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복합 위기에 생존 기로

기업 10곳 중 8곳, 대출이자도 빠듯…한계 도달

비재무적 성과 대한 요구 커져…새 성장 방정식 필요

경영 불확실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새 규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경영 불확실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새 규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재계를 엄습한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더 짙어지고 있다. 고물가·고환율로 소비가 급격히 꺾이면서 재고 수준이 최고치를 경신했다. 게다가 금리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수익성을 챙기기는커녕 당장 이자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다. 

현재 주요 그룹들이 내년도 경영계획을 수립 중이지만, 막막함을 토로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는다해도 시장 변동성이 커진 탓이다. 이에 주요 그룹들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해법을 모색하느라 부산하다.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날로 악화일로다. 국내 기업 대부분이 원자재 또는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든 뒤 다시 수출한다. 그러나 환율 인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제조원가 부담이 늘었다. 환율이 올라감에 따라 4월부터 9월까지 무역수지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6개월 내내 무역수지가 적자를 낸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 만이다.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경상수지 흐름도 우려스럽다. 외국인 배당이 몰리는 4월을 제외하면 경상수지는 흑자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8월 경상수지는 30억5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상품수지가 두 달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서비스수지도 적자로 돌아선 탓이다. 

국내 수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3월만 해도 4%대였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7월 6%대로 치솟은 뒤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 국내 주요 기업들의 매출은 하락세가 완연하다.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31.73%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한 것은 2019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LG전자도 GM 전기차 볼트 리콜을 위한 충당금을 제외할 경우, 역성장 했다. 

문제는 기업들의 재무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힘이 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연말까지 추가로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앞서 한은은 기준금리를 2.5%에서 3.0%로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지만 미국의 연속 자이언트 스텝으로 금리 인상 필요성이 대두됐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대출 이자 등 금융비용이 평균 2.0% 증가한다. 시장에서는 금리가 0.5%포인트만 올라도 기업들의 이자 비용이 최소 5조원 이상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자금 조달의 통로가 더 좁아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3438억원으로, 올 1월(8조 7709억원)과 비교해 39.1%나 감소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회사채 금리가 더 오르면 기업들의 재무 여력이 극히 악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위기감을 토로하고 있어서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상위 제조기업 100곳에 조사한 결과,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임계치는 평균 2.6%였다. ’3% 이상 올라도 버틸 수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14%에 불과했다. 지금도 10곳 중 8곳 이상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댈 수 없는 한계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경영 상황이 단기간 개선될 여지는 적다. 10월 제조업 재고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109.0으로 2020년 7월(112.9) 이후 2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고 과잉 상태에 놓여 있기에 향후 생산·투자·고용이 연쇄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선 올해 초부터 복합위기를 극복하고자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던 만큼, 기업들의 체력이 올라갔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3분기 동안 다양한 경영전략을 실행·수정하면서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매일 매일이 나쁜 뜻에서 새롭다”면서 ”솔직히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털어놨다. 

특히 이 관계자는 ”경영 환경도, 임직원의 인식도, 사회의 제반 여건도 모두 달라졌다”며 ”과거처럼 고통 감내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완전히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동안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더는 이 전략을 쓰기는 어렵다“며 “시스템 안에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야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 기업의 조직문화는 달라졌다. MZ세대로 일컬어지는 20~30대 구성원 비중이 증가해서다. 개인의 성취와 성장을 중시하는 세대이기에 조직을 위한 충성도가 기성세대보다 약하다. 수익성 유지를 위해 임금을 동결하거나 보상 수준을 단 번에 낮춘다면 도리어 인재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기업을 향한 사회의 요구도 변했다. 종전에는 매출, 고용 같은 정량적 결과를 충족시키면 기업의 책무를 완수했다고 간주했다. 요즘은 투명한 경영은 기본이고 노동과 환경, 나아가 산업 생태계까지 신경써야 한다. 이는 경영 계획에 상수로 잡혀야 하는 요인들이지만, 단기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요인들이다. 과거의 성장 방정식을 벤치마킹하는 대신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밑그림을 그려야 할 시점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업들이 신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것도 경영 여건과 무관치 않다“며 “기업 가치는 재무 성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이제 기업들도 잠재력을 보여줘야 살아남는 시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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