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시작된 세탁업…로마제국 때도 ‘후우라’ 등 전문업자 활동

국내 세탁시장 75% 여전히 동네세탁소…드라이클리닝이 주 수익원

석유계 용제 솔벤트, 발암물질 함유해 ...…“유해물질 옷장에 넣는 셈”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맨 앞에 있다는 것은 옷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세탁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일상(日常)이 됐다. 청결이나 위생 혹은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누구나 세탁을 한다. 세탁은 빈부·종교·성별·인종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이기도 하다. 옷을 옷답게 만들어주고 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도록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탁(洗濯)이다. 창업 업종 선호도에서 세탁업이 상위권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세탁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됐음을 뜻한다. 특히 1~2인 가구와 맞벌이 인구 증가, 친환경에 대한 관심 제고 등으로 새로운 세탁서비스를 원하는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세탁산업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데일리임팩트는 국내 세탁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요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세탁업의 미래까지 진단하는 ESG기획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데일리임팩트 변윤재/최문정 기자] 세탁(洗濯)이 인류사에 등장한 시기는 언제일까. 세탁의 태동시기를 특정할 수 없지만, 학계에서는 고대(古代)부터 세탁이 행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2800년경 고대 이집트 왕가에서 세탁을 전담하는 관리를 두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중국 ‘소학’이나 ‘사기’에서도 세탁과 관련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 당시 이미 세탁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자도 존재했다. 기원전 500년 전 그리스 우화에 ‘이웃집이 숯가게라면 세탁집이 하얗게 한다 해도 이웃에서 검어지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의복이 신분이나 계급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면서 의복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높아졌지만, 당시 직물의 내구성이나 세제의 성능으로는 전문업자에게 맡겨야 깨끗한 세탁이 가능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로마제국에서는 후우라로 불리는 전문업자가 돈을 받고 귀족들의 세탁을 해줬다. 

지금과 비슷하게 세제와 세탁통을 쓰는 방식이 일반화된 것은 근세 이후다. 18세기 유럽에서 백토 대신 비누가 쓰이기 시작했고, 19세기 중반에는 손으로 돌리는 세탁통이 사용됐다. 20세기 들어와 석유화학계인 합성세제가 생산되고, 전기세탁기가 일반화되면서 비로소 기계식 대량세탁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세탁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은 물론이다. 

세탁의 역사는 유기용제를 쓰는 드라이클리닝의 역사이기도 했다. 견·모직물은 물세탁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고대에도 드라이클리닝과 유사한 세탁방식이 있었다. 의류 전문가를 위한 국제협회인 DLI(Drycleaning & Laundry Institute)에 따르면 물 대신 암모니아나 잿물을 사용해 얼룩을 빼는 드라이클리닝을 했다는 기록이 폼페이 유적에  적혀 있다. 그 뒤 테레빈유, 등유, 가솔린 등 다양한 용제를 실험하는 과정이 이어졌고, 약 200년전인 1825년에 세계 최초의 상업용 드라이클리닝 업체가 프랑스 파리에서 문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도 물을 묻히지 않고 세탁하는 업소가 등장하면서 현대식 개념의 드라이클리닝이 태동됐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세탁산업에서도 드라이클리닝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세탁시장의 75%를 차지하는 동네세탁소의 주 수입원이 바로 드라이클리닝이다. 세탁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동네세탁소 상당수가 업자 개인의 기술 숙련도에 의존하는데다, 규모 면에서도 영세한 편”이라며 “그런 이유 때문에 다수의 세탁소들이 시간당 생산성에서 월등히 높고 여타 세탁소와 다른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이클리닝을 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드라이클리닝 위주의 세탁방식이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한국세탁체인본부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세탁업소의 95% 이상이 드라이클리닝 시 석유계 용제인 솔벤트를 사용한다.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의류에서 석유 냄새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솔벤트를 사용하면 벤젠·톨루엔 등과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배출된다. 에틸벤젠·톨루엔은 국제암연구센터가 분류한 A급 발암물질로, 의류에 남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흡입한다면 생식기능 장애, 뇌 이상, 심장마비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공기·토양·지하수 등에 스며들면 수질 및 대기오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정부가 용제회수기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의류에 남은 용제를 제거해야 한다는 규정은 아예 없다. 위험물질에 노출될 위험성이 상존하는 셈이다. 

이는 친환경 소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5명(55.6%)이 소비분야에서 친환경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계면활성제가 없는 세제처럼 친환경적인 제품을 구매한다는 응답자도 36.9%에 달했다. 

특히 주 소비층으로 부상한 MZ세대는 신념과 가치에 맞는 제품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가치소비(Meaning Out) 성향이 더욱 뚜렷했다. 성장관리 앱 그로우가 MZ세대 928명에게 물었더니, 79%가 스스로를 ‘가치소비자’로 규정했다. 또 응답자의 78.2%는 실제 환경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감염병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반복적으로 유행하고, 이상기온과 같은 기후위기를 겪으면서 MZ세대 소비자들은 친환경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수십년 뒤에도 지구환경이 지금처럼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2030세대에게 환경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귀찮고 번거로워도 세탁 세제를 줄이거나 환경에 영향이 적은 친환경 용제를 쓰는 등 요즘 젊은 세대는 친환경 실천에 적극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의류 관리도 친환경적으로 하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혼부부 필수가전으로 꼽히는 의류관리기다. 물을 고온에서 끊여 수증기로 의류에 밴 냄새를 빼고 주름을 잡는 등 기능을 제공하는데 그만큼 드라이클리닝 횟수를 줄일 수 있다.

양지안 녹색구매네트워크 사무총장은 “매년 녹색상품 선정할 때 세탁 관련 제품을 반드시 넣는다”며 “의류관리기를 녹색상품으로 선정한 것도 석유계 용제에 포함된 유해물질이 소비자의 옷장에 들어가 환경과 인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했다. 

친환경 세탁방식을 시도하는 소비자 또한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홈클리닝이다. 종전에는 면소재를 제외한 의류 대부분을 소재와 관계없이 세탁업소에 맡겼다면, 이제는 집에서 전용세제를 써서 물로 세탁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이를 방증하듯 관련 제품의 수는 점차 늘고 있다. 오픈마켓에서 ‘홈드라이클리닝’이라고 입력하면 1000여개에 육박하는 상품이 검색될 정도다. 

소비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세탁업계는 “물로 세탁하는 웻클리닝(wet cleaning)이 드라이클리닝(dry cleaning)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견지해 왔다. 물세탁 시 의류의 내구성을 회복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웻클리닝과 같은 친환경 세탁이 충분히 가능한 환경이 됐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지만, 소비자와의 마찰을 우려해 보수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에서 오랜기간 세탁업소를 운영해온 김모씨는 “100% 완벽하게 옷감을 지킬 수 있는 세탁법은 없다”면서 “물로도 충분히 세탁 가능한 의류도 많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우리처럼 작은 세탁소는 동네장사가 중요한데, 물세탁을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밥줄이 끊길 수 있다”면서 “환경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선뜻 기존 방식을 바꾸기 어렵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실제 전체 소비자 분쟁 중에서 세탁업자에 책임이 있다는 판정 비율은 2019년 9.7%에서 지난해 12.6%로 증가세를 보였다. 

세탁업계가 아직도 ‘친환경’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자·식품·유통·금융·IT 등 업종을 불문하고 전 산업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우며 소비자의 변화에 조응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양새다.

이에 기존 세탁업소의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동네세탁소의 감소 추세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4월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별 세탁업소는 2017년 2만6958곳에서 2018년 2만 5784곳, 2019년 2만4484곳, 2020년 2만3134곳으로 감소세가 뚜렷하다. 최근 10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약 1만5000여곳의 동네세탁소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세탁업계 내에서도 최근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세탁전문프랜차이즈에 이어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이 상승세를 타면서 세탁용제나 방식을 바꾸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정 시간 후 다시 모래, 물, 이산화탄소로 분해되는 실리콘 용제를 쓰거나 웻클리닝을 도입하는 업소도 생겼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이 세탁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