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사업 문호 개방…애플·인텔·에릭슨 등 경쟁사 출신 합류
위험부담 있지만…기술 역량·사업적 판단력에서 검증 완료
회사 성장 잠재력 극대화 위한 결정…“내부 소통 중요해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 법인(SEV)을 방문해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 법인(SEV)을 방문해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삼성전자가 최근 ‘경력직’ 인재 영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에릭슨·애플 등 세계적 기업 출신들을 임원으로 영입했다. 

특히 영입 인사들에게 각 사업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긴 점이 눈길을 끈다. 생활가전부터 네트워크사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검증된 인물들을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줌으로써 영입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에 대해 현장을 돌며 뉴삼성의 방향성에 대해 타진했던 이재용 회장이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쟁사 출신 연이어 합류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인재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네트워크사업부 산하에 신사업전략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에릭슨 출신 헨릭 얀슨 상무와 조미선 상무 등을 영입했다. 얀슨 상무에게는 신사업전략 TF장을, 조 상무에게는 유럽 영업·신규 사업 발굴을 맡겼다. 

삼성전자의 영입 인사는 이들만이 아니다. 강신봉 전 요기요 대표는 신설조직인 글로벌마케팅실 DC2센터장(부사장)으로 합류했다. 강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자체 온라인 역량 강화와 브랜딩 전략 수립을 이끈다. 

윤성호 상무도 영입 인사다. 미국 GE에서 차세대 항공기 엔진 연구개발(R&D)을 담당하던 윤 상무는 생활가전사업부 내 선행전문기술그룹장을 맡아 모터 등의 핵심 기술력을 강화하게 된다. 

이종석 상무 역시 최근 영입된 인사다. 애플에서 삼성전자 MX사업부로 자리를 이동한 이 상무는 AP솔루션개발팀 소속 AP아키텍처그룹장으로서 향후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경쟁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일환(허버트 리) 부사장 또한 지난해 말 삼성전자로 이직한 인물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이너인 그는 MX 디자인 팀장(부사장)으로 임명됐는데, 모바일 제품 디자인을 총괄할 예정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삼성전자는 경력직 영입에 적극적이다. 애플 출신 김우평 부사장이 미국 패키징 솔루션 센터장으로 선임됐고, 인텔 출신의 극자외선(EUV) 전문가 이상훈 부사장, 영국 팹리스 업체 ARM 반도체 설계자산(IP) 개발 전문가인 나이젤 페이버 박사도 등용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충성도 약해도 좋다’ 희석되는 순혈주의

경력직 인재 영입은 삼성전자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적 현상은 아니다. 경력직 인사들은 이미 헤드헌팅 시장에서 ‘귀하신 몸’이다. 사업 기획은 물론 기술 개발, 중장기 전략 수립 등에 관여한 만큼, 첨단 기술 동향에 밝고 시장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다. 이들이 지닌 기술 역량과 사업적 판단력은 업무 연착륙과 성과 조기 달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도 하다. 

특히 인재경영은 이병철 창업회장 때부터 고수해 온 핵심 경영철학이었다. 이재용 회장도 총수로 공식 취임하면서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고,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는 말로 인재경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럼에도 업계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는 경쟁사 경력직 영입에 공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임직원 개개인에게 ‘최고의 결과물’을 요구한다. 그만큼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다. 대신 승진이나 연봉과 같은 보상을 예측 가능하도록 설계해 조직 내부를 다잡아왔다. 사실상 직급별로 일정 기한을 채우면 승진한다는 암묵적 룰이 존재했고, 내부에서 성과를 낸 인물에게 승진 기회를 우선적으로 줬다. 글로벌 기업을 추구하면서 희석됐지만 순혈주의가 남아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외부 영입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휴대폰 음성인식·이어폰 관련 특허에 대한 무효심판을 제기했다. 음향기기·이어폰 업체인 스테이턴 테키야 LLC가 제기한 지식재산권 침해소송에 대한 반소다. 테키야의 소송의 당사자로 이름을 올린 특허법인 시너지IP는 안승호 전 삼성전자 IP센터장이 설립했다. 삼성전자에서 10년 간 특허 분야를 총괄하며 애플·화웨이 등과 협상을 이끌었던 인물이 회사의 특허 전략을 활용해 공격한 셈이다. 

때문에 삼성전자는 조직 충성도가 입증된 인물에게 중책을 맡겨 조직의 사기와 핵심 기술 누수를 방지해왔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아직까지 국내기업들은 ‘모국’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직업적 ‘소명’이나 기업이 국내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십분 이해하기에 기술 유출이나 향후 특허 등을 둘러싼 법적 소송의 위험도 낮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튀는 인물’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부 인물, 그것도 경쟁사 출신들 모시기에 나서는 것은 회사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는 방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8월 수원사업장에서 DX 부문 MZ세대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8월 수원사업장에서 DX 부문 MZ세대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한계 돌파 위해 성공 사례 이식

통신장비 사업은 삼성전자의 차세대 먹거리다. 이재용 회장은 버라이즌, 디시, NTT도코모, KDDI 등을 대상으로 직접 세일즈에 나설 정도로 공들이는 중이다. 다만 이 회장의 바람과 달리, 시장 점유율은 요지부동이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순위는 화웨이(28.7%), 에릭슨(15%), 노키아(14.9%), ZTE(10.5%), 시스코(5.6%), 삼성전자(3.1%) 순이다. 미국의 제재로 반사이득을 누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삼성전자의 시장 내 입지는 그대로다. 

“통신도 백신만큼 중요한 인프라”라고 말한 이 회장은 차세대 통신사업이 회사의 새 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3G에서 4G로, 다시 5G로 전환되는 속도가 빨라진 데다, 인공지능·클라우드·가상현실 같은 기술의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서다.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네트워크사업부를 맡긴 것도 통신장비 사업 속도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이 회장은 다만 내부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까닭에 외부 성공 사례를 주입해 사업 고도화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입된 임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 같은 전략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집중적으로 인재를 흡수 중인 반도체 사업이 대표적이다. 성장성이 높은 시스템반도체로 무게 중심을 옮기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는 성능 논란에 휩싸였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에서는 TSMC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EUV와 패키징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경쟁사들의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이 완제품의 판매에 영향을 주는 삼성전자로선 차별화된 역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AP 설계(이종석 상무)와 패키징 솔루션(김우평 부사장), 시스템 반도체 설계(나이젤 페이버 박사), EUV 성능 개선(이상훈 부사장) 등에서 이미 퍼포먼스를 낸 인물을 영입한 것이다. 

온라인 마케팅, 생활가전, MX 디자인 등의 부문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했다. 성공의 관건은 수익 유출을 최대한 막는 데 있다. 하지만 대학생 등 미래고객에게 삼성이란 브랜드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새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완제품의 사용주기를 늘리는 한편, 이커머스의 수익구조를 이해하는 인물들을 포섭해 수익성 극대화와 GenZ 확보의 미션을 맡긴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가 경쟁사 경력직 영입에 적극 나서면서 회사의 초격차 기술 개발엔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있다면 조직 내 동요다. 이 회장은 성별, 국적, 연령에 관계없이 최고 인재를 수혈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터라 앞으로 외부 인재에게 중책을 맡기는 사례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반발도 그만큼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용병술이 안착하려면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 인사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인재양성을 타협할 수 없는 가치지만, 자칫 조직 내부의 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며 “삼성전자는 오너 리스크로 조직의 피로감이 누적돼 있는데, 이 회장이 내부 소통 이상의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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