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정상들로부터 러브콜 쇄도했거만
가파른 업황 악화에 ”실적 방어도 어렵다” 침통
미·중 갈등 심화…공급망 내재화 움직임 활발
기업만으론 벅찬데…정부는 단기대책만 제시

국내 기업들이 이끄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다. 이미 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론, 삼성전자의 실적은 시장의 전망에 훨씬 못미쳤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국내 기업들이 이끄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다. 이미 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론, 삼성전자의 실적은 시장의 전망에 훨씬 못미쳤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22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했다. 양국 정상이 상견례를 하기 전 민간기업을 찾는 건 이례적이다. 미국이 삼성전자, 나아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시사하는 장면이었다. 

지난해 삼성전자 평택공장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이는 바이든 대통령만이 아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 마이어 독일 대통령,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등 주요국 정상들이 어김없이 들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여야의원들도 국감을 앞두고 평택으로 향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발휘하는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호사다마’였던 걸까. K칩은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높아진 가운데 경기 침체, 금리 인상으로 수요 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 주문량은 줄어들고 재고가 쌓이면서 메모리반도체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실적 방어가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지정학적 변수를 더 큰 고민이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은 앞다퉈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어놓기 위해 수출 규제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중국 현지 생산기지를 운영 중인 국내 기업들은 진퇴양난에 처하게 됐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실적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진. 김민영 기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실적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진. 김민영 기자. 

고성장 멈춘 메모리…역대급 한파 도래

9일 업계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 성적은 저조할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9~11월 실적을 발표한 미국 마이크론의 매출은 41억달러(약 5조원)에 그쳤다. 1년 사이 47%나 빠진 셈이다. 특히 1억9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메모리 반도체 1위인 삼성전자도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잠정실적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4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은 8.58% 줄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69%나 급감했다. 전 분기 대비로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8.83%, 60.37% 줄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컨센서스로 매출 72조7226억원, 영업이익 6조8737억원을 제시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2조원 이상 급감했다. 

이달 말 실적을 발표할 SK하이닉스의 전망은 더 좋지 않다. 에프앤가이드는 매출 8조6296억원, 영업손실 8061억원을 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영업손실 규모는 이달 들어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인텔의 낸드사업부 인수 후 통합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대규모 적자가 누적되고 있어서다. 

D램 탑3 업체가 시장의 전망치보다 낮은 성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의 위기감은 고조되는 분위기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세를 이어지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 조사 결과, 지난해 12월 PC용 D램(DDR4 8Gb)과 메모리카드·USB용 낸드플래시(128Gb) 고정거래가격은 각각 2.21달러, 4.14달러로 나타났다. 호황을 누렸던 1년 전보다 D램은 40%, 낸드도 14% 낮다.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분기 단위 계약을 체결한다. 이 같은 계약 가격, 즉 고정거래가격이 변동성이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하락세를 지속했다는 건 반도체 재고가 누적되고 수요도 꺾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등을 기대할 요인도 없다. 차세대 메모리인 DDR5를 지원하는 인텔의 신규 중앙처리장치(CPU) 출시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고, 금리 인상이 지속되면서 IT기업들도 투자는커녕 인력 감축에 들어간 상태다. 그나마 실적을 방어했던 서버용 D램 수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재고를 털어낼 방법도 마땅치 않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전후방산업이 모두 부진해서다. 

이를 방증하듯 1월 산업경기전망은 경기 전망은 암울하다. 산업연구원의 전문가 서베이 지수(PSI)를 보면, 이달 화학·철강을 제외한 나머지 업종 모두 ‘업황 악화’ 전망이 우세했다. 반도체(27)와 자동차(67)·가전(67)·디스플레이(68)가 모두 기준선(100)을 한참 밑돌았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이 전년 대비 3.6% 감소해 5960억달러(약 741조원)를 기록한다고 봤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지난해보다 반도체 매출이 4.1% 줄어 5565억달러(약 692조원)를 달성할 것으로 추산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을 더 좋지 않다. 가트너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에서만 전년도와 비교해 16.2%의 매출 감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한 12나노급 16Gb DDR5 D램.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개발한 12나노급 16Gb DDR5 D램.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초격차 기술로 한파를 견디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고성능컴퓨팅(HPC),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전기자, 데이터센터 수요를 선점하기 위해 관련 제품군을 보완 중이다. 

삼정전자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12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급 16Gb(기가비트) DDR5 D램을 개발하고 미국 AMD와 호환성 검증을 마쳤다. 멀티 레이어 극자외선(EUV) 기술을 활용해 집적도를 높인 12나노급 D램은 이전 세대와 비교해 생산성은 20% 향상되고 소비전력은 23% 개선됐다. 최대 동작 속도는 7.2Gbps로 1초에 30GB(기가바이트) 용량의 UHD 영화 2편을 처리할 수 있다. 

이에 앞서 512GB CXL D램을 개발했다. CPU 추가 없이 D램 용량을 4배 늘리기 때문에 서버 한 대당 메모리 용량은 수십 테라바이트 이상 확장할 수 있다. 반면 데이터 지연 시간은 기존 제품 대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픽 D램인 GDDR6도 공개했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24Gbps로 풀HD급 영화 275편을 1초 만에 처리할 수 있다. 모바일 D램인 14나노급 LPDDR5X는 업계 최고 수준인 동작소도 8.5Gbps를 구현했다.

낸드 적층경쟁 주도권도 되찾을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용량의 1Tb(테라비트) 8세대 V낸드 양산에 돌입한 것. 업계에서 추정하는 단수는 236단으로 SK하이닉스와 유사한 수준지만 먼저 상용화에 성공해 우위에 서게 됐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단 기술들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HKMG공정을 적용한 모바일 D램 판매를 시작했다. 유전율(K)이 높은 물질을 D램 트랜지스터 내부 절연막에 사용해 누설되는 전류를 줄였다. 소비전력은 25% 저감되고 동작 속도는 33% 빠른 8.5Gbps를 구현한다.

CXL 메모리에 연산 기능을 통합한 CMS도 개발했다. 고용량 메모리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빅데이터 분석 응용 프로그램이 자주 수행하는 머신러닝데이터 필터링 연산까지 가능하다. 

최고층 낸드 기록도 SK하이닉스가 다시 썼다. 세계 최소형 238단 4D 낸드를 개발했는데, 이전 세대와 비교해 생산성 34%, 데이터 전송 속도 50%씩 향상됐다. 반면 소모 전력은 21% 절감시켰다. 이 제품은 올 상반기 양산에 들어간다.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통해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받을 영향이 제한적일지라도 장기적으로 사업 운영에 부담을 가중시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통해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받을 영향이 제한적일지라도 장기적으로 사업 운영에 부담을 가중시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실적 방어도 벅찬데…’ 거세지는 외풍 

다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게 지워진 짐은 ‘실적 개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대외 압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차세대 기술이 부각될수록 외풍은 더 강하게 불 공산이 크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략무기로 급부상했다. 더욱이 세계 패권을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더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미국 정부의 압박, 반도체 독립을 꿈꾸는 중국정부의 의지 사이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일본, 대만처럼 미국과의 ‘동맹’을 택하자니 중국 사업을 축소해야 할 상황이다. 주요 고객사가 즐비한 중국과 손을 잡기엔 원천기술을 지닌 미국의 힘이 막강하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배경에는 위기감이 자리한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중 12%만이 미국산이라고 분석했다. 1990년대 37%에 달했던 제조능력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동맹인 대만(22%), 한국(21%), 일본(15%)을 제외하면 중국의 비약이 돋보인다.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15%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는 것. 이는 미국보다 높다. 

미국은 중국으로 첨단 기술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반도체 장비 규제 수위를 높였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자국 내 반도체 장비업체들에 ‘14나노 이하 공정을 적용한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고 공문을 보냈다. 곧이어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16나노 이하 로직칩 기술과 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의 중국 수출도 막았다.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를 포함해 중국기업 36곳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했다. 화웨이 제재보다 더 센 규제다. 중국의 첨단 기술 의지를 아예 꺾어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1년간 수출 통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올해 10월 이후 미국 정부가 다시 ‘유예’ 조치를 해줄지 미지수다. 미국은 통상 질서가 흔들리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어서다. 중국 상무부는 이미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동맹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대중국 방어벽을 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왼쪽에서 두번째)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윤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조 바이든(왼쪽에서 두번째)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윤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 제조기술력 내재화에 나서는 점도 달갑지 않은 요소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칩과 과학법을 제정해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립하면 25%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또 반도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520억달러(약 65조원)를 투입한다.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430억유로(약 57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아시아 내에서도 공급망 주도권을 쥐려는 각축전이 치열해졌다. 중국 또한 반도체 기업의 공정 수준에 따라 법인 소득세를 50~100% 감면하고 2025년까지 1조위안(183조5000억원)을 반도체 산업에 쏟아 붓는다. 대만 정부는 산업혁신법을 개정해 자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높였다. 첨단산업 관련 시설투자를 할 경우에는 5%의 추가 공제 혜택을 준다. 

반도체 부흥을 꿈꾸는 일본은 가장 공격적이다. 경제안보법을 통해 반도체 시설을 유치하고 있다. 구마모토에 건립되는 TSMC 반도체 공장의 경우 비용의 절반(4760억엔)을 일본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이와 별도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자국 기업들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도요타·키옥시아·소니·NTT·소프트뱅크·NEC·덴소·미쓰비시UFJ 등 8개 기업은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를 설립했다. 라피더스는 미국IBM과 2027년까지 2나노 공정칩을 개발하기로 했는데, 일본 정부는 700억엔(약 6600억원)을 지원한다. 

세계 주요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지원에는 인색하다. 반도체 설비투자와 세제 혜택은 올해에만 적용된다. 반도체를 안보와 동일선상에 놓고 기술과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경쟁국과 대조적인 선택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이라며 “클린룸을 짓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리는데 올해 투자만 지원하겠다는 건, 반도체 기업들에게 경기 활성화의 역할을 떠맡긴 것과 다름없다. 한시가 급할 때 지원이라는 미명으로 정부가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미국 등 다른 국가에 첨단 공정 설비를 세울 수 없는 노릇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프렌드쇼어링에 나설 경우, 매력이 감소될 것이라고 본다. 고성능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술 역량을 갖춘 기업이 특정 국가의 공급망에 재편되지 않는다는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는 의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치밀한 마케팅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라면서 "국내에서 만들기에 K칩과 한국이 주목받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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