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 악화에 지정학적 변수 장기화

지난해와 달리 ‘보수적’ 기조 뚜렷해질 듯

재무 관리-신사업 투자 중심으로 단행 전망

충성도 제고 필요…핵심 인재 확보 방안 고심

정기 인사철을 앞두고 신규 임원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별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정기 인사철을 앞두고 신규 임원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별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둔 재계가 뒤숭숭하다. 올해도 국내 주요 그룹들이 ‘안정 속 혁신’에 무게를 실을 가능성이 커져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주요 그룹들은 ‘선제적 대응’을 이유로 조기 인사를 단행하고 책임자급을 대폭 교체했다. 지난해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재계 5대 그룹은 이미 인적 쇄신을 마쳤다. 

다만 올해는 ‘혁신’을 위한 또 다른 용인술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총수 중심 체계를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경영 불확실성은 나날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수의 ‘복심’으로 통하는 인물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실무급에서 성별·연차·국적에 관계없이 ‘발탁’ 인사를 통해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고 밀도감 있는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내년에도 어둡다” 고개 드는 ‘안정론’

“내년에도 경영 시계가 불투명하기에 변화의 ‘폭’은 크지 않겠지만, 조직에 ‘메시지’를 던지는 인사는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 대기업 A사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 같이 말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고, 지정학적 변수가 장기화 되면서 기업들은 생존 경쟁에 내몰렸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인사 전반에 투영될 것이란 진단이다. 

기준금리는 국내 기업 상당수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매출 상위 제조기업 100곳의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임계치는 평균 2.6%로 집계됐다. 현재 기준금리는 3%, 기업 10곳 중 8곳은 한계치에 도달했고, 절반 이상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대기에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올해 한 차례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미국 기준금리는 4%까지 치솟았다. 한미 간 금리 차이가 커진 데다,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8%를 기록, 상승세로 돌아선 만큼, 외환 유출을 막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은행이 이달 중 0.5%포인트 이상 금리를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국내 대기업들이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어서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국내 대기업들이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한 가운데 임원 인사의 향방을 놓고 이목이 집중된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금융비용이 평균 2.0% 증가한다. 원자재‧부품 매입(36.7%), 설비투자(23.0%), 차입금 상환(15.0%), 인건비‧관리비(12.3%)를 위해 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연말까지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어, 또 한 번 금리가 상향 조정되면 대부분의 기업이 유동성 압박에 직면할 처지다. 그러나 재무 여력이 줄더라도 신사업 투자를 중단할 수 없는 기업들은 ‘효율성’을 고민하고 있다. 이에 재계 10대 그룹 중 가장 먼저 인사를 마무리한 한화그룹, CJ그룹과 유사한 인사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화그룹은 차기 총수로 경영 외연을 넓히고 있는 김동관 ㈜한화 부회장 체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조직의 내실을 다지는 데 역점을 뒀다. ㈜한화, 한화정밀기계, 한화건설,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이번에 선임된 주요 계열사 대표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이자 60~70년대생 전략통들이다. 신사업 확대와 경영 실적을 함께 챙기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CJ그룹의 경우, 후계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시점이라 계열사 대표를 대부분 유임시키되 경영 관리 능력을 강화했다. CJ그룹은 지주사 경영지원대표를 신설하고 핵심 계열사인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 신임 대표에 구창근 CJ올리브영 대표를, 후계 재원 마련에서 역할이 기대되는  CJ올리브영 신임 대표엔 이선정 경영리더를 발탁했다. 또 신임 임원 평균나이를 45.5세로 맞춰 젊은 인재 등용문을 넓혔다. 중·단기 성과와 세대교체를 두루 고려한 결과다.  

재계 5대 그룹들도 수익성 창출, 성장 동력 확보의 두 가지 측면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여겨진다. 주력사업에서 시장 지배력을 견고하게 다지되, 신사업 투자와 인재 육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킬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5대 그룹, 수익성-성장 동력에 ‘무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승진 이후 첫 정기 인사를 앞둔 삼성은 이 회장 체제 안착에 무게를 실을 것으로 보인다. 사법 리스크가 계속되고 있고, 지배구조 개편 등에 대한 요구가 높은 까닭에 조직을 흔드는 변화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질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부품과 완제품의 2개의 조직으로 재편하고 수장까지 바꿨다. 

전체적으로 인사의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달 초로 진행될 인사에서 생활가전사업부장의 공석을 채우고, 앞으로 출범할 그룹 통합 컨트롤타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인물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의 인사가 이뤄질 수 있다. 그룹의 핵심 전력인 반도체 사업이 내년까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략통들의 역할 확대도 배제할 수 없다. 

SK그룹은 전문경영인에게 더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일찌감치 최태원 회장이 이사회에 인사권까지 넘겼다. 이에 시장 상황과 계열사별 실적을 기본으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신사업 투자를 진행할 적임자인지를 평가해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해처럼 계열사 대표를 대부분 유임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영 전략 기능을 보다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SK그룹은 반도체·배터리·바이오의 BBC를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삼아 SK의 3막을 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인수합병(M&A)이나 설비 투자를 지속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최 회장이 비상 상황에 대응해 다양한 경영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며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을 강조했다. 재무 관리와 신사업 선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인물을 발탁하거나, BBC 분야 젊은 임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재용(왼쪽에서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주요 경영진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사진. 삼성전자. 
11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재용(왼쪽에서 두번째)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주요 경영진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사진. 삼성전자.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체제를 더 공고히 할 ‘상징적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60대 이상 임원들이 대거 물러나고, ‘정의선의 사람’들로 채운 터다. 지난해 계열사 대표를 맡았거나 영전한 임원 가운데 부회장을 임명, 정 회장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올해 승진 명단을 전년보다 짧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미래 기술 분야와 지정학적 변수에 대응할 인물들이 발탁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신규 임원의 3분의 1을 40대로 채운 것은 물론, 전체 신임 임원의 37%를 연구개발(R&D) 부문에 집중 배치했다. 로보틱스, 미래항공모빌리티(UAM), 자율주행 등에 특화된 인재들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같은 대외 정책에 강한 인물들이 발탁 또는 영입될 수 있다. 

LG그룹 역시 구광모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회장은 LG전자를 포함, 3곳을 제외하고는 계열사 대표 대부분을 유임시켰다. 차석용(LG생활건강), 신학철(LG화학), 정호영(LG디스플레이), 정철동(LG이노텍) 등 연륜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안정적 수익을 창출해 지속 성장의 토대를 공고히 해달라’는 미션을 내린 것이다. 전사 관점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경영 전략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기 위해 지주사에 경영전략부문과 경영지원부문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재무 성적이나 신사업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 경고성 인사가 이뤄질 수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룹의 중심축이 ‘전장’으로 옮겨가는 점을 감안하면 관련 분야에서 발탁 인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구 회장과 함께 합을 맞출 차세대 경영 리더군을 더 두텁게 만들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LG그륩은 지난해 132명의 신규 임원을 임명하면서 무려 62%를 40대로 채웠는데, 올해 전장·경영전략 분야에서 40대 이하 인물들의 전진 배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제 막 후계 승계 작업에 들어간 롯데그룹은 ‘성장’ 기조를 이어가는 데 집중할 공산이 크다. 경영 승계 과정에서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신사업 투자를 맡긴 뒤 공격적으로 재원을 투입할 수 있어서다. 더욱이 그룹의 잠재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동빈 회장이 외형 성장과 내실 강화를 서두를 전망이다. 이에 핵심 경영진 위주로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 주요 계열사 대표들을 유임시키되 경영 성과를 입증한 인물들, 특히 유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계열사 수장들의 약진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신 상무가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신 상무의 승진과 이사회 입성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임원 승진 경쟁 치열…‘상훈’ 고민 커져

국내 주요 그룹 인사가 ‘보수적’으로 진행될 경우, 인사 평가 과정에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여겨진다. 승진은 직장인들에게 확실한 보상안 중 하나다. 하지만 승진 규모가 대폭 축소된다면 ‘별’을 다는 기준에 대해 뒷말이 없도록 ‘납득 가능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국내 대기업 B사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지난해 기업들의 관행이 깨졌다”며 “‘헌신의 대가’였던 승진에서 밀리거나, 직책을 후배에게 넘겨주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고 귀띔 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크다는 뜻이겠지만, ‘OO년생부터는 짐 쌀 준비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동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총수들이 젊어진 데 따라 40대 이하 임원들의 발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인물들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100대 기업 임원 1명당 직원 수 현황. 자료. 유니코써치.
100대 기업 임원 1명당 직원 수 현황. 자료. 유니코써치.

실제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가 매출액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상반기 기준 이들 기업의 임원 수는 7175명이었다. 임원 1명당 직원 수는 120.9명으로, 바꿔 말하면 121명과 경쟁해 승리한 1명만이 별을 달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반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확률은 0.83%로 1%가 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일부 기업은 임원의 숫자가 증가해 조절이 필요하다. 올 상반기 사외이사를 제외한 삼성전자 전체 임원은 1107명이다.

주요 그룹들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군살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가시화 되고 있다. 인건비 부담이 큰 임원 숫자를 늘리지 않으려 하고 있어, 승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지난해 연말 인사와 달리 올해 연말과 내년 초 대기업 임원 승진 인사는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임원 승진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인사 이후 임직원들을 설득할 ‘보상방안’을 고민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성과급, 승진 이외에 충성심을 강화할 요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차세대 통신 등과 같은 첨단 기술 인력과 경영 기획·전략통,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전문가를 기업마다 모시느라 애를 먹고 있다. 사업 재편이 진행 중인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경기가 악화될수록 고급 인재의 가치가 더 빛나기 마련이고, 이들의 몸값도 뛸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붙잡기 위해 기업들마다 매력적인 보상안을 마련하느라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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