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현대차·LG 등 재계 4대 그룹 인사 마무리
전년 대비 승진 규모 축소…세대교체도 속도 조절
이전보다 강해진 성과 요구…관리형 인재 전진 배치
현상 유지-수익성에 방점…”내년도 투자 위축 우려”

국내 재계를 이끄는 4대 그룹 인사가 마무리 됐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각 사. 
국내 재계를 이끄는 4대 그룹 인사가 마무리 됐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각 사.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국내 재계를 이끄는 4대 그룹 인사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중장기 경영 전략에 맞춰 전문성을 지닌 3040 차세대 리더를 등용하려는 움직임은 지난해와 동일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보수적 기조가 짙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핵심 경영진을 유임시키고 신규 임원의 규모를 줄였다. 세대교체의 속도도 조절했다. 

7일 재계에 따르면 4대 그룹은 올해 승진 규모를 축소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보다 11명 줄어든 187명이 별을 달았고, LG그룹도 19명 줄어든 162명이 승진했다. SK그룹 역시 20명 가량 줄어든 145명이 영전했다. 현대차그룹은 공영운 사장을 포함해 3명의 사장이 물러난 대신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최고창조책임자(CCO)만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부사장 승진자도 이규복 현대차 프로세스혁신사업부 전무가 유일했다. 

신규 임원만 줄어든 게 아니다. 그룹 총수의 보좌하는 부회장단도 예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축소됐다. LG그룹의 부회장단은 차석용 부회장의 용퇴로 4인 체제에서 3인 체제로 전환됐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 승진으로 최소 1석 이상이 공석이 됐다. SK그룹은 8인 부회장단을 그대로 유지했고, 현대차그룹은 올해도 부회장 승진자가 없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임을 감안해 조직을 효율화하겠다는 총수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그렇다 보니 임원 인사는 전반적으로 인력 배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40대 부사장 17명, 30대 상무 3명이 탄생했다. 특히 40대 부사장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LG그룹 역시 ‘영리더’ 발탁이 이어졌다. 신규 임원 114명 가운데 92%가 1970년 이후 출생자였다.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 7개 위원회 중 5개 위원회 수장을 사장급으로 바꿨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던 환경사업위원회는 장용호 SK실트론 사장이 맡았고 장동현 SK㈜ 부회장이 이끌던 커뮤니케이션위원회는 이형희 사장이 넘겨받았다. 이형희 사장이 맡았던 SV위원회는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이,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담당했던 ICT위원회는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맡게 됐다. 서진우 SK 중국사업 담당(부회장)이 이끌던 인재육성위원회는 박상규 SK엔무브 사장이 담당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세대교체에 방점을 찍으면서 ‘성장잠재력’을 입증한 인재들에게 기회를 줬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일례로 배범희 삼성전자 DX부문 생산기술연구소 하드웨어 기술그룹 상무는 세계 최초 RF 신호 전송, 플렉서블 인쇄회로기판(PCB) 등 미래 주력 기술을 확보하는 데 역할한 인물이다. 다수의 논문·특허를 출시하기도 했다. 우정훈 LG전자 수석전문위원 역시 생활가전과 LG 씽큐 앱 개발의 기획·개발·운영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이끌어냈다. 

젊은 인재들에게 경영 성과와 전문성, 성장잠재력을 모두 요구한 것이다. 더 엄격하게 성과주의가 적용된 셈이다. 승진 규모를 제한하는 대신 연구개발(R&D), 경영 전략·관리 등에서 검증된 인물을 전진 배치시켜 미래 준비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올해 자리를 지킨 수뇌부들에게도 같은 요구가 날아들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대표를 비롯해 핵심 경영진을 재신임 했는데 조직 안정 이상을 요구한 용인술로 보인다. 

4대 그룹은 해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지정학적 변수에 핵심 사업들이 영향 받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원가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고, 재고 수준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중 갈등, 일본·유럽·대만 등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까지 더해져 정략적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해외 시장 개척만으로는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연륜 있는 경영진에게 위험 요소들을 해결하라는 신호를 강하게 보냈다.

SK그룹은 부회장단에 속한 전문경영인들에게 해외 사업 확대를 맡겼다. 유정준 부회장은 SK E&S의 미국 에너지솔루션 사업을 담당하는 패스키 대표를 겸직하면서 북미사업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됐다. 에너지·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미국 내 투자사업들이 원활히 진행되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책 개선을 도모하라는 특명을 내린 셈이다. 김준·박정호·장동현 부회장은 글로벌 투자, 친환경에너지, ICT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움직이라는 임무를 줬다.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전략위원회를 전략글로벌 위원회로 개편, 이들을 지원할 조직을 세운 점은 이를 방증한다. 

경영 불확실성으로 국내 주요 그룹들이 관리형 인재를 전진배치 시켜 재무 역량을 강화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경영 불확실성으로 국내 주요 그룹들이 관리형 인재를 전진배치 시켜 재무 역량을 강화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관리형 인재들의 약진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은 10년 만에 사장단에 합류했다. 이 사장의 등용에 대해 “여성 인재인 것 외에도 마케탕 역량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갤럭시는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지고 있고, 세탁기 불량 사태로 생활가전에서의 신뢰도가 훼손됐다.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할 새 전략이 필요한 시점. 로레알 출신 마케팅 전문가인 이 사장에게 삼성전자의 고객가치·경험이라는 방향성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재무·전략통들의 기용이 활발해졌다. 계열사 기업공개(IPO)가 줄줄이 무산된 SK그룹 승진자 명단에는 이성형 SK㈜ 최고재무책임자(CFO·사장), 윤풍영 SK㈜ C&C 대표, 박성하 SK스퀘어 대표, 김철중 SKIET 대표, 이호정 SK네트웍스 대표가 포함됐다. 이들은 대규모 인수·합병(M&A)에 참여하거나 최태원 회장의 파이낸셜 스토리를 기여한 재무·전략통이다. 

LG그룹 역시 동일한 기조였다. 이번에 유임된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는 그룹 내 주목받는 재무통이다. 차동석 LG화학 CFO,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 이남준 ㈜LG 재경팀장, 박지환 LG CNS CFO는 재무 역량을 인정받아 전진 배치된 인물들이다. 

삼성전자 또한 양걸 중국전략협력실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는데, 그는 반도체 영업·마케팅 전문가로 해외 사업에서 재무관리·경영전략 능력을 보여줬다. 현대차그룹에서 유일한 부사장 승진자였던 이규복 전무도 재무·전략기획 전문가로 꼽힌다. 

재무·전략통의 역할을 확대한 이유는 기업의 재무 상황과 연관이 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국내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13조7000억원 늘어난 1169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증가 폭은 10월 기준으로 2009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에 기업들의 이자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기업들의 대출 이자 부담이 내년 연말 49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분기 기업들의 이자 부담은 33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는데, 1년여만에 16조2000억원이 더 늘어나는 셈이다. 

회사채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고금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빚을 내면서 재무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무·전략통을 등용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고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을 깐 것이다. 

경영 불확실성의 파고에 대비해 방파제를 쌓다 보니, ‘혁신’이 희미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외국인 기용, 외부 인사 영입처럼 조직의 다양성·유연성을 강화할 인사는 소규모로 이뤄졌다.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된 여성들도 소수에 그쳐 사실상 ‘유리천장’은 그대로였다. 

문제는 신사업과 같은 중장기 전략도 소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총수가 미래 전략사업으로 키우는 반도체, 네트워크 분야에서 7명의 사장이 배출했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리더십의 보완’에 가까웠다. 도전보다 현상 유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규 임원 전체로 넓혀 봐도 구매·영업 등의 분야에서 수익성 개선을 우선하겠다는 기조가 드러난다. SK, 현대차, LG도 ‘성과’를 내세워 매출 확대를 이끌 사업에 힘을 줬다. 

임원 인사는 다음해 경영 계획의 밑그림과 연결된다. 보수적 인사가 단행됐다는 건 신사업 투자를 최소화하고, 생존에 집중하겠다는 신호다. 본원적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데일리임팩트에 “내년 경제 성장률이 1%대에 머무는 등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아 수세적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신사업에 대한 도전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중장기 비전과 연결될만한 인물들의 발탁이 활발하지 않았다”며 “내년 경영 계획은 ‘생존’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높고, 이 과정에서 투자를 물론이고 지출 자체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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