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가계대출 7년만 감소, 단기자금 시장도 개선 조짐

미국발 긴축과 자금경색 우려도 여전…‘낙관론’은 경계해야

여의도 증권가. 사진.이미지투데이
여의도 증권가. 사진.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3고’ 현상과 자금시장 경색의 여파로 위험수위에 도달했던 각종 경제 지표가 정부와 금융기관의 정책적 지원과 맞물려 점차 안정화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수년간 지속돼온 은행권 내 가계대출 증가세가 연초부터 꺾인 데 이어, 최근에는 금융권 가계대출도 7년여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여기에 고공비행을 이어가던 기업어음(CP) 금리와 국고채 금리도 상승세가 꺾이는 등 단기자금시장과 회사채 시장의 불안 역시 일정부분 해소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업계 내부에서는 대출, 채권, 단기금융 등 시장 전반의 안정세가 당장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위험수위에 도달할 정도로 고공비행하는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은행채 발행 축소에도 여전히 회사채에 대한 투심이 위축된 점, 그리고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큰 만큼 실물경기 위축 방지를 위한 조치가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경제에 드리워진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장기화와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자금시장 위축 등의 여파로 악화 일로를 걸었던 주요 경제‧금융 지표가 최근 들어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인다.

당장, 가계부채 리스크를 감지한 은행권은 연이어 대출 금리를 인하하며 부채 압박을 덜어주기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정부도 새출발기금과 같은 정책적 수단을 통해 원금 및 이자 상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또 채권시장의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총 15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공급하며 단기자금시장에 작지만 소중한 훈풍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이를 통해 당장의 경영 애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 지원뿐 아니라 기초체력이 저하된 취약 기업의 정상화도 돕겠다는 것이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뚜렷해지는 대출 감소세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천정부지로 치솟던 가계대출의 전반적인 안정화다. 18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국내 가계대출 규모가 급격히 불어났지만, 증가세는 분명 이전과 달리 한풀 꺾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국내 전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3조 2000억원 감소했다. 이러한 감소세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석 달 연속 감소이자 전년 동월 대비로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지난 2015년 이후 최초의 감소(-0.3%) 기록이다.

한때 증가폭이 10%까지 확대(2021년 4월)된 이후, 9~10% 수준을 유지하던 가계대출 증가율은 지난 9월 0%대(0.6%)로 떨어진 이후 지난달 결국 마이너스대로 진입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주담대 증가폭이 전월 대비 축소된 데 반해, 기타대출 감소폭은 확대되면서 전반적인 가계대출 감소폭 또한 커졌다.

실제로 신용대출을 비롯한 기타대출은 3조 6000억원 감소하며 전월(-2조2000억원)보다 1조4000억원 감소폭이 확대됐다. 반면 주담대는 전세대출을 중심으로 전월(2조원) 대비 증가폭이 축소되며, 지난달 5000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으로 조사 범위를 좁혀봐도 가계대출 안정세는 뚜렷하게 감지된다. 지난달 말 기준 이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93조346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월 대비 6129억원 감소한 수치다.

지난 1월을 시작으로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는데, 지난해 12월부터 1년 가까이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는 신용대출 수요 감소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유동성 공급에 단기자금시장도 ‘진정’

이러한 지표의 안정화는 특히, 단기자금시장 관련한 수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자금시장의 경색으로 돈줄이 막히는 소위 ‘돈맥경화’가 심화한 상황에서 악화일로를 걸었던 채권 및 금리 지표가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정책의 여파로 다소 안정되는 듯한 추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일 기준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한달 전(11월 7일) 대비 0.50%p 하락한 3.682%를 기록했다. 5년물(4.270%→3.620), 10년물(4.247→3.534), 20년물(4.215→3.518) 또한 나란히 하락하며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동안 단기자금시장의 냉기를 불러온 기업어음(CP) 금리의 상승세 또한 멈췄다. 레고랜드 사태로 위축됐던 채권시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조절 기대감과 정부의 유동성 공급 조치로 점차 안정세로 접어들었지만, 단기 자금시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까닭에 최근 관련 지표의 변화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91일물 CP 금리는 연 5.54%에 마감해 지난 12월 1일 이후 동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CP 91물 금리는 지난 9월 22일(3.15%) 이후 49거래일 연속 상승한 뒤, 5거래일 연속 상승세가 멈춰섰다.

금융업계에서는 정부의 유동성 공급의 여파가 채권시장에 이어 단기금융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CP금리 상승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데일리임팩트에 “국고채와 공사채에 이어 가장 불안감이 높았던 CP금리 역시 최근 안정화 추세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라며 “향후 우량기업 회사채와 은행계열 여전채를 중심으로 안정화가 시작될 것으로 예측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와 더불어 자금시장을 블랙홀로 이끌었던 한전채 역시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발행된 한전채(3년물) 금리는 4.8%를 기록하며 지난 9월 이후 3개월여 만에 4%대 금리로 자금조달에 성공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6%대에 근접(5.99%)하기도 했던 한전채 금리는 이후 정부와 금융당국의 각종 유동성 지원 정책의 영향으로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이복현 금감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은총재,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이복현 금감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은총재,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유안정세에도 낙관론은 ‘경계’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추세에도 안정화 흐름이 굳어지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하고 있다.

최근 거론되는 ‘속도조절론’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다시 강화될 가능성도 있는 데다, 연말에 증가하는 자금 수요를 시장에서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현재 금융당국이 진행 중인 5조원 규모의 채안펀드와 추가 2차 캐피탈콜 등 자금지원에도 연말 북클로징(회계년도 장부 결산)의 여파로 자금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정책효과는 가시화되겠지만 실제 회복에는 3~6개월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특히 연말에 상환이 도래하는 34조원 규모의 증권사 CP 및 PF-ABCP의 원활한 차환 여부가 향후 안정화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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