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빅3 체제 유지…저가출혈경쟁 반복 가능성에 촉각

무리한 수주·부실 경영까지…2강구도 재편 필요성 제기

조선업 축소 日과는 반대 양상, 전문가 "시장 회복이 관건"

서울특별시 중구 소재 한화그룹 본사 건물 전경. 사진.한화
서울특별시 중구 소재 한화그룹 본사 건물 전경. 사진.한화

[데일리임팩트 김현일 기자]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조선업계 빅3(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체제 유지가 유력시되며 조선업계에 다시금 저가 출혈경쟁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합병하고 조선 2강 체제로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온 만큼 이번 인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업계에 분분한 상황이다.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유상증자 방식으로 2조원을 투입해 대우조선 지분 49.3%와 경영권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번 인수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이 나타날 경우 해당 기업 역시 입찰 기회를 얻게 되는 ‘스토킹 호스’ 방식이라는 점이 변수가 없진 않지만, 한화그룹의 자금 조달 능력이 출중한 만큼 이변이 없다면 무난히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또 다시 유지되는 조선 3강 체제로 인해 과거 조선업계를 불황으로 몰아넣었다 여겨지는 저가 수주 경쟁이 또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오고 있다.

최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조선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중국과도 경쟁을 펼쳐야 하는 만큼 현재의 3강 체제 유지가 한국 조선업계 전체에 이득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형 조선소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3강 체제 유지로 인해 경쟁이 더 심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민간기업화 되면서 보다 효율과 이익 등 시장경제를 따라가는 상업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고 저가 입찰 등으로 시장 교란을 하는 등의 선택 역시 더 이상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는 기대가 된다”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0년에 인도한 8만4000입방미터급 초대형 LPG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20년에 인도한 8만4000입방미터급 초대형 LPG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을 등에 업고 과거부터 제기된 2강 체제 재편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예전부터 해양플랜트 등의 무리한 수주·자회사 투자 등으로 한 때 파산을 걱정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악화됐던 바 있다. 투자가 대부분 공적자금지원을 등에 업고 이뤄진 만큼 세금 낭비라는 날선 비판과 마주하기도 했다.

때문에 대우조선해양 대주주 산업은행은 다른 빅3인 현대중공업그룹과 삼성중공업 중 하나가 대우조선을 인수토록 해 국내 조선산업을 빅2로 재편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다.

경쟁구도를 약화시켜 조선업계 전반적으로 수익성 향상을 통한 체질 개선을 이룰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난 2019년 2월 대우조선 인수 후보자로 확정됐고, 곧바로 산은과 본계약을 체결한 뒤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까지 새로 출범시키며 적극적인 인수작업에 나섰지만 총 6개국에서 통과해야 하는 기업결합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유럽연합(EU)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이유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의 인수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복수의 조선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서는 2강체제가 낫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인수를 시도하면 독과점이 우려된다”라며 “그걸 무시하려면 유럽에서의 수주를 포기해야 하는데 유럽을 포기하고서는 조선업이 유지가 안 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23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30만톤급 초대형원유운반선이 성공적으로 진수 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지난 7월 23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30만톤급 초대형원유운반선이 성공적으로 진수 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과거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일본이 조선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결국 시장에서 밀려났던 것과 달리 한국은 조선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향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우려 또한 존재한다.

과거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아시아는 물론 세계에서도 1위 자리를 유지하는 조선 강국이었으나 1980년대 말 추진한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2000년대 초반 한국과 중국에 자리를 내준 바 있다.

당시 벌크선을 중심으로 한 선박설계 표준화 전략으로 획기적인 원가 절감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이 과정에서 있었던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해 2000년대 이후 기술력·노동력 부족에 허덕이다 결국 경쟁력을 아예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조선산업 역시 과거 일본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현재 세계 1위라고는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나긴 불황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등으로 생산현장 기능직뿐만 아니라 설계 및 연구개발 기술 인력이 타 산업으로의 이직 등으로 현장을 떠나는 등 성장동력을 잃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이 타 조선기업에의 인수나 파산이라는 선택 없이 그대로 위치를 유지하겠다는 선택을 감행한 것이 조선업계 전체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물음표가 계속 붙는 만큼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영훈 경남대학교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일본은 정책적인 판단에 있어서 안일했던 부분이 있다”며 “두 차례 구조조정 이후 너무 힘이 크게 빠진 데다 시황이 좋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그걸 제대로 활용을 못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우리나라 조선 시황이 괜찮아질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은 만큼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성공이 가능하다면 빅3 체제가 유지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며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빅3 보다 빅2가 산업생태계적인 부분에서 부담감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경쟁이 완화될수록 중국 등 외부에 대항할 기술적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대우조선해양에 안정적인 경영기반이 뿌리내리기 전까지 한화가 투자를 많이 해야할 것이라 제언했다.

김 교수는 “대우조선해양이 경쟁력이 있는 만큼 투자만 진행될 경우 충분히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에 산업은행 관리 하에 있을 때 할 수 없었던 부분에서 원활하게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조선업계에도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는 만큼 그런 부분에 대한 투자 역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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