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에 급증한 정기예금 잔액, 감소세 전환
투자처 찾아 떠난 자금…예탁금, 채권발행액은 ↑
머니무브 가속화 전망에도 ‘투자에는 유의’ 지적도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지난해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과 주요 투자처로 분류돼온 주식‧부동산 시장 등의 위축으로 가속화된 ‘역머니무브’ 시대의 종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 5%대를 터치한 정기 예‧적금 금리의 오름세로 약 170조원의 자금이 국내 주요 시중은행권으로 유입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연초부터 은행 수신 잔액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당분간 고금리 기조 자체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환율, 미국 기준금리, 단기자금시장 등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지표의 불안정성이 여전한 만큼 투자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준금리 인상세가 베이비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25%p 인상)에 그치고, 이에 따른 예‧적금 금리의 인하세가 두드러지면서, 지난 1년여간 지속된 금리인상기에 가속화된 ‘역머니무브’ 현상이 점차 둔화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존 주식, 가상화폐 등 위험자산에 있던 시중자금이 비교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은행권의 예‧적금으로 이동한다는 뜻의 역머니무브는 대게 기준금리 인상기에 주로 나타나는 금융시장의 현상 중 하나로 분류된다.

반면, 역머니무브의 반대개념으로 언급되는 ‘머니무브’는 안전자산인 은행권 내 예‧적금에서 주식‧가상화폐 등 투자 위험도는 높지만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소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처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역머니무브, ‘종료 수순 밟나’

실제로 지난 1년간 급격한 수신금리 오름세의 여파로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가파르게 불어났다. 앞서 언급한 ‘역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한 셈이다.

실제로 데일리임팩트가 확인한 국내 5대 시중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정기 예금 잔액은 818조4370억원 수준이다. 지난 8월 말 729조9200억원을 기록하며 700조원 초반대까지 안착한 정기 예금 잔액은, 이후 지난 11월 기준 사상 첫 80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급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 2021년 연말(654조9360억원)과 비교하면 160조6733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인데, 이는 같은 해 연간 증가폭(40조5280억원)보다 4배 가까이 큰 규모다.

특히, 한 차례의 빅스텝(2022년 10월)을 비록한 세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가 1.0%p나 올랐던 지난해 9월~11월 사이 정기예금 잔액은 월평균 32조4800억원 가량 늘어났다. 이는 앞서 언급한 지난 2021년 연간 증가폭에 육박하는 수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같은 추세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3분기를 기점으로 자금 유입 폭이 축소되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말부터는 오히려 자금이 빠지는 현상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18조4370억원 수준인데, 이는 전월(827조2990억원) 대비 8조8600억원 가량 감소한 수치다. 특히, 이러한 전월 대비 감소세는 지난해 2월 대비 3월 잔액이 6조4450억원 가량 감소한 이후 9개월여만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지난 1월 말 기존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12조2500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월 대비 6조1870억원 가량 감소한 수치다.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4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금리인하에 은행 떠나는 자금

이러한 역머니무브 기조의 둔화는 올해 연초부터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주요 시중은행뿐 아니라 국내 은행업권 전반에서 자금이 빠지는 현상이 포착됐는데 이 역시 앞서 언급한 머니무브 현상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12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시중 통화량 평균잔액은 광의통화(M2) 기준 3779조원으로 전월 대비 6조 3000억원(0.2%) 감소했다. 시중 통화량이 전월 대비 줄어든 건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 만이다.

M2는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등 협의통화(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환매조건부채권(RP) 등 금융상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다.

특히 주목해볼 부분은 그동안 ‘역머니무브’의 지표로 활용된 정기 예‧적금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정기 예‧적금은 전월 대비 31조6000억원 늘었는데,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을 기록했던 전월(58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새 46%가량 감소한 셈이다.

이처럼 역머니무브 기조가 둔화되는 가장 결정적 요인은 은행권 내 수신상품의 금리 매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한때 정기예금은 연 5%대, 적금은 연 10%대 이상을 기록했던 수신금리는 최근 연 3%대 초반까지 하락하며 ‘연 2%대’ 터치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중은행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최고금리 기준)는 연 3.34~3.62%(만기 12개월 기준) 수준에 형성돼있다. 불과 한 달 전 해당 상품의 최고금리가 연 5%대에 육박(연 4.85%)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 새 1%p 이상 하락한 셈이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같은 기간 기준금리가 0.25%p 수준 올랐음에도 정기예금 금리가 하락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라며 “금융당국의 예금금리 인상 자제 권고를 포함한 외부의 압력이 이와 같은 금리 역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라고 설명했다.

사진. 한국거래소.
사진. 한국거래소.

돌아온 머니무브, 투자는 ‘신중’

이처럼 역머니무브 현상의 둔화가 본격화되면서, 이와 반대개념인 ‘머니무브’ 현상이 다시금 등장할 조짐도 포착된다.

앞서 언급했듯 은행 내 수신잔액이 감소하는 사이, 주식시장으로의 유입된 자금 규모는 큰 폭으로 늘어났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지난해 말(46조4484억원) 대비 10%가량 늘어난 51조5220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투자자예탁금이란 투자자가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또는 주식을 매도 후 찾지 않아 계좌에 남아있는 돈을 의미한다. 흔히 투자를 염두에 둔 ‘예비자금’의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의 활황 또는 불황을 예상케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또, 주식시장의 불황 속에서도 적극 투자층의 관심을 받았던 채권시장 또한 머니무브의 흐름을 타고 활성화되는 추세다.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달 채권 총 발행액은 59조470억원을 기록하며 전월 대비 29.3%(13조 3,940억 원)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최근 채권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도 이어졌는데, 지난달 개인투자자들은 총 3조 180억 가량의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1년 개인투자자들의 연간 채권 매수액(4조5675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밖에 상장지수펀드(ETF) 등 중‧장기 투자상품뿐 아니라 국고채, 기업어음(CP) 등 단기 투자상품으로도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포착되는 등 머니무브의 가속화 가능성도 커졌다고 분석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긴축 완화에 따른 투자심리 개선에도 아직까지는 다소 무리한 투자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한다. 지난해 하반기 불거진 채권시장의 불안정성이 여전한 데다, 언제든 한국‧미국 등 중앙정부가 긴축기조의 고삐를 죄일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6.4%를 기록, 시장 예상치(6.2%)를 상회했다.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미국 연준의 기조를 고려하면 시장 전망치를 웃돈 이번 물가상승률이 향후 금리 인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은 만큼 아직은 섣불리 무리한 투자에 나서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다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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