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比 13.7조원 늘어난 기업대출, 누적 ‘1170조원’ 육박

치솟는 기업대출 금리에 내년 이자부담 50조원에 달할 듯

은행도 유동성 위기 걱정…자금조달 위한 정책적 지원 필요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연초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기업대출이 유동성 위기에 신음하는 금융업계 내 또 하나의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달간 가계대출 증감 추이가 완만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업대출은 오히려 연초부터 최근까지 증가하며 대출 시장 전반의 규모와 비중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의 위축으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한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들의 자금 창구로 사실상 은행권의 대출이 유일한 상황에서, 이러한 기업대출 급증이 그간 누적돼온 은행권의 리스크를 현실화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특히, 그동안 가계대출 감소로 인해 줄어든 이자수익을 상쇄하기 위해 기업대출에 영업력을 집중해온 그간의 은행권 전략이 예상치 못한 유동성 위기로 인해 결과적으로 묘수가 아닌 악수(惡手)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은행권으로 집중된 기업 대상 유동성 공급 창구를 다방면으로 확대하고, 은행권 자체적인 기업대출 관리 강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30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3고 현상의 지속, 여기에 자금시장의 유동성 문제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은행권 내 기업대출 역시 덩달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상반기 가계대출 감소분을 기업대출로 메꿔온 주요 시중은행들이 하반기 들어 기업대출 강화에 영업력을 집중해온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증대로 인해 기업대출 부문이 또 하나의 리스크가 될 가능성 또한 대두되고 있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오름세 멈추지 않는 기업대출

앞서 언급했듯, 국내 은행권의 기업대출 규모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증가폭이 다소 축소되거나 잔액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연초부터 지금까지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13조7000억원 늘어난 116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대기업(9조3000억원)과 중소기업(4조4000억원) 모두 대출 규모가 늘어났는데, 특히 이번 9월 대비 10월 증가폭(13조7000억원)은 통계 작성이 시작된 지난 2009년 6월 이후 10월 기준, 역대 최대 증가 수준이다.

조사대상을 국내 5대 시중은행으로 좁혀봐도 추세는 비슷하다. 실제로 지난 25일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708조954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 대비 4조2840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이미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10월에만 9조7717억원 가량 늘어난 기업대출은 이번 달에도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달 증가폭은 전월 대비 다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아직 유동성 위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인 만큼 기업대출 증가세 자체는 연말 나아가 내년 1분기까지는 지속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자금시장의 유동성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당장의 기업 운전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 및 대기업의 대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라며 “금융당국 역시 은행권의 기업대출 공급을 독려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기업대출 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어서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사진. 이미지투데이. 

40조원 육박한 기업 이자부담

이처럼 기업대출이 급증하는 가운데, 기업대출 공급 금리도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기업 차주들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 규모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업대출 발 부채 리스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국내 예금은행의 기업대출 가중평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전월 대비 0.61%p 오른 연 5.27% 수준을 기록했다. 이로써 기업대출 금리는 기준금리가 3%대를 기록했던 지난 2012년 9월(5.30%) 이후 10년 1개월여 만에 ‘연 5%’를 넘어섰다.

특히, IMF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1998년 1월(2.46%p) 이후 최대 수준의 오름세(0.61%p)를 보였는데 대기업 대출 금리의 경우 평균 금리 인상폭을 웃도는 0.7%p 상승(4.38%→5.08%)해 눈길을 끌었다. 중소기업대출 금리 또한 전월 대비 0.62%p 오른 연 5.49%를 기록했다.

이처럼 기업대출 금리가 역대급 인상폭을 기록한건, 사상 첫 ‘6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은행 대출창구로 몰린 데 따른 수요 증가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기업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이자 부담 역시 지속해서 커지고 있다. 이미 깜깜이 채무 등의 여파로 소위 ‘한계기업’에 내몰린 기업차주들이 불어나는 이자 부담으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대출 이자 부담이 내년 연말까지 16조2000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써 현재 기업대출 변동금리 비중(72.9%)과 기준금리 인상 예측치에 따른 가중 평균 차입금리(4.9%~내5.26%)를 근거로 기업대출 이자 부담은 지난 3분기 기준 33조7000억원에서 내년 말에는 49조9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기업대출 급증에 은행권도 ‘리스크 우려’

문제는 유동성 공급 위축으로 대출에 의존 중인 기업뿐 아니라, 이를 공급하고 있는 은행권의 리스크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채권시장 안정을 이유로 은행권의 대표적 자금조달 수단인 은행채 발행까지 중단된 상황에서 현시점에 사실상 유일한 자금조달 창구인 수신 잔액마저 금융당국의 예금 금리 인상 자제 여파에 일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당장 은행업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권의 자금조달 창구가 상당 부분 막힌 상황에서, 소위 자금시장의 ‘소방수’ 역할을 강제하는 것 자체가 적잖은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월 중순까지 100%대 수준을 유지해온 5대 시중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최근 90%대 후반 수준까지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별도의 자금조달 없이 유동성 공급에만 집중할 경우, 내달 중 LCR이 90%대 초중반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LCR이란 향후 1개월간 순현금유출액에 대한 고유동성자산의 비율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LCR이 100%를 넘으면 비교적 안정적 수준의 유동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당국 역시 이러한 은행업계의 우려를 인지하고 일부 규제완화를 통한 유동성 공급을 시도하고 있다. 당장, 지난 10월 말부터 중단된 은행채 발행을 일부 재개하고 LCR 기준 강화 유예 및 추가 완화 등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추가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금융당국은 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은행권에 8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대출 집행이 가능하도록 예대율 규제를 추가 완화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지난달 기업대출 증가폭(13조7000억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불이 난 자금시장에 쏟아부을 물(자금)이 고갈됐는데 금융당국은 여전히 은행권에 불을 끌 소방수 역할만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은행권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지원하는 조치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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