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임원 인사 및 조직 개편서 컨트롤타워 신설 빠져

대내외 변수 영향력 더 커져…융복합 산업 경쟁력 요구돼

그룹 규모-사업도 방대해져…경영 전반 챙길 조직 필요

전사 지원조직, 정경유착에 연루…여론 의식해 명분쌓기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지원할 전사 조직이 연내 출범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다음주 진행될 사장단 인사에 전사 지원조직 출범에 대한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2017년 사실상 그룹이 해체된 뒤 삼성은 전자와 건설, 금융 등 이종산업 계열사들을 아우를 통합조직이 없었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신규 사업 진출 과정에서 계열사들의 조력을 얻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전사 지원조직의 필요성은 공감한다. 산업의 경계가 사라진 융복합 시대에 맞는 성장 전략을 내놓으려면 협력이 필수적이라서다. 그럼에도 삼성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론’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회장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호의적이다. 그 배경에는 취임식이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0월 27일 별도의 행사 없이 취임했다. 따로 취임 메시지를 내지도 않았다. 선친의 추도식 후 계열사 사장단에게 전한 소회로 갈음했다. 

이후 드러난 모습도 권위주의적인 모습가 거리가 있었다. 취임 다음날 찾은 곳은 28년간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와 함께 해 온 협력사였다. 삼성 계열사 현장을 공식 방문한 건 취임한 지 열흘 이상 지난 뒤였다. 

이 회장의 행보는 호감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데이터앤리서치가 9월22일부터 11월30일까지 이 회장에 대한 온라인 포스팅과 호감도를 분석한 결과, 이 회장 취임 후 관련 포스팅이 한달여만에 1만8335건에 달했다. 취임 한 달 전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준이다. 긍정률은 44.74%에서 50.33%로 증가했고 순호감도도 18.17%였에서 29.49%로 늘었다. 특히 ‘취임식(없이)‘이란 키워드의 포스팅이 701건으로 집계돼 탈권위적 모습이 이 회장에 대한 우호 여론을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삼성이 여론에 부쩍 신경을 쓰는 것은 전사 지원조직에 대한 우려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미전실) 등으로 이름이 달라졌지만 과거에도 총수를 보좌하는 조직이 있었다.이들 조직은 조직의 맨 꼭대기에서 계열사들을 지휘하며 단기 사업 전략부터 신사업 발굴까지 총괄했다. 총수의 구상을 구체화해 계열사들이 이를 단기 전략과 중장기 목표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총수 경영 체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보니 비자금 문제 등에 연루되는 일이 잦았다. 또 각 계열사를 수직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삼성이 전문경영인을 키우는 과정에서 일종의 옥상옥이 된 측면도 있었다. 결국 2017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컨트롤타워의 역작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고 결국 조직은 해체됐다. 그 뒤 세운 지원조직은 아예 전자(사업지원), 금융(금융 경쟁력 제고), 건설(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 등 계열별로 나눴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계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컨트롤타워가 있을 경우, 조 단위 M&A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 인수후통합 등에서 계열사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 실행력이 높아진다“며 “복합 위기,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도 전사 차원에서 신속하게 위기 대응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주요 그룹들은 급변하는 대내외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컨트롤타워를 강화하는 추세다. SK그룹은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그룹의 해외 진출 전략까지 총괄한다. 현대차그룹은 기존의 기획조정실 외에 별도로 글로벌전략오피스(GSO)를 세워 미래 모빌리티 전략과 대내외 협업, 사업화 검증까지 모두 챙기기로 했다. LG그룹은 지주사인 ㈜LG에서 전사 경영 전략을 짜고 계열사별 재무 관리 등을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삼성은 자율 경영을 강조하기 위해 컨트롤타워를 세우지 않았다. 

문제는 그룹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룹 내 삼성전자의 기여도는 날로 증대되고 있다. 그렇다고 비전자계열사들과의 협력이 원활한 건 아니다. 스마트홈,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에서 공동의 사업 기회를 모색하려는 데 소극적이다. 계열별 주력사업들의 경쟁력을 점검하고 단기 목표를 재조정하는 작업도 수월치 않다. 계열사들 간 측면 지원이 전제되는 대형 M&A는 2016년 하만 인수 이후로 멈췄다. 특히 삼성전자는 ‘유의미한 빅딜’을 시사하고도 벌써 2년 가까이 구체적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앗다. 

재계에서는 계열사별 독립 경영,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는 추세에도 컨트롤타워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기업 대부분이 총수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어서다. 총수가 방대한 계열사들의 사업을 일일일이 챙기기 어려워 그를 대신해 그룹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조직이 있어야 한다.  

다만 삼성은 컨트롤타워가 총수 리스크를 키울 가능성을 우려해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 컨트롤타워가 경영 승계 작업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시세 조종 등과 같은 불법적 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에 선뜻 논란을 키울 조직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삼성은 여론의 의식해 이 회장의 승진을 공식화하기까지 뜸을 들였다. 2020년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별세한 뒤 이 회장의 재판을 이유로 관련 논의를 일단 멈췄다. 지난해 이 회장의 가석방 뒤에는 ‘취업제한’을 들어 승진을 미뤘다. 올 8월 복권이 된 뒤에도 두 달 이상 승진 시기를 조율했다. 

더욱이 이 회장 스스로가 강조해 온 준법경영도 부메랑이 됐다 이 회장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와 만나 ESG 의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과거 삼성의 컨트롤타워에서 불거진 비위, 불법 의혹이 강했다. 컨트롤타워의 부활은 이 회장이 줄곤 견지해 온 관행의 철폐, 과거와의 결별과도 정면 대치된다. 그렇다보니 준법위가 생각하는 컨트롤타워는 삼성의 그것과 거리가 있다. 준법위는 컨트롤타워를 그룹 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이식하는 지원조직으로 바라본다. 경영 일원화와 효율화를 강조하는 삼성과는 결이 다른 셈이다. 지난달 준법위 관계자와 삼성의 3대 TF장이 가진 간담회에서 양자 간 견해 차를 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여론을 살피며 명분쌓기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의 리더십 부각, 사회공헌(CSR) 강화 등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이다. 이에 차라리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준법위처럼 그룹 내 불법행위를 감시·견제할 장치도 마련됐고, ESG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라 컨트롤타워의 역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주요 그룹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사전에 예방하고 지속적으로 검증할 조직이 있지 않느냐“면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안전장치를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명분을 챙기느라 실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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