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증가 속 비대면 수요 급증…공급자→소비자로 중심 이동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세탁서비스…O2O플랫폼 각광

“교육 정례화·인센티브 제공 등으로 세탁업계의 혁신 유도해야”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맨 앞에 있다는 것은 옷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세탁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日常)이 됐다. 청결이나 위생 혹은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누구나 세탁을 한다. 세탁은 빈부·종교·성별·인종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이기도 하다. 옷을 옷답게 만들어주고 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도록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탁(洗濯)이다. 창업 업종 선호도에서 세탁업이 상위권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세탁이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됐음을 뜻한다. 특히 1~2인 가구와 맞벌이 인구 증가, 친환경에 대한 관심 제고 등으로 새로운 세탁서비스를 원하는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세탁산업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데일리임팩트는 국내 세탁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요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세탁업의 미래까지 진단하는 ESG기획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이윤선씨(가명). 이씨는 몇 달 전부터 동네세탁소 대신 세탁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탁 접수부터 배송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평소 야근이 잦아서 퇴근하고 오면 세탁소가 문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니 굉장히 편하다”며 “하룻 만에 세탁물을 받아 볼 수 있어서 요즘 세탁플랫폼을 애용한다”고 말했다. 

세탁산업이 진화하고 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하던 동네세탁소를 대신할 새로운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다. 지역 공장에서 세탁·건조를 한 뒤 가맹점을 통해 소비자가 찾는 방식의 세탁편의점, 코인세탁소로 불리는 셀프빨래방에 이어 최근에는 온·오프라인을 연계하는 O2O 세탁 플랫폼까지 등장했다. 

이들 서비스의 공통점은 달라진 소비자의 눈높이를 겨냥했다는 점이다. 세탁편의점의 대표주자격인 크린토피아는 일반 의류부터 운동화, 이불, 명품가방까지 다양한 품목의 세탁은 물론, 고가의 명품 의류를 위한 특수크리닝, 철 지난 의류를 보관하는 서비스까지 제공 중이다. 

O2O플랫폼의 대표주자 런드리고(의식주컴퍼니), 세탁특공대(워시스왓) 등은 아예 ‘이용 제한’의 벽을 허물었다. 자체 앱을 통해 세탁물 수거를 원하는 장소·시간을 지정할 수 있고, 속옷 세탁까지 해준다. 또 전문 수선 및 오염 제거(세탁특공대), 분실 우려를 줄인 전용 수거함(런드리고) 등 차별화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한 데에는 기존 세탁서비스가 소비자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거나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 업계에서는 가구당 한 달 평균 세탁에 약 20시간을 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구가 1년에 평균 240시간을 더 가치 있는 일에 쓰기 위해 세탁소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보기는커녕, 피해를 입으면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는 기이한 구조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다. 2018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세탁서비스 관련 불만 상담은 무려 4만7196건에 달한다. 그러나 5만건에 육박하는 불만 상담을 거친 뒤에도 세탁 후 변색이나 이염이 발생한 세탁물에 대해 배상이 이뤄진 경우는 5369건에 불과하다. 

특히 1인 가구가 늘면서 소비자의 생활양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 가구 수는 약 66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1.7%를 차지한다. 2015년 27.2% 수준이던 1인 가구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제는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1인 가구가 됐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서비스 수요가 급증했다. 세탁 역시 이전보다 쉽게 맡기고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서비스, 세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교차 오염의 염려를 줄일 수 있는 서비스를 원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세탁시장 75%를 차지하는 동네세탁소는 지금 이순간에도 여전히 '안전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세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11일 데일리임팩트에 “세탁소 운영자는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라고 보면 된다”며 “단골손님 위주로 영업을 하다 보니 평판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동네세탁소의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진단이다.  그는 “주말이나 공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늦은 저녁에는 세탁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다”며 “또한 섬유 재질에 따른 전문적 케어를 바라는 소비자의 기대와 달리 시간당 생산성이 높은 드라이크리닝에 의존할 뿐, 새 공법을 시도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서 영업 중인 세탁소는 모두 2만3134곳이다. 시·군·구가 전국적으로 228개 인 점을 감한하면 개별 기조단체마다 평균 최소 100곳 정도의 세탁소가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별도의 자격증이나 교육 과정 이수도 필요치 않은 데다 해당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바로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세탁소별로 기술력은 천양지차다.  경력 20년 이상의 세탁업 종사자들이 주축이 된 하이크리닝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세탁소를 운영한다면 적어도 섬유나 세탁 전반에 대한 문제를 판단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하지만 세탁업을 하려면 기능사 자격증 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자격 규정이 아예 없다”고 꼬집었다.  

결국 1인가구 급증 등 변화의 기류속에서 기존 세탁소의 선택은 바로 '가격'이었다. 섬유재질이나 봉제기법, 디자인, 오염의 종류 등에 따라 적절한 세탁법을 제공하는 대신 경쟁업체 보다 싼 가격을 내세워 매출을 보전하려는 단기성 전략을 택했던 것이다. 이는 결국 세탁서비스의 품질 저하와 세탁소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전국의 세탁소 수는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어 세탁업이 사양산업 임을 실감케 한다. 최근 4년 간 전국적으로 3800여곳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 10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무려 1만5000여곳이 세탁소 간판을 내렸다. 

1인 가구, 비대면 수요를 겨냥해 최근 등장한 세탁서비스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세탁특공대는 자체 앱을 통해 일반 세탁부터 전문 얼룩 제거까지 모든 종류의 세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런드리고는 런드렛이라는 전용 수거함을 제공해 분실 우려를 줄였다. 청춘세탁은 24시간 비대면 매장, 워터클리닝으로 새로운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사진. 각 사 제공.
1인 가구, 비대면 수요를 겨냥해 최근 등장한 세탁서비스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세탁특공대는 자체 앱을 통해 일반 세탁부터 전문 얼룩 제거까지 모든 종류의 세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런드리고는 런드렛이라는 전용 수거함을 제공해 분실 우려를 줄였다. 청춘세탁은 24시간 비대면 매장, 워터클리닝으로 새로운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사진. 각 사 제공.

업계에서는 세탁산업이 변곡점을 맞았다고 보고 있다. 서비스의 중심 축이 공급자에서 소비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만혼과 비혼, 고령화로 1인 가구가 폭증하면서 가사 부담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이 편의성 대폭 강화된 맞춤형 세탁서비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탁플랫폼의 빠른 성장세는 이를 방증한다. 세탁특공대는 올해 월평균 세탁물량이 전년 대비 91%나 증가했다. 이에 누적 매출이 100억원을 거뜬히 넘겼다. 런드리고도 월평균 15% 이상 성장하면서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220%나 급증했다. 세탁특공대와 런드리고는 최근 각각 175억원, 500억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하며 사업성까지 인정받는 성과를 일궈냈다.

다만 세탁플랫폼도 소비자의 신뢰 측면에서는 아쉬운 대목이 적지 않아 보인다. IT 기술을 기반으로 세탁 공정 표준화, 물류 시스템 개선에 성공했지만, 지금도 세탁 과정에서 품질 관리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5월까지 올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비대면 세탁서비스 관련 상담은 195건으로 전년(97건) 대비 약 101% 증가했다. 지난해 총 219건, 월평균 18.3건의 불만이 접수된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드라이클리닝 위주의 기존 세탁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환경 세제, 다회용 옷걸이 사용 등을 부각하고 있지만, 웻클리닝과 같은 친환경 세탁기법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 있다. 

지역상권과의 상생, 소비자 접점 강화 측면에서 결국 동네세탁소를 포함해 다양한 세탁업체들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각 국의 선진 세탁기법을 공유하는 교육과정을 정례화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친환경 세탁 솔루션을 개발하려는 공동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귀기울일만 하다. 

아울러 정부와 지자체도 세탁 스페셜리트스가 양성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세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웻클리닝 등 친환경 세탁공법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교육과정 이수가 필수적”이라며 “교육과정 이수 시 인센티브를 주거나, 새 공법 도입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구체적인 유인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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