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폭증한 기업대출, 은행권 역대급 실적 이끌어
불안정한 경제상황에…기업대출 증가세 이어질 듯
리스크 관리는 숙제…금리인하 요구도 ‘주요 변수’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지난해 역대급 실적 기록을 쓴 국내 시중은행의 올해 실적을 가늠할 핵심 변수로 기업대출이 떠오르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중 전년 대비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인 곳 중 상당수가 큰 폭으로 늘어난 기업대출의 덕을 톡톡히 본 상황에서, 올해도 불확실한 경제 상황으로 인한 기업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과도하게 늘어난 기업대출과 고금리로 인한 잠재적 부실 채무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동성 위기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데다, 금리인상까지 더해질 경우 가계대출과 달리 꾸준히 늘어난 기업대출이 올해 국내 금융 및 경제 전반에 커다란 부실 뇌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상환능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대출 금리 인하 요구도 커지고 있어 이자 수익 확대와 리스크 관리 사이에서의 은행권 대응 전략에도 관심이 쏠린다.

22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대출 감소세 속에서도 나 홀로 역성장을 기록했던 기업대출의 증가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은행권 실적에도 주요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 1년여간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기조 속에서 이자상환에 부담을 느낀 개인 차주들이 대출 상환을 늘려가면서 가계대출은 1년 새 소폭 감소했다. 반면,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하반기 불거진 회사채 시장 경색의 여파로 자금줄이 말라버린 대다수 기업은 꾸준히 은행권 기업대출 창구의 문을 두드린 바 있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나 홀로 성장‘ 기록한 기업대출

실제로 지난해 기업대출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앞서 언급했듯,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불거진 단기자금 시장 경색, 이에 따른 회사채 시장의 위축으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차주들의 발걸음이 은행을 향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전년 말 대비 104조6000억원 증가한 1170조3000억원 수준을 보였다. 대기업 대출(216조9000억원)과 개인사업자 대출(422조7000억원) 모두 각각 37.6조원, 19.7조원 늘었다.

이는 전년 말 대비 2조6000억원 감소한 가계대출 잔액(1058조1000억원)의 흐름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당시 가계대출 잔액은 관련 통계 속보치 작성이 시작된 지난 2004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 감소세를 기록한 바 있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유동성 위기의 불씨가 시장으로 옮겨붙은 지난해 4분기에는 3개월간 13조8000억원 규모의 신규 기업대출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기업들의 주된 자금융통 창구였던 회사채 발행 잔액이 4조3000억원 가량 감소하면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 연초까지도 이어졌다. 지난 1월 기준 기업대출은 전월 대비 7조9000억원 증가한 1178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대출은 전월 대비 6조6000억원 늘어난 223조5000억원, 중소기업대출은 1조3000억원 늘어난 954조7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특이한 점은 상대적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대출 규모를 키워왔다는 부분”이라며 “다만, 올해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대출의 증가 추이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설명했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기업대출 폭증에 시중은행 ’방긋‘

이같은 기업대출의 증가는 은행권의 역대급 실적 기록 달성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거의 모든 은행이 지난해 급격히 늘어난 대출잔액에 따른 이자수익 증가로 사상 최대 연간 실적을 기록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업대출 증가세가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기업대출 증가세’의 긍정적 효과는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의 실적을 통해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을 앞지르며 지난해 ‘깜짝 리딩뱅크’ 자리에 오른 하나은행, 그리고 사상 첫 당기순익 2조원 시대 달성을 눈앞에 둔 NH농협은행 모두 기업대출 증가세에 효과를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3조1692억원의 연간 당기순익을 기록하며 신한은행(3조450억원), KB국민은행(2조9960억원)이 형성해온 ‘양강 구도’를 깨고 리딩뱅크 자리에 올랐다.

이같은 하나은행의 실적 배경에는 적극적인 기업대출 시장 대응 전략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기준 하나은행의 기업대출잔액은 144조8280억원으로 전년(126조3920억원) 대비 14.6%(18조4360억원) 증가했다. 무려 14.6%나 기업대출을 늘렸다.

특히, 갑작스러운 유동성 위기로 자금 수혈에 나서야했던 대기업 중심의 대출 영업 전략이 효과를 봤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하나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전년 대비 약 38%가량 늘었는데 이는 여타 은행 중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NH농협은행도 기업대출 증가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농협은행은 전년(1조5556억원) 대비 10.5% 증가한 1조7182억원의 연간 당기 순익을 기록했다. 이러한 실적 기록에는 기업대출 증가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실제로 농협은행의 지난해 대기업 대출은 전년 대비 23.1%(12조4026억원→15조2547억원), 중소기업 대출은 11.4%(74조7702억원→83조3210억원) 수준 각각 증가했다.

하나, NH농협은행뿐 아니라 KB국민과 신한 그리고 우리은행 또한 기업대출 부문에서 적잖은 여신 성장을 끌어냈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미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기업대출 확대를 권고한 만큼 올해도 기업대출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며 “은행채 발행이 재개될 경우, 지난해와 달리 대출을 위한 자금조달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디자인. 김민영 기자.
기준금리. 디자인. 김민영 기자.

기업대출 리스크, 은행 불안요소 될까

하지만, 지난해 기업대출 확대를 통한 실적 제고를 바라보는 은행권 내부의 속내는 그리 밝지만은 못하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와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기업대출을 큰 폭으로 늘렸지만, 고금리로 인해 이자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소위 ‘한계기업’이 추후 은행권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28%로 3개월 새 0.05%p 상승했다. 개인사업자 대출 역시 0.24%로 0.06%p 올랐고, 상대적으로 자금사정에 여유가 있는 대기업 연체율 역시 0.02%p로 소폭(0.01%p) 확대됐다.

통상적으로 시중은행들은 연초 그리고 연말에 연체율 관리를 위한 상환 노력에 집중한다. 그런 까닭에 연초와 연말에는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전분기 또는 전월 대비 낮아지는게 일반적인데, 지난해에는 오히려 연체율이 확대되며 우려를 더욱 키우는 모습이다.

특히, 대기업 가운데서도 △운수 △석유정제 및 화학 △식음료 및 숙박(호텔‧리조트 등)을 계열사로 보유한 곳의 채무문제는 올해도 시중은행의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은행권 내부에선 이미 일부 대기업의 관련 계열사는 지난해 영업손실 탓에 수천억원의 차입금 및 이자상환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유동성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는 기업대출을 유연하게 운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건전성 관리를 위한 노력도 지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업대출의 금리 인하 여부 또한 올해 기업대출 기반의 수익성 제고의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은행권에 고통 분담 차원에서의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은행들의 대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국내 중소기업·소상공인 300개 사(社)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이들이 보유한 대출상품의 평균 금리는 5.65% 수준이다. 이는 전년 동월(2.93%) 대비 2.72%p나 오른 수치이자 같은 기간 기준금리 상승폭(2.25%p)을 웃도는 수준이다.

금리가 인하되면 자연스레 이자 수익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은행권에 대한 공공재 역할,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이같은 요청을 외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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