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3000조원 육박한 가계‧기업 부채
기준금리 인상에 내년 상환 압박 더 커질 듯
“한계기업‧차주 연착륙 위한 지원방안 필요해”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기준금리 인상과 고금리‧고환율, 하반기 불거진 단기자금 시장의 경색 등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난 몇 년간 국내 경제의 최대 부실 뇌관이었던 대출시장이 역대급 위기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긴축 강화의 여파로 기준금리가 3%대를 넘어서면서 가계 및 기업 차주가 부담해야 할 이자 규모가 급격히 불어난 데다, 전반적인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연 소득으로 대출 상환 자체가 어려운 소위 ‘한계기업’, ‘한계차주’도 급증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일각에서는 내년 중 예정대로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고,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단행될 경우, 부실 위험에 다다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 규모 또한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 까닭에 상당수 전문가는 사실상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부실 부채에 대한 공포가 국내 경제‧금융시장에 드리울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도 하고 있다.

일단 정부와 금융당국은 최근 공개한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취약차주들의 부채 연착륙을 위한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부채의 현실화까지 고려한다면 보다 세밀하고 촘촘한 지원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기조와 각종 국내외 이슈로 인한 금융시장 경색의 여파로 국내 가계 및 기업의 부채가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지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불거진 부채의 공포는, 과거 기업 혹은 가계 차주 등 한쪽에 치우쳤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포함한 이전 경제위기 상황과 달리 가계와 기업 양쪽 모두 역대급 가계부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3000조원 육박’한 가계‧기업부채

실제로 연말을 맞아 공개되고 있는 올해 주요 금융‧경제 지표는 국내 가계 및 기업의 부채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공개한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와 기업부채를 합한 민간신용은 약 4790조2000억 규모다. 여기서 민간 신용은 가계와 비금융법인 기업이 가진 대출과 정부 융자, 채권 등 모든 부채를 의미한다. 사실상 기업과 가계가 지고 있는 모든 ‘빚’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가계신용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가계부채(1870조6000억원) 등의 영향으로 대출까지 합산해 지난 9월 기준 2252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경제의 새로운 부실 뇌관 중 하나로 떠오른 기업신용은 가계신용보다 더 큰 오름세를 보였다. 회사채 등을 포함한 기업신용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기업대출(1722조9000억원)의 여파로 총 2537조5000억원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부채의 공급 범위를 국내 은행권으로 좁혀봐도 증가세는 뚜렷하게 감지된다. 실제로 지난 10월 기준 국내 은행권의 가계 및 기업대출 규모는 전년 동월(2129조3000억원) 대비 약 5.1%가량 늘어난 2237조 5000억원 수준이다.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부문의 증감세 역시 앞서 언급한 민간신용의 흐름과 유사했다. 지난 10월 기준 기업대출은 전년 대비 10.4%(111조3000억원) 늘어난 1179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가계대출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0.3%(-3조1000억원) 감소한 1057조8000억원 수준을 보였다.

물론 가계대출이 최근 몇 개월간 감소 추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은행권 대출 규모 역시 역대 최대 기록을 매월 경신하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올해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 변화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올해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 변화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약해진 기초체력에 부실채권↑

문제는 단순히 대출 규모의 증가에서만 확인되는 건 아니다. 부채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상환할 수 있는 차주들의 기초체력이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대출 시장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미 국내 가계 특히 소상공인‧자영업자 중심 대출의 상당수가 부실위험 수준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데다, 실제 국내 총생산 대비 부채 규모도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3분기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자금순환 통계상 가계·기업 부채 합) 비율은 223.7% 수준이다. 이는 지난 2분기(222.3%) 대비 1.4%p 오른 사상 최고 기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이란 말 그대로 국내 총생산과 민간 신용, 즉 부채의 규모를 비율화 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이 223.7%라는 건, 국내 총부채가 국내 총생산 보다 약 2.23배가량 많다는 뜻이다.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상환 증가의 여파로 전분기(105.7%) 대비 0.5%p 감소한 105.2% 수준을 보였다. 반면, 기업신용의 GDP 대비 비율은 전분기(116.6%) 대비 1.9%p 증가한 118.5%를 기록했다.

여기에 최근 국내 대출 시장의 부실 뇌관으로 떠오른 기업대출, 그중에도 상대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발 리스크 우려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특히, 이미 취약차주가 된 자영업자‧소상공인 차주들이 유동성 압박에 이중, 삼중으로 또 다른 대출을 추가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부실 우려 역시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3분기 기준 소상공인‧자영업자대출은 1014조2000억원으로 매 분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출 증가율의 경우, 은행(6.5%)보다 비은행(28.7%)에서, 비취약차주(13.8%)보다 취약차주(18.7%)가 더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은행 부문에서 취약차주가 더 많은 대출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부실 가능성도 더욱 커졌을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행은 현재의 이들 대출 증가세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내년 말 전체 자영업자 대출이 1130조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중 약 3.5%인 40조원 정도는 부실위험을 내포한 대출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복현 금감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추경호 경제부총리,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내년에도 ‘대출 리스크’ 확대될까

더 큰 문제는 바로 내년이다. 한국은행이 당분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선을 그으면서 가계 및 기업대출 금리 인상 또한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예‧적금 금리 인상 권고를 자제한 금융당국의 조치로 대출금리의 오름세도 다소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인위적인 금리 조정으로 인상세를 막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p 오를 때마다 이자 부담은 약 16만4000원 정도 늘어난다.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지금까지 기준금리가 2.75%p 오른 점을 감안하면, 1년 3개월 사이에 가계대출 차주들의 이자부담은 180만4000원으로 11배나 늘어났다.

특히, 이 같은 금리 인상에 따른 원리금 및 이자 상환 부담 증가가 지속될수록 앞서 언급한 상환능력 자체를 상실한 ‘좀비차주’의 증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5억원을 연 4% 금리(30년 만기‧원리금분할상환)로 대출받았을 경우 당시 기준 차주가 부담해야 할 월 원리금은 약 248만원 수준이지만, 금리가 8%에 도달할 경우, 월 납입금은 약 381만원으로 4% 금리 당시보다 138만원 가량 늘어난다. 만약 금리가 연 10%를 찍게 된다면, 월 납입금은 약 455만원으로 처음 대출을 받았을 당시보다 1.5배가량 늘어난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금융시장의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전반적인 대출 둔화 추이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부실화 우려 가능성이 높은 채무에 대해 보다 촘촘한 연착륙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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