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나란히 역대 최대 매출 달성…수익성도 개선

투자 대비 성과 미미했지만…경쟁력-잠재력 입증

전동화 추세 따라 역할 확대…차별화 전략 수립 필요

삼성전자와 하만이 협업한 디지털 콕핏.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하만이 협업한 디지털 콕핏.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이에 국내 산업계를 떠받치는 주력 업종들이 3분기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생활가전 등 수출 전선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분야에서 수익성이 뒷걸음질 친 것. 

이와 달리 함박미소를 지은 사업이 있다. 전장사업이다. 수년 간 막대한 투자가 지속됐음에도 전장사업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업 내부에서는 ‘미운오리새끼’ 취급까지 받았다. 

그러나 3분기 전장사업의 위상이 달라졌다. 완성차 수요가 회복되고 전동화가 진전됨에 따라 매출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 원가 부담과 재고 관리, 지정학적 변수까지 겹쳐 시름이 깊었던 전자기업들에 전장사업은 구원투수 역할을 하고 있다. 

3분기 삼성전자, LG전자의 전장사업은 쾌속질주 했다. 경기 침체와 업황 악화로 전사 실적은 부진했지만, 전장사업은 역대급 성적을 냈다. 

삼성전자의 전장사업을 맡고 있는 하만은 3분기 매출 3조6300억원, 영업이익 31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51%, 106%나 뛰었다. 전분기 대비로도 매출은 22%, 영업이익은 무려 210% 폭증했다. 3분기에만 지난해 연간 매출(10조399억원)의 3분의 1, 영업이익(5991억원)의 절반 이상을 달성했다. 비약적인 성장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커넥티드카 기술과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견조해 고객사 주문이 늘었다”며 “소비자 오디오 판매 역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올 상반기만 해도 하만이 이 정도로 성장할지 예상키 어려웠다. 상반기 영업이익이 2053억원에 그쳤던 탓이다. 게다가 하만의 상품성이 높아지는 데 반해 시장 점유율은 떨어졌다. 디지털 콕핏 생산량은 상반기 기준 395만2000대까지 늘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24.8%로 내려갔다. 

하만은 인수 초기만 해도 시장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던 회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고(故) 이건희 회장 와병으로 경영을 맡은 이후 첫 빅딜이었기 때문이다. 80억달러(9조4000억원)라는 몸값에도 이 회장은 인수·합병(M&A)를 주도하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고, 인수 이후엔 전장사업을 미래 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하만의 성과는 미진했다. 2017년 574억원, 2018년 1617억원, 2019년 3223억원, 2020년 555억원, 2021년 6000억원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하만의 영업이익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의 품에 안긴 뒤 2016년(6800억원) 수준의 이윤을 내진 못했다. 하만의 인수가를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하만이 100개 이상의 자회사를 통폐합해 재무 부담을 줄여 수익성을 방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쟁력에 의문부호가 붙던 하만이 3분기 실적 반등에 성공함에 따라, 연간으로도 8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와의 동반 상승이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다. 하만은 이미 5세대(5G) 이동통신 기반 차량용 통신 장비(TCU), 차세대 디지털 콕핏에는 삼성전자의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해당 제품들은 BMW 등 유럽과 북미 완성차 업체에 공급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도요타와도 TCU 공급 계약을 맺었다. 

향후 삼성전자와 협업해 디지털 콕핏, 고성능 텔레매틱스 등에서 수주를 늘려갈 가능성이 높다. 더 많은 이윤을 올리는 것은 물론, 하만의 디지털 콕핏·텔레매틱스 점유율도 상승할 전망이다.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의 전기차 파워트레인 컨셉 사진. 사진. LG전자.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의 전기차 파워트레인 컨셉 사진. 사진. LG전자. 

LG전자 전장사업 분위기는 더 쾌청하다. 전장사업을 이끄는 VS사업본부는 3분기 매출 2조 3454억원, 영업이익 96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5.6%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영업이익은 흑자로 전환했다.

LG전자의 전장사업은 2013년부터 올 1분기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전장부품은 높은 신뢰성이 필요한 까닭에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 쉽지 않은데, LG전자를 수익성보다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쪽을 택했다”며 “초반에 저가 수주를 하면서도 관련 투자가 계속됐으니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말했다. 

그랬던 전장사업은 인포테인먼트, 전기차 파워트레인, 차량용 조명 시스템의 모든 사업이 고르게 성장하면서 3분기 2개 분기 연속 매출 2조 돌파,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또 상반기에만 8조원을 추가하며 올해 80조원 이상의 수주잔고를 채을 것으로 관측된다.

완성차 업체의 생산 확대에 적극 대응하고 원가 구조를 개선한 결과라는 게 LG전자의 설명. 다만 업계에서는 비로소 투자 효과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LG전자의 전장사업은 구광모 LG그륩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구 회장은 전사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을 강조하고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강화할 것을 주문해왔다. 덕분에 전장사업은 누적 적자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마그나와의 합작법인을 추진하는 등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었다. 동시에 연구개발부터 기술검증까지의 과정을 내재화하고 이스라엘 자동차 사이버보안 분야 전문기업 사이벨럼 인수와 같은 투자를 이어갔다.  

LG전자의 전장사업이 실적 개선이 뚜렷해짐에 따라 성장 전략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외형 성장에 집중했다면, 시장 영향력을 강화하고 사업을 내실화하는 작업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LG전자는 자율주행 핵심 기술인 인포테인먼트, 그 중에서도 텔레매틱스를 집중 공략 중인데, 점유율 상승이 미미해서다. 2020년 21.8%에서 지난해 말 24.2%로 늘었다가 올 상반기 22.6%로 떨어졌다. 삼성전자가 하만과 함께 텔레매틱스 공략에 나선 만큼, 격차를 빠르게 벌려놓아야 한다. 

전장사업은 잠재력이 큰 분야로 꼽힌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5G·자율주행 등 관련 기술이 이식되면서 앞으로 자동차의 전동화는 더욱 가팔라지게 된다. 시장 규모도 급속도로 팽창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전 세계 전장시장의 규모는 2028년 7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삼성전자, LG전자는 전장 시장을 겨냥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주력인 반도체에서도 차량용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2025년 차량용 메모리 시장 1위’라는 목표까지 세운 상태다. 

전사 차원에서 전장사업 전략도 새롭게 짠다. 삼성전기는 전장용 카메라모듈과 패키지기판,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늘려가고 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 중이다. 하지만 이들 간 윈-윈 효과는 드러나지 않는다. 삼성글로벌리서치가 전장사업팀을 통해 사업 비전을 가다듬을 것으로 여겨진다. 

LG전자는 품질 관리와 사업 고도화를 추진한다. LG전자는 현재 20% 중반대인 전장 부품 비중을 늘려 VS사업본부 전체 매출을 견인할 계획이다. 이에 전장 기술 신뢰도를 높이는 데 무게를 싣는다. 양자내성암호 기반 보안기술 개발에 착수했고, 전장 부품 성능을 검증하는 AI 플랫폼을 구축했다.  

다만 삼성전자, LG전자의 전장사업이 겹친다는 점에서 두 회사의 차별화 전략이 중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전자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삼성전자나 LG전자나 B2B를 강화하고 있고, 통신기술, 사물인터넷(IoT), 디스플레이, 모듈형 가전 등 전장사업에서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중복된다”면서 “누가 먼저 고객사를 선점하느냐, 그리고 선점한 고객사를 잘 지켜내느냐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품 외에 소프트웨어 등에서 고객사의 만족도를 올릴 필요가 있고 이와 관련된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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