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삼성전자 시작으로 계열사 임원 인사 단행

지난해 30~50대 전진 배치…여성·외국인 발탁 역대급

주력사업 경쟁력 제고 위해 ’소프트파워’ 강화 전망

위기 대응 역량 보완 필요…인력 재배치 가능성 제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수원사업장에서 VD사업부 MZ세대 직원들로부터 차기 전략 제품 및 서비스 현황에 대해 보고 받았다. 이 부회장이 커브드 모니터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수원사업장에서 VD사업부 MZ세대 직원들로부터 차기 전략 제품 및 서비스 현황에 대해 보고 받았다. 이 부회장이 커브드 모니터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듭시다. 제가 그 앞에 서겠습니다.”

삼성이 다음달 초 사장단을 시작으로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인사 발표 이후에는 새해 재무 목표와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회의가 이어진다. 그런 만큼, 임원 인사는 짧게는 내년도 방향성, 넓게는 5년 이상 중장기 경영 밑그림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특히 이번 인사는 이재용 체제의 기틀을 닦는 첫 단추다. 회장 승진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재용 체제 원년, 경영 성과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양쪽에서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자면 올 한해 경기 침체 가운데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삼중고를 견디며 대내외 변수를 방어해 온 현 경영진에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높다. 

‘핵심 전력’ 삼성전자 지난해부터 ‘혁신’ 강조

올해 역시 그룹 인사의 핵심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계열사 인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삼성전자의 기조가 고스란히 반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변화를 줬다. 삼성전자를 이끌던 김기남·김현석·고동진 트로이카가 물러났고, 경계현·한종희 체제로 재편됐다. 사업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장급 역시 기술 리더십과 사업 역량이 검증된 인물들을 전면에 세웠다. 때문에 올해는 기존 경영진을 유임시켜 안정을 꾀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재계의 예상을 뒤엎는 인사를 단행했던 점을 배제할 순 없다. 이 회장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고민을 내비쳐왔다. 초격차 기술을 강조한 것도 산업 간 경계를 뛰어넘는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혁신’을 결국 소프트파워를 바꾸는 데 있다고 봤다. 

지난해 2017년 이후 4년 만에 리더십을 교체하면서 이 회장은 조직의 활력과 역동성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뒀다. 50대 경영진은 물론, 30·40대 기수들이 전진 배치됐다. 부사장 승진자 수를 2배 이상 늘렸는데, 그 중 15%가 40대 기수였을 정도다. 5년 내 가장 많은 외국인·여성인재가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삼성전기로 자리를 옮겼던 경계현 사장을 불러들이는 이례적 장면도 연출됐다. 

재계 상위 그룹들이 안정 속 혁신을 꾀한 것과 대조적인 선택이었다. 이 회장의 뜻은 명확했다. 세계적 탑 브랜드에 걸맞게 구성원들에게 ‘실력’과 ‘성장잠재력’을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1년 가까이 지체된 뉴삼성 동력을 인사 혁신으로 끌어올려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방증이다. 

올해 이 회장의 ‘쇄신 의지’는 더 강해졌을 가능성을 배제키 어렵다. 삼성전자는 상반기까지 좋은 성적을 거뒀다. 수익성이 급감한 3분기 역시 분기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그러나 스마트폰·메모리·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등 주력사업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경쟁사들이 먼저 최고층 낸드를 선보였고,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철수설이 제기됐고, 스마트폰은 연간 목표치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재계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잘 구축된 시스템 덕분에 재무성과는 좋았다”며 “초격차 기술을 보유했지만 이를 안정화 시키지 못하는 등 성장잠재력에서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다만 악재가 계속되는 점은 변화에 대한 부담을 증폭시킬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되고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삼성전자의 사업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추가로 금리가 상향 조정되면 시장의 예상보다 반도체 겨울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회장이 인력 재배치를 통해 초격차 DNA를 되살리더라도 사장급 이상에서는 현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상징적 자리를 새 인물로 채울 가능성도 점친다. 이재승 사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생활가전사업부장이 대표적이다. 내부 발탁이 유력시되지만,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외부 영입에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세탁기 불량으로 품질 신뢰도가 훼손됐다. 아울러 부사장급 이하에서 혁신 색채가 강해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전자는 전무·부사장 직급을 부사장으로 통일하고, 직급별 체류 연한을 없애 차기 경영리더들의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강화했다. 이 회장이 실리콘밸리의 민첩성을 이식하길 원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 30~40대 인재들을 대거 발탁해 삼성전자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세상 바꿀 인재’ 육성 의지…인적 쇄신 포석?

그룹 전체적으로도 변화를 전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 회장은 향후 경영 방향성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인사를 통해 뉴삼성 구상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삼성 내 임기 만료를 앞둔 시내이사는 12명으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포함돼 있다. 삼성이 3세 경영을 본격화 했다는 점에서 이부진 사장의 부회장 승진설이 거론된다.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역시 삼성이 사회공헌(CSR)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이전보다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미 이 이사장은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CSR연구실 고문을 겸직 중이다. 

이와 관련,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의 역할이 커질 경우 조직 내 여성 인재 등용이 늘어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삼성은 여성 임원 두 자릿수 등용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못했다. 이 회장은 조직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유연성을 강화하기 위해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계열사별로 3040세대의 약진도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은 복권 이후 비주력 계열사들을 챙기는 과정에서 MZ세대와의 소통에 신경 썼다. 능력 있는 인재가 조직을 떠나기 않게 이들의 충성도를 높일 방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젊은 인재들의 승진 규모를 늘려 조직문화를 환기시키는 효과까지도 노릴 수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그룹 통합 컨트롤타워 부활 여부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미래전략실(미전실)이 해제된 뒤 사업지원(삼성전자)·금융경쟁력 제고(삼성생명)·설계·조달·시공(EPC) 경쟁력 강화(삼성물산)의 3개의 TF가 운영 중이다. 해당 TF는 동종 계열사끼리 의견을 조율하고 경영 전략 등을 공유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이 미흡하다 보니, 업무 추진 과정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계열사간 시너지를 꾀하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있다.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회장의 지배력을 약해지게 된다. 경영권을 방어하고, 지배력을 유지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통합 컨트롤타워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여겨진다. 

컨트롤타워를 부활한다면 연쇄적으로 인사 이동의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팀장(부회장),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 김수목 삼성전자 법무실장(사장) 외에도 최윤호 삼성SDI 사장, 김명수 삼성물산 EPC경쟁력강화TF 팀장(사장) 등 미전실 출신 인사들이 여러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경영 기획부터 위기 대응까지 경험했던 만큼, 통합 컨트롤타워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올해 인사는 뉴삼성의 첫 관문이나 다름없다”며 “이 회장의 광폭 행보를 보면 삼성은 내년에 공격적 경영을 통해 사업 확장에 나설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맞게 조직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면 결국 인적 혁신이 불가피 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성과가 좋았던 삼성전자만 해도 전체 승진 규모는 크지 않았다”면서 “효율성을 고려한 결과로 여겨지는데, 보상 원칙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올핸 승진 인원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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