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금리 인상 자제’ 당국 권고, 은행권은 자금조달 ‘빨간불’

기존 예대금리차 의무공시와도 ‘엇박자’…정책 방향성도 갈팡질팡

은행권 내부에선 ‘자금조달 우려’ 증폭, “당국 발 지원책 필요해”

11월 금통위를 주재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한국은행.
11월 금통위를 주재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한국은행.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지난주 한국은행이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한 가운데, 금리인상에 미소를 지어야 하는 은행권은 오히려 복잡해진 셈법에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상당수 예‧적금 및 대출금리의 지표가 되는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이러한 여‧수신 상품의 금리 역시 인상이 예상됐다. 하지만 최근 과도한 예금금리 인상을 우려한 금융당국의 권고, 여기에 대출 금리 상승에 따른 부채 리스크 증가와 채권금리 안정화의 여파로 여‧수신 모두 기준금리 인상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준금리 인상 이후, 6%대 진입이 유력했던 상당수 예금상품 금리는 여전히 5%대 후반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 아니라 대출금리 역시 다음 달 주요 지표금리 발표 전까지는 큰 폭의 인상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업계에서는 이처럼 여‧수신 금리 인상에 소극적 대처가 불가피한 은행권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은행권이 시발점이 된 위기가 발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은행권의 위축을 완화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2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주요 시중은행의 여‧수신 금리는 큰 폭의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간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한은 금통위의 금리 인상 결정 이후 이를 빠르게 여‧수신 금리에 반영했던 그간의 모습과는 사뭇 대비된다는 것이 금융업계 전반의 목소리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기준금리 인상에도 ‘미동 없는 수신금리’

지난주, 한국은행 금통위는 올해 마지막 회의를 통해 사상 첫 ‘6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기존 3%에서 3.25%로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했다. 이로써 지난달 금통위를 통해 2011년 3월 이후 11년 7개월 만에 3%대에 진입했던 기준금리는 또 한 번 오름세를 보이며 올해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통상적으로 들려오던 ‘예‧적금 금리 인상’ 소식은 이번만큼은 들려오지 않았다.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이후 줄곧 반복돼온 소위 ‘예대금리차 논란’을 의식한 시중은행들이 금리 인상 이후 재빠르게 수신금리 인상을 결정해온 그간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결정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지난 10월 금통위 당시에도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금통위 금리 인상이 결정된 당일(10월12일) 예‧적금 금리인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은행은 19개의 정기예금과 27개의 적금 금리를 10월 금통위 바로 다음 날인 13일부터 최대 1.00%p 인상했고, 신한은행도 이튿날인 14일부터 예적금 39종에 대해 수신상품 기본금리를 최고 0.8%p 인상했다.

이밖에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NH농협은행도 이미 금통위 이전부터 금리 인상 예측치를 상품에 선반영하거나, 이후 지속해서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번 11월 금통위 이후에는 주요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큰 폭의 변화 없이 기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데일리임팩트와의 통화에서 “수신금리 인상 여부를 논의 중”이라며 이전과 달리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은행에서는 이번 주중에 일부 수신상품의 금리 인상을 단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금통위 직후 앞다퉈 금리 인상을 발표했던 과거와는 미묘한 입장의 변화가 느껴졌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금리정책 엇박자에 은행권도 ‘혼란’

이처럼 한 달 새 시중은행의 입장이 바뀐데는 금융당국의 소위 ‘예금 금리 경쟁 자제’ 권고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금융당국 수장들은 지속해서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해줄 것을 업계에 권고하고 있다. 지난 24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금융사의 유동성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수신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포문을 연데 이어, 이튿날 김주현 금융위원장 또한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과당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금융당국 수장들이 이처럼 수신금리 인상 자제를 요구한 것은, 업권 내 과도한 수신금리 인상 경쟁이 대출금리의 추가 상승뿐 아니라 제2금융권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 10월 한 달간 은행권의 정기예금 잔액은 사상 최대 규모인 56조2000억원이 늘어났다. 이 역시 올해 연초 대비 4%p 가까이 오르며 5%대에 진입한 정기예금 금리의 상승세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내부의 설명이다.

여기에 다음 달부터 좀 더 구체화된 예대금리차 공시가 시행된다는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은 최근 통과된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 세칙’ 개정안을 근거로 그간 ‘행정지도’ 형태로 운용되던 예대금리차 공시를 다음 달부터 법적 구속력을 가진 의무공시로 전환한다.

특히 이번 공시 의무화에 맞춰 대출 평균 기준과 가계대출 기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평균 대출 금리’ 지표를 통해 은행의 대출 금리의 월별 추이를 제공한다. 이밖에 은행 자체 신용등급이 아닌 널리 활용되는 신용평가사(CB)의 신용점수를 가계대출 금리 공시 기준에 활용하고, 공시 세부 항목에 △정책서민 금융 제외 가계대출금리 △저축성 수신금리 △가계예대금리차 등도 포함됐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예대금리차 공시의 법적 근거 마련, 세부 항목 개편이 사실상 은행별 금리산정 체계의 차별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예대금리차 공시제도를 시행하면서 예금금리 인상을 압박해온 정부가 불과 제도 시행 4개월여 만에 예금금리 인상 억제를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일관성 없는 정책이 지속될수록 은행권 발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이복현 금감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은총재,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한 (왼쪽부터)이복현 금감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은총재,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 기획재정부.

은행권 자금조달 우려도 점점 커져

이러한 금융당국의 예금금리 인상 자제령을 바라보는 은행권의 표정은 다소 어둡다. 가뜩이나 금융당국의 유동성 공급 정책 동참, 은행채 발행 자제 등 채권시장 안정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상황에서 예금 확보를 위한 금리까지 자제하라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라는 것이다.

특히, 은행권은 이처럼 은행의 자금조달을 사실상 가로막는 당국 발 정책에 동참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유동성이 막힌 기업에의 대출 공급을 늘리라는 금융당국의 방침이 자칫 은행업계의 유동성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은행채의 상당수를 발행해온 5대 시중은행의 경우, 대부분 지난 10월 중후반 이후 은행채 순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은행채 발행이 멈출 경우, 자금조달의 창구는 사실상 예‧적금이 유일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금융당국의 예금 금리 인상 자제령은 사실상 예금을 통한 자금조달마저 쉽지 않은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 업계 내부의 우려다.

문제는 이러한 은행업계 내 유동성 문제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다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긴축 기조가 끝난 것은 아닌데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 관련 단기자금시장의 위축도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정상화 추가 유예, 은행채 발행 재개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치가 실질적인 유동성 확보와 직결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장,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 경제 수장들은 오늘 비상거시경제회의를 열고 은행권 유동성 지원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도 앞서 언급한 주요 은행권의 요구사항에 더해 은행 예대율 규제 및 금융지주 자회사 간 신용공여 한도 완화 등의 조치 시행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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