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과 동행…UAE·다보스포럼서 민간 외교관 역할
경제외교 성과 원하는 정부…수주·부산엑스포 지원 선봉

총수들이 연초부터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방어 경영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이미지투데이.   
총수들이 연초부터 잰걸음을 옮기고 있다. 방어 경영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도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전례 없는 경기 침체가 예고된 올해, 주요그룹 총수들의 어깨가 무겁다.

국내외 시장에서 존재감이 커진 데다, 국내 개인 투자자가 증가하면서 총수들도 그룹의 ‘성적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안살림을 챙기기도 바쁜 와중에 이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더 커졌다. 정부가 ’원팀’을 강조하며 경제외교의 지원군을 맡아줄 것을 요청해서다. 총수들은 그룹의 내일을 만드는 설계자이자, 경제 한파를 뚫을 수출 역군으로서 해외를 누빌 예정이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LG·롯데 등 5대 그룹 총수는 출장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올해 첫 해외 순방에 동행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윤 대통령은 오는 14~17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대통령의 초청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국빈 방문한다. 원자력·에너지·투자·방산의 4대 핵심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 한·UAE 비즈니스포럼을 통해 UAE 국부펀드 등과의 투자 협력방안을 구체화하는 방안까지 시야에 넣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이 해외에 처음 수출한 바카라 원전을 찾을 예정인데, 경제외교에 대한 의지를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만큼 경제인들의 활약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대기업 24곳, 중소·중견기업 69곳, 경제단체·협회조합 7개 등 총 100개 기업 수장들로 경제사절단이 구성됐다. 한국무역협회가 밝힌 사절단 선정 기준은 UAE와의 사업 관련성, 사업 유망성, 수주·계약 가능성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포함시켜, 총수들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왼쪽부터)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 각 사.

UAE 새일즈 선봉장은 이재용 회장이 맡을 공산이 크다. 이 회장이 지닌 현지 인맥 때문이다. 그는 UAE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해왔다. 무함마드 대통령과는 2019년부터 아부다비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연달아 만난 뒤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삼성의 계열사들이 UAE에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중이기도 하다. 삼성물산은 바카라 원전 3·4호기를 건설 중이고, 삼성엔지니어링은 2조5000억원 규모 천연가스전 개발에 도전했다. 계열사들의 사업과 별개로 이 회장은 마스다르 시티에 적용될 5세대(5G) 이동통신, 반도체,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같은 ICT 기반 기술 세일즈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회장과 최태원 회장 역시 UAE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바삐 움직일 것으로 점쳐진다. 현대차는 중동시장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두바이에 제네시스 전시장을 연 점을 고려하면, 정의선 회장은 자동차를 발판으로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으로의 영역 확장을 할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 최태원 회장 또한 통신, 건설,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의 기술 경쟁력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SK가 중동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수들의 세일즈 행보는 스위스로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스위서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할 예정인데, 5대 그룹 총수가 집결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매년 1월 열리는 다보스포럼은 당면한 경제문제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민간회의다. 전 세계 정·관·재·학계 인사들이 모이는 만큼, 인맥을 확장하고 식견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올해의 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보건·안보·경제 위기가 두루 조망될 예정이라 국내 기업인에게 더 각별한 시간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500억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세계 각 국의 긴축 재정과 자국 우선주의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수출길이 좁아진 탓이다. 총수들은 각 국 정부 관계자, 기업 최고경영자(CEO), 국제기구 수장, 학계 인사 등과 공급망 문제,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 전환 같은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나눌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 다보스포럼에선 6대 기업 총수와 해외 주요 기업 CEO들과 간담회가 예정돼 있다. 간담회에는 삼성·SK·현대차·LG·롯데·한화의 총수들과 인텔·IBM·퀄컴·JP모건·소니 등 글로벌 기업 CEO들이 자리한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기업의 실적과 미래가치는 물론, 국가 프로젝트에서도 역할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주요 그룹 총수들은 기업의 실적과 미래가치는 물론, 국가 프로젝트에서도 역할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재계에서는 재계 총수들이 다보스 포럼 이후 유럽 사업을 둘러볼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차량용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분야 먹거리 발굴을 고민 중인 이 회장은 유럽 법인과 주요 고객사들과 직접 만나 사업 논의를 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유럽 완성차업체들과 혁신 모빌리티 기업들과의 만남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실적이 부진했던 그룹의 총수들은 유럽에서 수요처를 발굴하는 역할을 자청할 수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전장과 전자사업에서 유럽 사업 현황과 올해 전략을 점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 LG전자는 유럽에서 빌트인 가전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등 프리미엄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 탈환을 위해 유럽 완성차 업체들과도 협력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구 회장의 출장지로 독일, 영국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의 다음 동선도 주목된다. 신 회장은 후계 승계 작업에 들어간 상황. 다만 그룹의 성장 잠재력은 물론,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바이오, 첨단소재 같은 차세대 먹거리에서 사업 기회를 잡기 위해 유럽 현지의 동향을 살피며 경영 밑그림을 수정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룹의 후계자로 입지를 굳힌 김동관 부회장도 유럽의 친환경 정책 강화 기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화그룹은 태양광·수소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우주항공, 방산을 중심으로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그룹의 총수로 대외 보폭을 넓히고 있는 김 부회장이 경영자로서 선구안을 입증할 수 있는 사업들을 면밀히 살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연말부터 재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4분기를 시작으로 실적 하락이 예고됐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서다.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인 CES 2023에 전자는 물론, 중후장대, 유통, 금융권 수장까지 찾아 위기 대응 해법을 고민했다. 총수들의 세일즈는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다만 재계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부가 재계 총수들에게 개별 기업의 계약 체결 외에도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에서도 성과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다보스포럼 기간 총수들은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에 나선다. 4월 국제박람회기구(BIE)의 현지 실사, 6월 말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PT) 등에서 우리나라가 승기를 잡을 수 있게 총수들이 맨투맨 마크를 벌여야 한다.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했던 단기 전략도 총수들이 챙길 정도로 경영 환경이 급속도로 얼어 붙은 점을 고려하면,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부산엑스포는 유치에 성공할 경우 막대한 경제효과가 있는 행사라는 점에서 총수들의 측면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경제외교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들의 역량을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민간 경기 활성화를 하려면 기업인들이 안살림부터 챙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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