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공백으로 사업 차질” 강조…오너 리더십 당위성 부각해와

국내외 현장 점검에 집중…대규모 투자안 이후 실행전략 제시 無

“사법리스크 해소 없이 셀프 승진 불가피…충성심 강화 전략 일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현지 시각) 삼성전자와 멕시코에 동반 진출한 협력회사의 멕시코 공장을 찾았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현지 시각) 삼성전자와 멕시코에 동반 진출한 협력회사의 멕시코 공장을 찾았다.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삼성이 들썩이고 있다. 

매년 8월 하반기 전략(플래그십)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등 모바일 신제품을 시작으로 유럽·북미와 같은 구매력이 높은 시장을 겨냥한 생활가전·TV 제품을 공격적으로 선보여왔다. 

그렇지 않아도 이슈메이커인 삼성을 향해 올해 이목이 더욱 집중되는 이유는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내외 현장 경영에 매진하고 있어서다. 오너 리더십의 당위성을 역설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의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은 그동안 오너 리더십의 긍정적 효과를 부각해왔다. 이사회 중심 경영이 확립돼 단기 실적은 방어할 수 있어도 중장기 전략을 챙길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같은 주장은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주요 제품 경쟁력과 맞물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실제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모바일, TV는 매출 1위를 수성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위기신호가 나타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메모리는 후발주자들에게 신기술 추격을 허용했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이미지센서와 같은 시스템은 초격차 전략에도 2인자 자리에 머물고 있다. 스마트폰 역시 갤럭시 브랜드의 프리미엄화를 공들였지만, 최근 중저가폰인 갤럭시A 시리즈의 매출이 높아지면서 애매한 위치에 놓였다. TV에서도 프리미엄 액정표시장치(LCD) 기반의 QLED 시장에서 중국업체들의 추격이 본격화 되고 있다. 

물론 이 부회장이 미래 사업으로 점찍은 분야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파운드리에서 3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미세 공정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차세대 TV인 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 제품도 출시를 마쳤다. 다만 이들 제품은 현재까진 시장의 판을 흔들진 못하고 있다. ‘세계 최초’ ‘업계 최초’ 같은 수식어를 떼면 시장개척자로서의 면모가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총수의 복귀는 그룹 경영의 구심점이 확립됨을 의미한다. 오너 리더십을 입증하기 위해 과감한 의사 결정과 속도감 있는 경영이 이뤄진다. 사업상 투자나 공장 설립과 같은 결정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주요 경영진이 발로 뛰는 모습이 자주 노출된다. 해외 출장은 물론이려니와, 내외부 간담회 같은 행사도 부쩍 늘어난다. 제품·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반응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기민하게 대응하는 분위기가 강해진다. 

더욱이 삼성은 그룹 계열사만 60곳, 해외법인도 575곳에 달한다. 경쟁사들이 사업 재편을 통해 경영 실험에 나설 때, 삼성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2020년 고(故)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내놓은 뉴삼성 역시 구체화된 게 없다. 선대의 사업보국과 인재 제일을 계승하되, 관행들은 과감히 철폐하겠다는 게 뉴삼성의 핵심. 그러나 후속 실행전략은 오리무중이다.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투자안 또한 선언적 내용에 가깝다는 평가다. 지난해 8월과 올해 5월 삼성은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투자안을 발표했으나, 숫자만 다를 뿐 내용적으로는 대동소이한 수준에 그쳤다.

때문에 복권 이후 이 부회장이 뉴삼성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이 부회장은 큰 그림을 제시하는 대신 국내외 사업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를 놓고 재계 안팎에서는 폭풍 전 고요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구상에 따라 조직 재정비에 들어가기 전 내부 동요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조직에 대대적인 변화를 예상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직원은 데일리임팩트에 “세계 최고의 IT기업을 목표로 하는 것과 달리, 조직의 혁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다“며 “최근 소규모 인사실험이 빈번해졌는데, 큰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오간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현지 시각) 하만 멕시코공장을 찾아 생산현황 등을 점검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현지 시각) 하만 멕시코공장을 찾아 생산현황 등을 점검했다. 사진. 삼성전자.

이 부회장의 동선을 복기하면 조직 정비 전 사전 점검에 나섰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빌 게이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과의 면담(8월 16일)이나 삼성전자 기흥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8월 19일)처럼 기술 경영과 사회공헌을 강조한 일정도 있었다. 허나 삼성전자 화성캠퍼스(8월 19일),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8월 24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8월 26일), 삼성SDS 잠실캠퍼스(8월 30일)까지 아우르는 일정의 공통점은 현장 점검이었다는 점이다. 

해외 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에게 지지를 요청한 것 외에는 지난 8~10일(현지시간) 멕시코에서 전장 자회사인 하만과 케레타로 가전 공장, 삼성엔지니어링 도보스카스 정유공장 건설 현장, 전력제어 부품 등을 납품하는 국내 협력사 공장을 찾았다. 

특히 이 부회장이 만난 대상들이 눈길을 끈다. 반도체 임직원, MZ세대, 워킹맘, 임직원 자녀, 해외 협력사 직원과 만나고, 이들 틈에 섞여 구내식당에서 식사했다. 반도체 부문은 보상 문제로 노사 갈등을 겪었고,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SDS는 주력 계열사 들지 못한다. 해외 협력사는 아직까지 원청-하청 사이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이들부터 챙긴 건 소속감을 강화하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이나 삼성 모두 내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기다. 이건희 회장 2주기를 전후해 이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고, 지원조직을 세울 가능성이 커서다. 다만 이 부회장의 ‘셀프 승진’은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시선이 존재한다. 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의혹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검찰이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기까지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직접 내부 구성원을 챙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너 리더십을 발휘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승진을 미룰 수 없는 만큼, 내부 여론부터 확실하게 돌려놓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기업 경영 전문가는 데일리임팩트에 “이 부회장의 승진은 대내외에 삼성의 총수가 공식적으로 바뀌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며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져 이 부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할 순 있어도 사법 리스크는 계속되고 있기에, 오너 리더십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마당에 회장 승진을 미룰 경우, 삼성이 주장해 온 오너 리더십의 당위성이 약해진다“면서 “정치인이 지역구를 챙기듯 사업장을 돌며 스킨십을 늘리는 행보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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