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3나노 칩 양산 돌입…반년 만에 삼성전자 추격
기술 유출 우려에 해외 투자 신중해진 삼성전자
반도체 지원에 소극적인 정부…세액공제율도 깎아

TSMC의 클린룸 전경. 사진. TSMC.
TSMC의 클린룸 전경. 사진. TSMC.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글로벌 반도체 강자 삼성전자의 아성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정작 한국정부의 지원사격은 부실해 국내 반도체업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 1위인 TSMC가 3나노(㎚,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제품 양산에 돌입하면서 삼성전자가 누리던 선점 효과가 사라질 위기다.

규모의 경제에서 앞서는 TSMC가 3나노 공정에 공격적으로 나설 경우 삼성전자의 고객사 쟁탈 전략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특별법 등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마저 경쟁국보다 턱없이 낮아 반도체업계 위기감이 가중되고 있다. 

TSMC, 3나노 추격전 본격화

27일 경제일보 등 대만언론에 따르면 TSMC는 오는 29일 남부 타이난의 남부과학단지 내 18 팹에서 3나노 칩 양산 기념 행사를 개최하고 향후 계획 등을 설명한다.

18팹은 12인치(300㎜) 웨이퍼 공장으로 5나노 반도체를 생산해 왔다가, 이번에 5~9기 라인에서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게 됐다. TSMC는 내년부터 N3E 칩제조 기술을 활용해 생산량과 수율(생산품 중 합격품 비율)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삼성전자에 내준 TSMC가 대대적으로 기술 마케팅을 띄우는 것을 두고 대만언론들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등 해외투자를 늘리면서 탈(脫) 대만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제스처라는 게 현지 언론의 해석이다. 

TSMC의 행보는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TSMC가 9월에서 4분기로 3나노 양산 시기를 늦췄다.

삼성전자와 미세공정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TSMC가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좁히고 고객사 이탈을 막기 위해 맞불을 놨다는 것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미세공정 기술력은 파운드리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특히 3나노에서 밀린 TSMC가 기술 주도권을 쥐기 위해 향후 로드맵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고 밝혔다. 

TSMC는 3나노에서는 기존의 핀펫 공정을 유지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차세대 트랜지스터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에 독자기술인 MBCFET 구조를 적용하고 있다.

반도체업계 일각에서 TSMC가 3나노 양산을 시작하더라도 삼성전자에 불리한 상황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술력이 있는 곳으로 고객사가 움직이게 되는데, 3나노 이하에선 삼성전자가 TSMC에 앞서고 있다”며 ”아직까지 스마트폰 등에서 3나노 공정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삼성전자도 2024년부터 미국 텍사스 공장에서 3나노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그때까지 검증된 기술력을 확보하면, 빅테크들이 삼성전자를 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TSMC의 설비투자와 기술 진전은 위협적이다. TSMC는 400억달러를 들여 미국 애리조나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말부터 1공장에서 4나노를 생산한다. 2026년부터는 2공장에서 3나노 반도체를 만든다. TSMC는 1·2공장 합쳐 연간 웨이퍼 60만장을 생산하고 연매출 400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TSMC는 2나노 이하를 위한 첨단 공장과 12나노 이상을 담당하는 공장을 함께 추진 중이다. 대만 북부 신주 지역에 2나노 공장을 신설해 2025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여기에 1나노 공장을 신주 지역에 세울 가능성이 점쳐진다.

일본에서 2024년부터 가동될 12·16·22·28나노 공장 외에 독일 드레스덴에서도 22·28나노 반도체 공장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주역들이 손가락으로 3을 가리키며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탈한국 불가능한데 지원도 인색

TSMC의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했던 건 자국 정부는 물론 세계 각 국의 지원책을 영리하고 활용하고 있어서다. 

대만 정부는 자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첨단산업 관련 시설투자를 할 경우에는 5%의 추가 공제 혜택을 준다.

중국도 반도체 기업의 공정 수준에 따라 법인 소득세를 50~100% 감면하고 2025년까지 1조위안을 반도체 산업에 쏟아 붓고 있다.

반도체 부흥을 꿈꾸는 일본은 경제안보법을 통해 반도체 시설 유치에 나섰다. 구마모토에 건립되는 TSMC 반도체 공장의 경우 비용의 절반(4760억엔)을 일본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아시아에서 반도체 공급망을 가져오려는 미국 및 유럽 또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와 과학법을 제정하고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립하면 25%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430억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TSMC는 각 국에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하는 대가로 투자와 함께 현지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 미국 추가 투자를 확정하면서 애플, 인텔 등으로부터 3나노 주문을 확보할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삼성전자는 해외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처지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그렇지 않아도 인력과 기술 유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터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외 투자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국내 대표 기업이라는 삼성전자가 지닌 상징성도 있어 해외 투자를 늘릴 경우 국가대표이 자국에서 발을 뺀다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K-칩스법으로 불리는 반도체특별법을 보면 반도체 설비 투자 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8%,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 적용하기로 했다.

대기업만 6%에서 2%포인트 늘어났을 뿐 중견·중소기업은 현행대로 공제율을 유지했다. 

앞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로 높일 것을 제안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 10%, 중견기업 15%, 중소기업 30%를 주장했다. ‘대기업 특혜’라는 야당과, 반도체 지원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여당 간 이견이 컸던 탓에 반도체특별법은 표류해왔다.

최종안이 여야안보다 후퇴한 데에는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기재부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야당안보다 낮은 안을 내놓으면서 국회 문턱을 넘게 됐기 떄문이다. 

반도체 관련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반도체 관련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반도체업계 “산업 특성 이해하는지 의문“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반도체업계에서는 ‘탈한국이 답’이라는 자조섞인 반응까지 나온다.

반도체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10점짜리 법을 만들어 놓고 어떻게 경쟁국들과 상대하라는 건지 어이가 없다“면서 “국가전략산업이라더니, 앞으로도 설비투자, 연구개발은 기업이 요령껏 하라는 의미가 아니냐. 이럴바엔 해외로 옮기는 게 낫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정치권이 국내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반도체 소비보다 생산에 집중돼 있다 보니 대기업 중심의 생태계가 구축돼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반도체 공급난에 시달렸던 유럽과 미국 등과는 위기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세제 혜택이나 설비투자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대기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게 반도체 사업이다. 대기업으로 향하는 지원이 반도체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특별법을 발의한 양향자 무소속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에 관한 국제 표준은 25%, 미국 25%, 대만 25%, 중국은 무려 100%다. 한국 8%, 경쟁력이 있겠냐“면서 “우리 정부가 뒷걸음질 치면서 반도체 산업은 코리아 엑소더스 중이다. 벌써 미국으로 빠져나간 투자금만 300조원인데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반도체특위) 민간위원과 대한전자공학회·한국마이크로전자및패키징학회·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반도체공학회 등 4대 반도체학회도 비판 성명을 냈다.

이러한 업계의 반발에 기재부는 세제 지원은 적지 않다라고 항변 중이다. 기재부는 입장문을 통해 “대기업의 세액공제율은 3%에서 6%로 2배 인상했고 내년부터 8%로 상향된다. 또 내년 투자증가분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한시적으로 4%에서 10%로 상향할 예정이므로, 대기업은 최대 18%, 중소기업은 최대 26%의 높은 공제율을 적용 받는다“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세액공제율을 상향하는 대만의)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현행 우리나라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R&D 비용 세액공제율 30~50%, 설비투자 세액공제율 6~20%보다 낮은 수준이고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이 대만 등 주요국에 비해 낮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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