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규모 해약금에 장기적 대안 시급
운용 자산 줄면서 유동성 리스크 증가
상품 매력도 올리고 새 먹거리 찾아야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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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임팩트 최동수 기자] 장기 투자자산으로 인기가 높았던 생명보험이 위기에 봉착했다.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의 해약금이 나왔고 생존보험금 역시 1년 새 4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저축성보험 지급금도 60조원에 육박하면서 장기적인 대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보험이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평가와 고금리·고물가에 지갑이 얇아진 고객들의 이탈도 점차 늘어가면서 생명보험사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결국 새 먹거리 발굴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전략이 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보험사가 먹거리를 찾기 위해 다른 분야로의 진출보단 근본적인 보험상품의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17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생보사들의 해지환급금은 38조5299억원(일반 계정 기준)으로 집계됐다. 2000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 규모로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22조6990억원)보다 훨씬 큰 규모다.

특히 지난해 10월에서 11월 한 달 사이에만 약 9조원 가까이 금액이 빠져나갔다.

해지환급금은 보험 계약을 만기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해약했을 때 돌려받는 환급금이다. 중도 해지에 대한 페널티로 납입한 보험료의 일부만 돌려받게 된다.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지만 생활고로 인해 보험을 해약하는 고객이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객들이 사망하지 않음으로써 받아 간 생존 보험금도 1년 새 4조원 넘게 불어났고 지난해 저축성보험 지급금도 60조원에 육박하면서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생보사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23개 생보사들이 지급한 생존급여금은 총 15조67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6%(4조2020억원) 늘었다. 

생존급여금은 계약 만기나 중도해지, 상해·입원 등에 따른 보험금 외에 생존을 이유로 지급된 돈으로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지난해 생보사들이 저축성보험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금도 총 59조342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미 역대 최대 수준이다.

생보사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이 고객에게 돌아갔다"며 "해지로 인한 유동성 리스크는 모든 생보사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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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는 돈 ↓ 고객에 주는 돈 ↑ 리스크 증가

보험사들의 유동성 리스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이유는 벌어들이는 보험금은 점차 줄고 있지만 고객에게 돌아가는 보험금 지급 규모는 폭증했기 때문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급전'이 필요한 고객이 늘었고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보험의 효력이 상실되면서 발생한 환급금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1인 가구가 늘고 출생 인구도 줄어들면서 주 고객층 감소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 역시 업계의 고민이다. 빠져나가는 돈은 많아지는 데 신규 가입이 줄면서 보험사가 운용할 수 있는 자산도 줄어들고 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생보업계의 수입보험료는 0.3% 증가에 그치며 사실상 성장이 멈출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보험이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연말 시중금리 상승에 따라 은행 예금으로 돈이 몰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벌어지면서 이자율이 높은 예금, 적금 등 다른 업권의 금융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했고 이는 보험해약 증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가장 많은 자금이 빠져나간 지난해 10~11월에는 은행권의 수신금리 경쟁으로 5%대 정기예금 상품이 줄줄이 등장했다.

10년 전 판매된 고금리 저축성보험의 해약이 늘어난 것도 보험금 지급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들의 저축성보험 보유계약액은 2021년 말 439조9541억원에서 2022년 11월 416조7579억원으로 23조1962억원(5.3%) 감소했다.

생보사 관계자는 "저축성 보험을 해지하고 고금리의 예금상품으로 갈아타는 경향이 지난해 많이 보였다"며 "생계형 해지 등도 있지만 높은 이자를 받기 위해 갈아타기는 고객도 많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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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누수 최소화하고 新 먹거리 찾아야

사실상 포화 상태에 다다른 국내 보험 시장의 여건상 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판단되면서 생보사들은 보험금 누수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부 보험사의 경우 최근 정기인사·인수합병 등을 통해 자산운용 사업 강화에 나서고 있고 장기보장성보험의 가입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보험 부문의 실적 부진을 자산운용 사업으로 메우고 있다.

교보생명은 부동산 대체전문운용사인 파빌리온자산운용 인수했고 삼성생명은 대체투자 부문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블랙스톤과 6억5000만달러(약 8400억원) 규모의 펀드 투자 약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1사1라이선스' 등 보험 관련 규제를 개선하자 생보사들은 펫보험(반려동불보험)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먹거리 진출보다 근본적인 보험상품의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험료를 낮추고 보장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소비자는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생보사들은 중도해지 때 환급금이 적은 대신 납입보험료가 저렴한 저해지환급금형 종신보험 신상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또 자동차사고부상치료 특약을 탑재하는 등 손해보험 영역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생보사들도 적지 않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험사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 상품 경쟁력을 갖춰나갈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일시적인 정부 지원보단 각종 규제 개선을 통해 보험사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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