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은행권 정기예금 170조원 넘게 증가
5%대 예금금리에 시중자금 유입 속도전
금리인상 둔화에 유입 흐름 꺾일 가능성도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올 한해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과 주요 투자처로 분류돼온 주식‧부동산 시장 등의 위축으로 이른바 안전자산을 찾아 자금이 유입되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 5%대를 터치한 정기 예‧적금 금리의 오름세에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은행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올 한해만 국내 주요 시중은행권으로 170조원이 넘는 자금이 들어온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수신상품으로의 자금 유입에 더해 오는 2023년 상반기까지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주들의 대출 상환의 여파로 자금 유입 속도 또한 더욱 가팔라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수신금리 인상과 주식시장의 불황, 경기 불확실성의 여파로 시중은행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역머니부브가 고착화되면서 정기예금 잔액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금융당국의 금리인상 자제령에 따른 정기 예‧적금 금리 인상세의 둔화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연내 이어진 역머니무브 기조 또한 연말을 전후로 주춤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금리가 2%p 이상 급격하게 오르면서, 금리인상기에 흔히 포착되는 소위 ‘역머니무브’ 현상이 유독 두드러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주식, 가상화폐 등 위험자산에 있던 시중자금이 비교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은행권의 예‧적금으로 이동한다는 뜻의 역머니무브는 대게 기준금리 인상기에 주로 나타나는 금융시장의 현상 중 하나로 분류된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180조원에 육박한 역머니무브

올 한해 은행권으로의 자금 유입은 이전에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가파른 속도를 보였다. 속도뿐 아니라, 유입된 자금 규모 또한 이전 기준금리 인상기에서의 역머니무브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컸다는 것이 은행권 내부의 설명이다.

실제로 데일리임팩트가 확인한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1월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827조299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808조2980억원) 대비 19조700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특히 지난해 연말(654조9360억원)과 비교하면 172조3630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인데, 이는 지난해 연간 증가폭(40조5280억원)보다 4배 이상 큰 규모다.

은행업계에서는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 한 해 정기예금으로 유입된 자금 규모가 180조원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전체 금융권에서도 유사하게 포착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10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통화량 잔액(M2 기준)은 전월(3744조2000억원)보다 0.4%(13조8000억원) 증가한 3757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5.9%로 전월(6.6%)보다 둔화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광의의 통화(M2)란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 예금 등 당장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돈뿐만 아니라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등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을 의미한다.

특히 주목해볼 부분은 정기 예‧적금 규모의 증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금융권 내 정기 예·적금으로 유입된 자금 규모는 46조원에 육박(45조9000억원) 수준이다. 연내 지속된 안전자산 선호 기조의 여파로 해석되는데, 특히 10월 중 정기 예·적금 증가 폭은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지난 2001년 12월 이후 최대 증가 폭이었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준금리 인상, 예대마진 이슈 등의 여파로 정기 예‧적금 금리가 치솟으면서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 은행권 수신상품으로 자금이 유입된 것”이라며 “다만, 요구불예금과 같은 저원가성 상품에 대한 자금 유입이 적었다는 점은 은행권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예대금리차 변동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예대금리차 변동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가팔라진 예금 금리 인상 속도

이처럼 올 한해 역대급 ‘역머니무브’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은 연 5%대를 터치한 은행권 내 정기 예‧적금 금리의 오름세다.

실제로 올해 은행권 내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본 적 없는 금리 수준을 내세운 상품들이 주목받았다.

특히 앞서 언급한 기준금리 인상 외에도 소위 은행권의 ‘이자 장사 논란’으로 촉발된 금리정책 이슈는 ‘예대금리차 공시 의무화’라는 제도의 시행은 수신상품 금리 인상의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과도한 예대금리차를 좁히기 위해서 은행권은 공격적으로 수신금리를 인상했고, 그 결과 한때 ‘0%대 금리’가 대세였던 수신상품 금리는 3~4%대가 기본이 될 정도로 상승했다.

특히, 일부 지방은행들과 인터넷전문은행, 또는 우대조건을 이용한 시중은행의 적금상품은 5~6%대 심지어 8%대 이상의 금리를 지원하기도 했다.

금리 인상폭 뿐 아니라 속도 역시 이전과 달리 민첩해졌다. 통상적으로 은행권에서는 기준금리 인상이 발표된 이후, 열흘에서 최대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금리 인상분을 예‧적금 금리에 반영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촉발된 예대금리차 논란, 여기에 더해 급등한 대출 금리로 역대급 이자 이익을 거두며 소위 ‘이자장사’ 논란까지 이어지자 은행권도 이전과 달리 발 빠르게 기준금리 인상분을 수신 금리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시중은행은 최근 들어 기준금리 인상이 결정된 이후 2~3일 이내에 이를 반영한 수신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당일에 곧바로 수신금리를 올리기도 했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주춤한 금리 오름세, 역머니무브 둔화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최근 금융당국의 소위 ‘금리경쟁 자제’ 권고의 여파로 정기 예‧적금 금리의 오름세가 다소 둔화한 점에 주목하며 역머니무브 현상이 다소 주춤해질 가능성도 거론한다.

실제로 현재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운영하는 정기예금 상품 중 연 5%대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상품은 없다. 한때 연 5%대 금리를 지원했던 우리은행의 ‘우리 WON플러스 예금’은 22일 기준 연 4.77%의 금리를 지원하고 있다.

또 NH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은 최고 연 4.75%의 금리를, KB국민은행의 ‘KB 스타정기예금’ 또한 최고 4.65%의 금리가 적용됐다. 이밖에 신한은행(신한 쏠편한 정기예금‧연 4.65%), 하나은행(하나의 정기예금‧연 4.70%)도 연 4%대 중‧후반 수준의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금리 인상세의 둔화는 곧바로 시장에도 반영된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 19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전월 말(865조6500억원) 대비 800억원 가량 증가한 865조73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전월대비 정기 예‧적금 잔액이 늘어나긴 했지만, 하반기들어 매월 수조원 이상의 자금 유입이 있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역머니무브 기조가 크게 둔화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은행권에서는 이러한 역머니무브의 둔화가 자칫 자금조달 과정에서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물론 최근 신한,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시중은행들이 은행채 발행을 재개하며 자금조달에 그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마저도 연말 상환이 도래하는 은행채의 차환 형태일 뿐, 추가적인 은행채 발행은 여전히 막혀있어 실효성 측면에서도 의문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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