,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이 논의에 나서기로 한 만큼, 삼성전자가 컨소시엄을 주도적으로 꾸릴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SK하이닉스나, 모바일 AP가 약했던 인텔과 연합군을 꾸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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