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만든 의류관리기 시장…‘친환경 세탁 투자 효과’ 입증해

‘작지만 의미있는 투자’, 관련 스타트업‧중소기업 투자도 이어져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맨 앞에 있다는 것은 옷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세탁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日常)이 됐다. 청결이나 위생 혹은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누구나 세탁을 한다. 세탁은 빈부·종교·성별·인종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이기도 하다. 옷을 옷답게 만들어주고 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도록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탁(洗濯)이다. 창업 업종 선호도에서 세탁업이 상위권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세탁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됐음을 뜻한다. 특히 1~2인 가구와 맞벌이 인구 증가, 친환경에 대한 관심 제고 등으로 새로운 세탁서비스를 원하는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세탁산업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데일리임팩트는 국내 세탁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요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세탁업의 미래까지 진단하는 ESG기획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다. 사회적 가치, 공익 목적 등 거창한 미사여구를 앞세우기도 하지만, 결국 돈을 벌지 못하면 기업의 영속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기업은 수익이 확실한 시장에는 과감한 투자를 한다. 당장, 의미있는 이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미래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면 시장 또는 해당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에 적잖은 금액을 투자한다. 미래를 내다본 일종의 ‘가치 투자’인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친환경 세탁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직 국내 친환경 세탁시장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그리 규모가 크지 않다. 소위 ‘동네 세탁소’로 불리는 영세 소상공인들이 국내 세탁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아직 ‘친환경 세탁’은 기술 또는 서비스 측면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친환경 세탁시장에서의 투자 흐름은 대기업, 그리고 태생적으로 ‘친환경 세탁’을 표방하면서 출범한 일부 플랫폼 기업에 한정돼 있다. 아직 투자 사례 포트폴리오가 적은 탓에 친환경 세탁시장에 대한 투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대규모의 자금력을 보유한 가전, 유통 등 대기업이 친환경 세탁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향후 시장이 활성화될 경우, 충분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세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최근 투자업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와 ‘그린 채권’ 발행 등을 지속하는 가운데 친환경 시장에 대한 투자 기회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친환경 세탁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점을 고려하면, 추후 투자 유치 가능성 역시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내다봤다.

대기업 투자, 친환경 세탁의 ‘마중물’

최근 신혼부부의 혼수 가전제품으로 항상 거론되는 제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류관리기’다. 생활의 질을 바꿔준다는 호평 속에 많은 신혼부부 또는 가정에서 의류관리기를 구입하고 있다.

의류관리기는 친환경 세탁이라는 개념을 일상생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제품 가운데 하나다. 의류관리기는 미세먼지 문제로 촉발된 위생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2010년대 중반부터 급속도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에서 선보인 에어드레서(위)와 LG전자에서 선보인 스타일러(아래) 제품. 사진. 각 사.
삼성전자에서 선보인 에어드레서(위)와 LG전자에서 선보인 스타일러(아래) 제품. 사진. 각 사.

특히 의류관리기 등장 전에는 코트, 정장, 가죽 등의 제품 세탁 시 드라이클리닝에 의존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팀‧무빙‧바람 등을 활용해 먼지 제거 및 주름 펴짐 효과를 내는 의류관리기는 국내 가전시장뿐 아니라 세탁 업계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러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출시된 의류관리기는 지난 2011년 LG전자에서 선보인 ‘스타일러’다. 특허받은 트루스팀 기술을 갖춘 대표적인 스팀 가전인 ‘스타일러’는 물을 100도(℃)로 끓여 만드는 트루스팀은 탈취와 살균에 효과적이다. 독자 기술인 무빙행어는 옷을 1분에 최대 200회 털어주며 바람만으로는 제거하기 어려운 미세먼지를 골고루 없애준다. 이 제품은 출시 이후 지난 10년간 100만대 이상 판매되며 의류관리기 시장을 대표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흥행 성공을 주도한 스타일러의 등장에는 엄청난 투자와 노력이 수반됐다. LG전자는 스타일러 개발을 위해 무려 9년간 연구개발에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비용 역시 수백억원대, 개발과정에서 취득한 글로벌 특허만 220여 개에 달한다.

가전 업계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도 소위 ‘제트에어(바람)’를 공급해 옷의 먼지를 털어내는 방식의 의류관리기 ‘에어드레서’를 선보이고 있다. 스타일러와 달리 옷을 흔들어 털지 않아 진동과 소음이 적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제품 내 들어가는 ‘광촉매 필터’ 개발에만 무려 5년을 투자할 정도로 경쟁사와의 기술 차별화를 위한 연구개발(R&D)에도 적극 나서기도 했다.

또 별도의 전문 필터를 탑재, 스팀으로 제거 가능한 친수성 입자와 물에 잘 녹지 않는 냄새 입자까지 분해해준다.

일본 도쿄 내 가전매장에서 고객이 LG스타일러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전자.
일본 도쿄 내 가전매장에서 고객이 LG스타일러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전자.

현재 두 제품 모두 국내를 넘어 글로벌 의류관리기 시장을 선도할 정도의 기술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각기 다른 차별화된 기술로 고객에게 다가서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생활 구김과 미세먼지, 냄새를 없애준다는 점에서 친환경 세탁시장의 올바른 기술투자 사례로 손색이 없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의류관리기 시장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친환경’과 ‘편의성’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과감한 투자를 기반으로 기존에 없던 가전 카테고리를 개척했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대기업 주도의 의류관리기 시장 형성은 이후 친환경 세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언급했다.

작지만 의미 있는 투자 행보도 '주목'

최근 금융권 및 IB(투자은행), 벤처캐피털(VC) 등을 중심으로 ESG 관련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ESG 투자는 대부분 E, 즉 ‘환경’에 초점을 맞춘 투자가 대부분이다. 녹색 채권 및 친환경 채권을 발행해 관련 산업 섹터에 투자하거나, 역량 있는 친환경 기업에 직접 투자 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NH농협은행은 향후 친환경 기업 및 산업군에 오는 2025년까지 1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고, 산업은행도 포스코와 1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친환경 분야 벤처생태계 조성 등에 사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친환경 세탁 역시 관련 투자 영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친환경 세탁업을 표방하는 기업 표본 수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투자업계에서는 친환경 세탁시장 내 잠재력 있는 기업 발굴은 물론 역량있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등에 적극적인 투자도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친환경 세탁 스타트업 청세는 지난해 4월 초기 투자 유치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카이스트 대학창업투자조합과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프리 시리즈 A(Pre-series A) 투자를 유치했다. 

청세에 자금을 투자한 투자처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세탁업의 본질과 기존 서비스의 한계를 명확하게 꿰뚫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한 점, 그리고 직접 다양한 세탁 서비스를 운영해 본 경험이 투자 결정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특히 세탁솔루션 전문기업인 코리아런드리는 지난 2019년 NHN으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받아 사업 확장에 활용했다. 코리아런드리는 투자금을 활용해 항균세탁코스, 친환경 세제세탁코스 등 비대면 시대에 걸맞은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전 세계 유일 HACCP(해썹·위생관리 시스템) 인증을 받은 세탁 장비를 사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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