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실탄' 저원가성 예금, 올해만 50조원 넘게 감소

'금리인상' 정기예금 꾸준히 증가…이자 조달에 어려움

은행채 발행 최소화에 자금조달 비상, 추가 활로 모색해야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지난해부터 지속된 기준금리 인상 기조의 여파로 국내 시중은행으로 역대급 수준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은행권 내부에서는 자금조달에 대한 우려가 핵심 리스크로 부각되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수신금리 인상과 주식시장의 불황, 경기 불확실성의 여파로 시중은행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역머니부브가 고착화되면서 정기예금 잔액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은행권의 대출 재원이자 자금조달용으로 활용되는 수시입출금‧요구불예금을 포함한 저원가성 예금 잔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은행권의 자금 조달비용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코로나19 금융지원, 레고랜드 사태 등에 따른 정부 발(發) 유동성 공급 지원등의 여파로 당분간 이러한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은행권 내부에서도 당장 은행채를 포함한 기존 자금조달 방안의 활성화 자체가 어려운 만큼 자금확보를 위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국내 주요 시중은행 업계 중심으로 자금조달 약세가 추후 주요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존에 자금조달을 위해 활용돼온 주요 창구가 금융시장 전반의 각종 변수로 인해 막히면서 은행권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들어 국내 시중은행에서 소위 ‘공짜예금’으로 불리고 있는 저원가성 예금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맞춰 지속적으로 감소추세에 접어들고 있다. 저원가성 예금을 대출을 포함한 수익영엽의 ‘총알’로 활용해온 은행권의 입장에서는 다소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영업 실탄’ 저원가성 예금 감소세 지속

실제로 국내 주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저원가성 예금의 감소세는 눈에 띄게 포착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은 전월 말 대비 44조2000억원 감소했다. 지난 8월 말 대비 9월 말 감소폭(3조3000억원)보다 1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범위를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으로 좁혀봐도 이러한 현상은 뚜렷해진다. 지난 10월 말 기준 이들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 합계는 641조 6960억원 수준이다. 이는 전월(670조7740억원) 동기 대비 약 29조800억원 가량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 말 695조2000억원 수준을 기록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특히 지난 상반기 중 불과 6조9000억원 가량 줄어든 요구불잔액은 이후 감소폭을 지속적으로 키워왔다. 지난 7월과 8월, 두 달간 약 18조원 가량 감소한 요구불잔액은 앞서 언급했듯 지난 한 달간 29조원이나 줄어들며 앞서 줄어든 올해 전체 감소폭을 상회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고객들 입장에서도 0%대 금리를 제공하는 관련 상품에 굳이 돈을 넣어둘 이유는 없다”라며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상대적으로 금리경쟁력이 떨어지는 저원가성 예금 상품 대신 정기 예‧적금 선호 현상이 뚜렷해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구불예금은 자유입출금 형태로 이자 비용이 연 평균 0.1% 수준인 저원가성 예금 상품이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수시입출금 통장 역시 저원가성 예금 상품으로 분류된다.

저원가성 예금은 은행권의 자금 유통 창구로 주로 활용된다. 해당 자금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낮은 이자 비용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은행권 내부에서는 저원가성 예금을 많이 확보할수록 공격적인 대출 영업 또는 경쟁력 있는 대출 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사실 올해 연초까지만 해도 수시입출금식 예금을 포함한 저원가성 예금은 은행권 전반의 역대급 실적을 견인하며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기준금리 인상은 본격화됐지만, 주식‧부동산을 포함한 전반적인 투자심리가 위축된데다 경기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일단 당장의 이자는 없더라도 입출금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자금을 묶어둘 수 있는 요구불예금을 선호하는 심리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변동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기준금리 변동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정기예금 증가에 ‘이자부담↑’

반면,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최근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정기예금으로의 자금 유입은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저원가성 예금과 정기적금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정기예금 잔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밝힌 지난 10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전월 말 대비 56조2000억원 늘어난 931조6000억원 수준이다. 이같은 증가폭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지난 2002년 1월 이래 가장 큰 수준의 증가폭이다.

국내 5대 시중은행으로 범위를 좁혀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들의 지난 10월 말 기준 국내 정기예금 잔액은 전월 말 대비 47조7230억원 늘어난 808조2280여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7월 정기예금 잔액이 700조원을 돌파(712조4490억원)한 데 이어, 불과 3개월만에 다시 8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정기예금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5%에 육박했다. 우리은행의 ‘우리WON플러스 예금’이 연 4.71%를 지원중이고, KB국민은행의 ‘KB스타정기예금’ 또한 연 4.69%의 금리를 제공한다.

이밖에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신한 쏠편한 정기예금 △하나의 정기예금을 통해 연 4.60%의 금리를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불과 3개월 만에 100조원이 넘는 자금이 유입되는 등, 정기예금 잔액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바라보는 은행권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정기예금의 증가가 은행권으로의 자금유입 확대에 따른 실적제고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러한 정기예금의 증가는 저원가성 예금의 감소와 맞물려 이자비용 증가, 이에 따른 은행권의 자금조달 압박을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자금조달 비상걸린 은행권

통상적으로 저원가성 예금 감소로 인해 자금이 부족해진 은행권은 이자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 대출 및 은행채 금리를 인상하거나, 자금확충 수단인 은행채 발행을 늘리며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정부가 은행권에 직접 은행채 발행을 축소해 줄 것을 요청한데다, 여전한 논란거리인 과도한 예대금리차 지적으로 대출금리 인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분간 이러한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연준의 4연속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으로 오는 24일로 예정된 한국은행 금통위에서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p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도 더욱 높아졌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 발표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인상될 경우, 예‧적금 금리 인상에 따른 저원가성 예금 이탈의 흐름 또한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이처럼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린 은행권에서도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을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동안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한 ‘금리인상’과 ‘은행채 발행 확대’ 카드를 사실상 꺼내들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 또한 은행권의 시름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채무 불이행 사태가 발생한 레고랜드. 사진. 레고랜드 인스타그램.
채무 불이행 사태가 발생한 레고랜드. 사진. 레고랜드 인스타그램.

사실 이러한 자금조달 리스크는 비단 어제오늘일은 아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금융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의 평균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은 107.6%를 기록했다. 이는 전분기(107.9%) 대비 0.2%p 하락한 수치이자, 전년 동기(110.9) 대비로는 3.3%p 낮아진 수준이다.

NSFR은 금융권의 중장기 유동성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은행이 영업에 필요한 자금을 많이 확보할수록 NSFR은 커진다. 해당 수치에서 확인 가능하듯 사실상 은행권의 자금 조달 악화는 이미 지난해부터 이어진 추세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최근까지 은행권 내에서 시금고, 구금고 확대를 포함한 기관영업에 주력한 것 역시 이 같은 자금 조달력 위축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은행권 내부에서도 요구불예금 확대 등 자금조달 비용을 확보하기 위한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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