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파산에 정부‧당국 ‘은행권 영향은 제한적’ 전망
동일한 ‘건전성 리스크’, 고금리에 배가될 가능성 높아
특화은행 한계 노출 지적도…인뱅 리스크 우려도 커져

미국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의 폐쇄 조치 등과 관련한 금융시장 동향 및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 사진. 금융위원회
미국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의 폐쇄 조치 등과 관련한 금융시장 동향 및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 사진. 금융위원회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하 SVB)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내 여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은행업계도 적잖은 파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SVB에 대한 국내 은행권의 직‧간접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거의 없다는 것이 당국과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권 또한 SVB 파산의 주된 원인인 ‘고금리에 따른 건전성 악화’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SVB 파산의 영향력에 제한적일 것이란 확신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금융업계에서는 최근 금융당국이 논의하고 있는 은행권 과점체계 개편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는 소위 ‘특화은행’에 대한 접근에 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SVB가 사실상 실리콘밸리 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출범한 특화은행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SVB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란 지적 때문이다.

여기에 일각에선 SVB와 같은 특화은행의 성격을 띠고 출범한 국내 인터넷전문은행 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리스크 점검 필요성도 언급하고 있다. 잠재적 부실리스크가 현실화 될 경우 이번 SVB파산과 같은 사태가 국내에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1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파산을 선언한 가운데, 국내 은행업계에도 유의미한 파장이 예상된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같은 즉각적 위험 노출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SVB 파산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고금리와 건전성 리스크에 국내 은행권도 노출돼있는 만큼 예단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사진. 이미지투데이

SVB파산에 금융업계 ‘촉각’

SVB 파산 소식은 지난 주말 전 세계 금융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가져왔다. 글로벌 IT‧첨단기술의 요람으로 군림해온 실리콘밸리와 함께 성장해온 SVB가 불과 40여시간만에 사실상 붕괴되면서 그 충격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이어졌다.

실제로 SVB는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국채로 구성된 장기 채권 210억 달러어치를 매각, 18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현금 자산 확보와 고객 예금 인출에 대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면서 추후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증자를 추진,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겠다는 추가 계획도 함께 공개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9일(현지 시각), SVB에 예금을 맡겨둔 스타트업들이 한꺼번에 자금을 대량으로 인출하는 소위 ‘뱅크런’이 발생하며 사태는 악화일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미국 내 주요 벤처캐피탈(VC)과 자신들이 투자한 스타트업에 SVB에서 돈을 빼라고 권고한 것이다.

불과 48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SVB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420억 달러(한화 약 55조6000억원)에 달했다. 갑작스러운 뱅크런으로 일부 예금주들이 돈을 찾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하자 SVB의 주가는 하루 새 60%나 폭락했고, SVB는 사실상 회생 불가능 사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현지 시각 10일 오전, 미국 주식시장에서 SVB주 거래가 중단되면서 결국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개입해 SVB는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처럼 SVB파산의 직접적 원인은 유동성 경색과 예금주들의 뱅크런, 이에 따른 자금 지급 능력의 상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SVB파산의 원인을 촉발한 근본적 이유는 바로 미국 연준의 긴축 강화에 따른 고금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美 연준의 긴축 강화에 따른 대출금리 부담으로 SVB의 주요 고객인 실리콘밸리 내 스타트업들의 자금 압박이 커지면서 예금 인출 규모를 확대한 것이 은행 자금 사정의 급격한 악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SVB의 성격, 즉 실리콘밸리와 스타트업에 특화된 SVB의 태생적 한계도 이같은 리스크를 키운 배경 중 하나라는 해석도 나온다. 자금 조달 창구가 사실상 벤처캐피탈과 일부 스타트업에 한정돼있다보니, 벤처시장이 흔들리면 SVB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 금감원.
‘금융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 금감원.

동일한 금융환경, “남의 일은 아니야”

일단 국내 금융당국에서는 이번 SVB 파산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을 포함한 대다수 금융사가 SVB와 직‧간접 투자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SVB에 자금이 수탁된 펀드상품에 자금을 투자한 일부 국내 투자사가 있긴 하지만, 미국 재무부와 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 내 예금 전액을 구제해주기로 결정하면서 직접적 피해에 대한 우려는 덜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그럼에도 이번 SVB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평가한다. SVB사태의 직접 영향권에서는 한발 비켜나 있지만, SVB사태를 야기한 고금리‧건전성 리스크 등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현재 국내 금융시장, 특히 은행권을 중심으로 올해 중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다소 감소했던 대출 증가세가 올해 다시 반등할 수 있는 데다,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은행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데일리임팩트가 확인한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의 2월 말 기준 신규 연체율 평균은 0.09% 수준이다. 이는 전년 동기(0.04%) 대비 두 배 이상 높아진 수치다. 가계(0.08%)와 기업(0.1%) 등 차주별 연체율 역시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면서 리스크 우려는 더욱 확산하는 추세다.

은행의 실제 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고정이하여신비율(NPL)도 지난해 연말을 기점으로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4대 시중은행의 지난 2월 기준 평균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24%로 지난해 말 대비 0.02%p 높아졌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이란 은행권 내 총여신 대비 부실 채권 비중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은행 건전성 지표로 활용되는데 수치가 커질수록 건전성이 악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번 SVB파산 사태가 은행권에 미칠 직접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면서도 “파산사태를 야기한 근본적 원인인 고금리, 건전성 리스크에 대해서는 국내 금융시장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대비책은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 금융위원회
금융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한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 금융위원회

한국판 SVB? ‘리스크 사전대비 필요’

특히, 이번 SVB파산 사태가 최근 논의가 시작된 은행업계의 과점체계 개편 움직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점체계 해소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특화은행, 소위 ‘챌린저뱅크’의 설립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번 SVB사태가 챌린저뱅크의 단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소규모 신생 특화은행을 의미하는 ‘챌린저뱅크’는 모든 시장과 영역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시중은행과 달리 △개인 △중소기업 △대기업 △자영업자 등 타깃을 설정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언급한 SVB는 미국 내 자산 기준 16번째로 큰 중견은행임과 동시에, 스타트업 대출에 특화된 챌린저 뱅크로 분류되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SVB의 파산 원인 중 하나인 ‘스타트업에 치우쳐진 자금 조달 구조’가 향후 출범할 ‘한국판 챌린저뱅크’에도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설‧부동산 대출에 특화된 챌린저뱅크의 경우, 최근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 사실상 생존을 담보하기 조하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시장에서는 일종의 챌린저뱅크를 표방하고 출범한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이 당장 SVB사태의 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의 권고에 따라 상환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높여가고 있는 인뱅의 경우,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부실 폭탄을 사실상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인뱅 3사 로고. 사진. 각 사.
인뱅 3사 로고. 사진. 각 사.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인뱅 3사(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의 연체 대출 규모(1개월 이상)는 2916억원으로, 연초(약 1000억원) 대비 3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전분기 대비로는 무려 56%(1056억원) 늘어나며 연체율 및 연체 규모 또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연체율 또한 국내 주요 시중은행보다 최대 5배 이상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대출의 상당수가 앞서 언급한 중‧저신용자임을 감안하면 연체율이 더 악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문제는 인뱅 뿐 아니라 시중은행들도 올해는 공격적으로 대출 확대를 도모할 것이라는 점”이라며 “뱅크런과 같은 상황에도 대비하기 위해 건전성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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