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에 사상 첫 가계대출 ’역성장‘ 기록
유동성 위축‧경기침체에 기업대출은 폭발적 증가
다소 둔화 예측에도 올해 대출 수요는 지속될 듯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인해 뚜렷해진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시장의 엇갈린 흐름이 올해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은행권의 대응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전반적인 가계대출 감소세 속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가계대출 규제 완화 조치는 부동산 관련 대출 상품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회사채 시장의 경색으로 은행의 대출 창구를 두드리는 기업 차주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은행권에서는 자칫 현실화할 수 있는 기업대출 발 리스크 차단을 위해 기존보다 대출 문턱을 높일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고금리에 가계‧기업대출 ‘엇갈린 흐름’

5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업계는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의 여파로 다소 위축된 대출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전후로 적용했던 각종 대출 규제 조치를 올해부터 완화 또는 철폐할 방침이다.

일단, 금융당국은 우선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목적의 일환으로 주택 관련 대출 상품의 규제를 완화한다. 은행권 자체적으로도 취약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 감소, 신규 대출 모집 등을 위해 △우대금리 지원 △기본 대출금리 인하 등의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대부분 가계 차주를 대상으로 한 대출 상품에 집중돼있다는 것이 은행업계의 설명이다. 오히려 지난해 전반적인 감소추세를 보였던 가계대출과 달리, 꾸준히 증가해온 기업대출의 경우 오히려 은행권을 중심으로 문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업계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사실 현시점에서 대출이 늘어나는 것에는 이자 수익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잠재적 부실 채권 증가라는 부정적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라며 “가계 및 기업대출 추이에 대응하기 위한 올 한해 전략 또한 리스크 관리에 방점이 찍혀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3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 시작에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3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 시작에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가계대출 규제 ‘확실하게 푼다’

앞서 언급했듯, 대출 규제 완화의 핵심은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모아져있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기조는 올해도 유지된다. 규제지역에서 무주택자와 1주택자(기존 주택 처분)의 주택담보안정비율(LTV)을 50%로 일괄 적용하고, 투기 및 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담대도 허용한다.

특히 규제지역 내 서민·실수요자의 경우 기존 4억원에서 최대 6억원 한도 내에서 70%까지 LTV를 우대해 최근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고가의 부동산뿐 아니라 무주택자‧1주택자에게도 집값의 절반까지 대출을 지원, 주거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이러한 대출 규제 완화는 비단 부동산 대출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대출을 포함한 전반적인 일반 신용대출 부문에서도 이전보다는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2021년부터 강화해온 ‘가계대출 총량 관리’ 제도를 사실상 운영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지난 2021년 주요 시중은행에 연간 대출 증가율을 6~7% 수준에 맞출 것을 권고했다. 급격히 불어나는 가계대출이 자칫 부실폭탄화될 수 있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출 총량을 관리하라는 목적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p 정도 강화된 4~5% 수준의 증가율 목표치를 설정하면서, 급격히 불어났던 가계대출 총량은 지난해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1057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월(1060조9000억원)대비 3조1000억원 가량 감소했다. 특히, 일반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의 경우, 올해만 무려 20조원이나 줄어들면서 전반적인 가계대출 감소세를 견인하기도 했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사실 별도의 규제 완화 조치가 없어도 워낙 대출 금리가 오른 상황이라 신규 대출 자체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오히려 시중은행의 영업점을 중심으로 대출 영업을 강화할지도 사실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러한 대출 규제 완화 속에서도 금융당국은 부동산 대출 분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만큼은 고수하는 방식으로 소위 ‘안전장치’는 유지한다. 소위 ‘반쪽짜리 규제’라는 일각의 비판 속에서도 이를 고수하는 것은 차주들의 상환 능력을 엄격하게 심사해 혹시 모를 부실 폭탄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기업대출 문턱 높이려는 은행권

이처럼 가계대출 감소세를 반전시키기 위한 정부와 금융권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히려 최근 대출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기업 차주에 대한 대출 문턱은 오히려 높아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불거진 단기자금 시장 경색, 이에 따른 회사채 시장의 위축으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차주들의 발걸음이 은행을 향하고 있지만 정작 은행권에서는 기업대출에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감소세를 보였던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큰 폭으로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1월 은행권 기업대출은 전월 대비 10조5000억원 증가했는데, 이는 통계 속보치 작성이 시작된 지난 2009년 6월 이후 11월 기준 최대 수준의 증가폭 기록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700조원을 넘어서며(703조7268조원) 같은 기간 가계대출 잔액(692조원)을 상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대출이 지난해 4분기에 급증한 이유는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다소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기업어음(CP) 금리는 여전히 5%대 초중반(5.15%‧4일 기준)으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월 3일 CP금리가 1%대 중반(1.55%)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처럼 기업대출이 급증하는 흐름을 보이면서 은행권에서는 일찌감치 기업대출 문턱을 다소 높이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4분기 대출행태지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마이너스(–)3을 기록했다.

대출행태지수란 것이 매 분기 한국은행이 금융기관 대상으로 앞으로 대출 어떤식으로 할 것인지는 묻는 조사다. 지수가 플러스(+) 값이면 대출 완화하겠다는 응답이, 마이너스면 대출 조이겠다는 응답이 많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단기자금 시장을 비롯한 경기 상황이 심상치 않은 만큼 대출 문턱과 무관하게 은행 대출 창구를 찾는 기업들은 여전히 많을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 역시 은행권의 기업대출 확대를 권고하고 나선 만큼, 은행들이 쉽사리 대출 문턱을 높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기업대출 확대를 권고하는 상황에서 은행권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대출 확대를 위한 은행권 내 자금조달이 원활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의 추가적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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