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등 감염증 유행…‘인체·환경에 안전한 세탁’ 관심 커져

세탁가방·친환경 인증 세제 사용 등 혁신적 세탁업체 속속 등장

“자격증 없어도 창업할 수 있는 세탁업…전문성 강화책 필요해”

국내, 노후 기기 교체에 초점…미국·캐나다, 홍보·기술지원 주력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맨 앞에 있다는 것은 옷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세탁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日常)이 됐다. 청결이나 위생 혹은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누구나 세탁을 한다. 세탁은 빈부·종교·성별·인종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이기도 하다. 옷을 옷답게 만들어주고 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도록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탁(洗濯)이다. 창업 업종 선호도에서 세탁업이 상위권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세탁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됐음을 뜻한다. 특히 1~2인 가구와 맞벌이 인구 증가, 친환경에 대한 관심 제고 등으로 새로운 세탁서비스를 원하는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세탁산업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데일리임팩트는 국내 세탁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요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세탁업의 미래까지 진단하는 ESG기획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데일리임팩트 변윤재/최문정 기자] 세탁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소비자들의 요즘 관심사는 ‘더 편리한’ 세탁이 아니라 ‘더 안전한 세탁' 쪽이다.

최근 수년 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전세계적으로 감염병이 유행한 것이 이같은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일례로 감염 초기 전파력이 큰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탁 수요가 급증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세탁세제 시장규모는 92억3850만달러(약 10조8414억원)로 전년 대비 6.8% 성장했다. 지난 5년 간 세탁세제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2.9%였던 점을 고려하면, 전염병에 대한 공포, 위생관리에 대한 욕구가 세탁 수요 증가로 이어졌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특기할만한 점이 있다면, 친환경 제품 판매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미국 세탁세제 시장에서는 친환경 요소가 강화된 ‘그린 프로덕트’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세제의 용기나 성분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가 구매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자리매김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더 안전한’ 세탁에 대한 요구는 세탁업체를 이용할 때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에서 세탁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데일리임팩트에 “예전에는 ‘얼룩만 깨끗하게 빼달라’는 요구 외에 다른 건 없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요즘에는 다른 사람의 세탁물과 섞이지 않는지, 세제는 친환경 인증을 획득한 제품을 쓰는지 등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A씨는 이같은 분위기를 "소비자의 눈높이가 달라진 것을 실감한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최근 1~2년 사이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자원 순환을 촉진하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세탁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부산의 광안세탁소는 세탁비닐 대신 세탁가방을 사용해 눈길을 끌고 있다.

친환경 세제나 친환경 공법을 전면에 내세운 업체들도 잇달아 세탁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스타트업 청춘세탁은 니트부터 가죽까지 모든 의류를 물세탁할 수 있는 워터 클리닝을 선보이고 있다. 셀프빨래방 세탁업체인 워시엔조이는 로하스 인증과 환경부 친환경 인증을 받은 친환경 세제에 살균력 99.9%의 항균제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 세탁업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지만 이같은 흐름을 촉진시킬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세탁소, 코인세탁소로 불리는 셀프빨래방, 세탁편의점 등을 포함해 국내 세탁시장 규모는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동네 세탁소의 비율은 약 75%에 달한다. 세탁업 특성상 ‘골목상권’의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탁업은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신고업종으로 분류된다. 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에 영업신고서를 접수한 뒤 등록증을 발급받아 사업자 등록을 마치면 창업할 수 있다. 신고부터 등록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5일 이내, 이 과정에서 별도의 자격증이나 교육은 필요치 않다. 세탁업 종사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거나 친환경 세탁 등 최신 기술 도입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경력 20년 이상의 세탁업 종사자들이 주축이 된 하이크리닝협동조합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세탁업이 허가업종이기는 하지만, 기능사 자격증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며 “하지만 대면 서비스가 많다는 점에서 섬유나 세탁 전반에 대한 문제를 판단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섬유재질이나 봉제기법, 디자인, 오염의 종류 등에 따라 세탁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아울러 해외에서 직구매한 명품의류 등 고가 의류도 늘어나는 추세여서 세탁에 대한 요구 수준도 갈수록 높아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세탁기능사와 같은 국가공인자격증을 따기 보다 창업에 필요한 교육만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아 소비자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세탁업 전문화, 고도화를 위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이크리닝협동조합 관계자는 “커피가 묻어 세탁을 할 때, 옷감의 손상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얼룩을 완벽하게 지울 것인지, 얼룩을 옅게 만들면서 형태를 유지하는 쪽으로 선택할 지 등의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면서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자격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만큼, 소상공인진흥공단 경영 교육 외에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셀프빨래방 업체인 위시엔조이 매장 전경. 사진. 워시엔조이.
셀프빨래방 업체인 위시엔조이 매장 전경. 사진. 워시엔조이.

친환경 세탁공법은 관련 정보 접근이 쉽지 않은 데다, 해당 공법을 도입하기 위해 상당한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친환경 세탁공법을 선택할만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세탁코디라는 자체 앱을 운영하고 있는 세탁나눔방협동조합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국내 세탁업계도 외국처럼 친환경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며 “웻클리닝 등 친환경 세탁공법은 매우 난해해 교육과정 이수가 필수적이지만 이에 드는 시간과 비용, 일반 세탁 대비 높은 가격대 등을 고려하면 바꾸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현재 정부의 지원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배출을 최소화하는 데만 초점에 맞춰져 있다. 환경부는 지난 2월 미세먼지관리 종합계획의 일환으로, 2022년까지 처리 용량 30kg 미만인 소규모 세탁소의 노후 세탁기를 세탁·건조·회수 일체형 세탁기로 교체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국가가 90%, 개인이 10%를 자부담하는 형태로, 사업자가 관할 지자체 등에 신청하면 된다. 

해외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단순 기기 교체를 넘어 친환경 세탁공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각적인 유인책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市는 ‘예방우선의 원칙 조례(precautionary principle ordinance)’에 따라 세탁소를 포함한 생활밀착형 사업장이 유해화학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클린사업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퍼클로로에틸렌 등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드라이클리닝 업체가 액화된 이산화탄소로 세탁하는 Co2 클리닝이나 물을 사용하는 웻클리닝으로 전환할 경우, 1만달러(약 1173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시 정부는 웹사이트·뉴스레터를 활용해 이들 업체의 위치정보를 제공, 이용을 유도한다. 

캐나다 토론토시도 ‘환경보고 및 공개 조례(Environmental Reporting and Disclosure Bylaw)’에 따라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토론토시의 모든 사업장은 규모에 관계없이 화학물질 사용량과 배출량을 보고해야 하는데, 드라이클리닝 및 세탁서비스의 경우, 2013년 6월부터 관련 정보를 공개해왔다. 이와 함께 유해화학물질 사용과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무료 기술 지원과 관련 정보 제공 등을 실시 중이다.

이에 따라 국내 세탁산업이 ‘더 안전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업계와의 심도 깊은 논의를 토대로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