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한도 ‘연 소득 100% 이내’ 축소 완료

관치금융 우려 속 ‘고-정’ 콤비 첫 작품 안착…추가 규제에도 ‘관심’

고승범 위원장과 국내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1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뱅커스클럽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고승범 금융위원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 회장. 사진. 금융위원회.
고승범 위원장과 국내 5대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1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뱅커스클럽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고승범 금융위원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 회장. 사진. 금융위원회.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폭증하는 가계 빚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조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5대 금융지주사(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은행 계열사들이 차주 연 소득 이내로 신용대출 한도를 한정하는 조치를 완료했다. 해당 조치가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각각 차기 후보자로 지명된 후 금융당국이 제시한 첫 가계부채 억제책이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추석 직후로 예상되는 추가 대출 규제방안 공개에 앞선 은행권의 이번 행보는 금융당국의 대출 억제 기조에 적극 발맞추겠다는 의지의 하나로도 해석된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이날부터 신용대출 최대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제한한다. 이에 따라 KB국민은행에서 신규 또는 기존 대출자는 연 소득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결정은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나선 금융당국의 권고안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13일 금융당국은 국내 주요 시중은행에 기존 연 소득의 1.2~2배 수준이었던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축소할 것을 권고했다.

5대 시중은행 모두 ‘대출 한도’ 줄였다

그동안 시중은행들은 대출 총량 및 대출 증가율 관리를 위해 신용대출 한도를 꾸준히 줄여왔다. 지난 8월 초 기준,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한도는 직장인의 경우 평균 1억5000만~2억 원, 전문직은 최대 3억원 수준이었다.

이 같은 권고에 따라 NH농협은행은 5대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앞선 지난달 24일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차주의 연 소득 이내로 줄였다. 특히 최대 대출 한도를 연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해 연 소득이 1억원을 넘는 고소득자에게도 최대 1억원 까지만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후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도 차례로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100% 이내로 축소했다.

다만, 이들 은행 모두 신용대출 한도 축소는 신규 및 증액‧대환‧재약정 거래에만 적용하고 기존 대출 고객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한도 축소를 권고한 이후 금융권에서는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가 새나오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도 당국과 금융권 모두 과도한 신용대출 증가세를 억제할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기준금리의 영향을 받는 대출 금리와 달리, 대출 한도는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소위 ‘관치금융’이 도를 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가계부채 관리의 필요성은 공감했지만 대출 실수요자, 특히 주택 구매를 위해 신용대출이 반드시 필요한 무주택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조치였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정부의 입김에 따른 과도한 대출 한도 규제가 금융시장에서의 양극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지난 2일 면담을 갖고 금융현안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고승범 금융위원장(오른쪽)이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과 지난 2일 면담을 갖고 금융현안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정-고 체제의 첫 작품, 효과는?

이러한 금융권의 우려에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감원장은 후보자 신분임에도 이례적으로 적극 대응에 나섰다. 매파로 분류되는 두 사람 모두 가계대출 한도 축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금융당국을 옹호했다.

실제로 고 위원장은 후보자 시절, “큰 가계부채 관리에 대해서는 (금융권과) 협의를 통해 계획도 만들어야 하고, 또 권고한 사항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양측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일각에서 제기한 무리한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을 일축했다.

정은보 금감원장도 취임 이후, 곧바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을 만나 신용대출 한도의 ‘연 소득 이내’ 축소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요청했다. 특히, 이를 잘 지키지 않는 은행에 대한 현장 검사에도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대출 관리에 대한 의지를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 금융당국의 강력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가계대출 증가세는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금융권 내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의 증가 규모는 1조4000억원 안팎에 그친다. 이는 7월 증가세(7조9000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소세는 일종의 ‘착시효과’라는 게 금융업계의 정설로 통한다. 지난 7월 카카오뱅크, HK이노엔 등 ‘대어급’ 기업공개(IPO)가 진행되면서, 공모주 청약을 위한 신용대출 급증이 ‘7월 폭증세’에 단기적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추석 연휴 이후, 강도높은 추가 대출 억제 조치를 발표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수요자 보호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지만, 추가 규제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주목된다. 정-고 두 금융수장 역시 추석 전후로 각 업계 협회장, 대표, 당국 실무진 등을 차례로 만나 추가 조치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고승범, 정은보 체재에서 꺼내든 사실상 첫 번째 규제안이 관치금융이라는 일부의 우려 속에서도 큰 잡음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며 “대출 관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만큼 당국과 업계 간 원활한 소통도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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