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사태에 놀란 은행권, 건전성 관리 강화 예고
‘연간 200조 증가’ 기업대출 관리 우선 집중 전망
문턱 높이고 심사 강화…‘방파제 역할’은 불가피할 듯

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은행(SVB) 전경 사진. 위키디피아
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은행(SVB) 전경 사진. 위키디피아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하 SVB) 파산 사태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국내 은행권 내 기업대출 문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SVB사태를 계기로 리스크 관리 및 건전성 담보를 위한 은행권 대응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은행권 전체 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대출 관리에 우선 돌입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당장, 은행권 내부에서도 기업대출 심사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지난해 4분기부터 불거진 유동성 위축으로 가뜩이나 말라붙은 기업 자금줄이 더욱 쪼그라들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특히 하락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기초체력이 약해진 기업들의 추가 부실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SVB파산 사태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기업고객의 뱅크런(단기간 내 예금 대량 인출) 가능성은 크지 않은 만큼, 직접적 영향권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높은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SVB 파산의 여파를 전 세계 금융시장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은행권 내 기업대출 부문이 다소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SVB와 국내 시중은행은 태생적 성격과 자금 운용 방식, 주요 고객군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개인고객이 아닌 기업고객 대상 투자 및 대출 그리고 고금리 부담에 따른 뱅크런 확산으로 이번 사태가 촉발됐다는 점에서 안심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또한 SVB사태 발생 직후, “아직은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라면서도 “시장 변동성 확대 여지도 있는 만큼 금융시스템을 재점검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말고 필요시에는 신속한 시장안정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200조원 이상 늘어난 ‘기업대출’

실제로 최근 기업대출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잔액 규모를 키워왔다. 이는 고금리 기조로 인한 이자 부담 압박으로 감소세로 접어든 가계대출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 발발한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는 전반적인 기업 유동성 위축을 확대하는 도화선이 됐다. 채권 흥행 실패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중‧소기업 뿐 아니라 다소 자금 확보 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대기업마저도 추가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 대출 창구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산업별 대출금 잔액은 1797조7000억원으로 전분기 말 대비 28조원(1.6%) 증가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전년 말 대비 217조원(13.7%) 증가하며 역대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다만, 전분기(56조6000억원) 보다 증가폭이 축소되며, 2분기 연속 증가 폭 축소 흐름은 이어졌다. 하지만 이 역시 은행권의 대출관리 강화, 기업들의 재무비율 관리 등 통상적으로 연말에 행해지는 일시적 요인에 근거한 축소였다는 분석이 우세해 올해 연초에 다시 확대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 창구였던 회사채 시장이 위축되면서 금융시장 대출이 많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다”라며 “기업대출 규제가 가계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부분 또한 주목해볼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및 개인사업자(자영업자)의 대출은 실제로 연초부터 확연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데일리임팩트가 확인한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2월 말 기준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19조5333억원이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99조8678억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319조6655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잔액(912조3048억원) 대비 두 달 새 7조2000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특히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이 6조6000억원 가량 증가하며 전체 증가분의 약 92%의 비중을 보였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건전성 관리를 위해 은행권이 대기업 위주의 대출 영업에 집중했음에도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확대 폭을 키웠다는 점은 그만큼 이들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일단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올해 기업대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여전한 고금리, 부실리스크 도화선 될까

문제는 단순한 대출 증가세뿐만은 아니다. 금융당국의 지속적 압박으로 상승세가 꺾인 가계대출 금리와 달리 기업대출 금리는 좀처럼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가뜩이나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상황에 놓인 기업대출 차주들은 이자 부담 증가라는 또 하나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기업대출(신규취급액 기준) 평균 금리는 5.47% 수준이다. 이는 전년 동기(3.3%) 대비 2.17%p 상승한 수치다.

특히 이 같은 오름세는 가계대출의 상승 폭보다 컸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금리는 3.91%에서 5.47%로 1.56%p 올랐다. 이는 기업대출 금리 인상폭의 60%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연말부터 금융당국의 금리인하 압박으로 대출금리 인상세가 한풀 꺾였지만, 기업 대출, 특히 앞서 언급했듯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 대상의 대출 금리는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지난 1월 중소기업 대출 평균 금리는 6.64%, 자영업자 대출 평균 금리는 6.06%를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0.13%p와 0.14%p 상승한 수치다. 같은 기간 0.4%p 가량 하락한 가계대출과는 대비되는 흐름을 보인 셈이다.

역행하는 금리의 여파로, 기업대출에서 발생하는 연체율 또한 여타 대출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신한은행을 제외한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지난 1월 기준 기업대출 평균 신규 연체율은 0.1%에 달했다. 이는 전체 대출 시장에서의 평균 연체율(0.09%), 가계대출 연체율(0.07%)보다 높은 수치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밖에 공격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려온 저축은행의 경우, 시중은행에 비해 아무래도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며 “리스크 확산 방지를 위한 당국과 시중은행의 유동성 지원도 현재 검토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대출 확대 불가피, 건전성 관리 ‘화두’

일각에서는 이번 SVB사태가 당장 우리 은행권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지는 못하겠지만, 언제든 ‘한국판 SVB사태’의 발발도 예상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리스크 대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SVB 파산이 △5%를 넘어선 고금리 기조 △기보유 채권 가격의 하락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이미 연 5%를 넘어선 대출금리,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채권시장 경색 등 국내 금융‧경제 상황이 처한 환경과도 유사하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기업대출 문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인 반면, 정부와 금융당국의 경우 오히려 은행의 방파제 역할론을 강조하며 기업으로의 유동성 공급을 늘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최근 금융권 내 불어닥친 관치 흐름을 감안하면 은행권의 기업대출 확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번 SVB파산 사태를 계기로 부실채권 리스크에 대한 관리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며 “특히, 기업대출에 집중하는 특화은행 도입 여부 역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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