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과일껍질·선인장 가죽 등 재활용 및 식물성 소재 의류에 관심

의류 라벨 부착만 의무 .… 세탁법 등 취급상 주의사항은 업체 자율

잘못된 정보 전달해도 제재 전무…“소비자 보호 위해 기준 개정해야”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맨 앞에 있다는 것은 옷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옷을 세탁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日常)이 됐다. 청결이나 위생 혹은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누구나 세탁을 한다. 세탁은 빈부·종교·성별·인종 등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이기도 하다. 옷을 옷답게 만들어주고 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도록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탁(洗濯)이다. 창업 업종 선호도에서 세탁업이 상위권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세탁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됐음을 뜻한다. 특히 1~2인 가구와 맞벌이 인구 증가, 친환경에 대한 관심 제고 등으로 새로운 세탁서비스를 원하는 수요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세탁산업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데일리임팩트는 국내 세탁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요즘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세탁업의 미래까지 진단하는 ESG기획시리즈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데일리임팩트 변윤재/최문정 기자] # 서울시 동작구에 거주 중인 박지영씨(25세)는 ‘돈쭐’(돈으로 혼쭐내다는 의미의 신조어)에 적극적이다. 주변에서 “옷 입는 센스가 좋다”는 얘기를 자주 들을 정도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박씨의 돈쭐은 친환경 옷이다. 매달 적지 않은 돈을 유행하는 옷·신발 등을 구매하는 데 썼지만, 요즘은 디자인보다 소재를 꼼꼼하게 본다. 박씨는 “내가 쓴 돈이 지구 환경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에는 어떤 소재를 썼는지 꼭 라벨을 확인하게 된다”며 “그런데 친환경 소재의 옷을 구매해도 관리하는 방법은 일반 옷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이게 효과적이긴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옷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한 계절 입고 버려도 무방하다고 여겼던 소비자들이 기왕이면 제작부터 관리까지 친환경이 가능한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페트병을 비롯한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소재나 과일껍질·선인장 가죽과 같은 식물성 소재, 세제량을 줄일 수 있는 소재인지를 따져 구매하는데 눈을 뜬 것이다. 

이같은 기류에 친환경 옷을 만드는 브랜드들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플리츠마마는 서울·제주·여수 등지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재활용한 섬유를 사용해 옷을 만든다. 제작과정에서도 자투리 원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젠 프로젝트 제품은 MZ세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리젠제주의 경우, 지난해 완판을 기록했다. 

소셜벤처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친환경 옷에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2019년부터 에코 플리스 컬렉션을 통해 3000만개가 넘는 페트병을 플리스 점퍼로 재탄생 시켰다. 신세계인터내셔날도 ‘지속가능 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 러브 바이 커티스 쿨릭을 선보였다. 이 브랜드는 상품의 70% 이상을 천연소재와 자투리 원단을 사용해 환경 친화적으로 제작한다. 

모두에 언급한 박씨처럼 친환경 옷을 구매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재를 따져 구매하더라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친환경 옷 제작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는 있어도, 소비자가 의류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옷에 붙은 라벨은 그 옷의 얼굴이자 신상명세서다. 사진=구혜정 팀장
 옷에 붙은 라벨은 그 옷의 얼굴이자 신상명세서다. 사진=구혜정 팀장

업계 관계자들도 이 같은 의견에 공감한다. 의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옷의 생애주기를 놓고 본다면, 구매 이후의 행위가 더 중요할 것”이라며 “그렇지만 소비자와의 분쟁이나 관리의 효율성을 고려하다 보니 적정 세제량이나 세탁법 등에 대한 고지가 세밀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제품 등에 부착되는 라벨은 크게 △의류 업체의 고유 상표나 브랜드 등의 임의 라벨 △의무적으로 법의 규제를 받는 라벨 △여러 기관의 보증마크 등 3가지로 나뉜다. 의류에 부착되는 라벨은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하는 라벨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의류에 부착되는 케어 라벨은 소비자가 제품을 식별하고, 품질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관계부처에서 추적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데일리임책트에 설명했다.  

 옷의 변신...옷은 세탁기를 거치면 새롭게 거듭난다. 세탁기에 넣기 전 옷에 붙은 라벨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구혜정 팀장
 옷의 변신...옷은 세탁기를 거치면 새롭게 거듭난다. 세탁기에 넣기 전 옷에 붙은 라벨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구혜정 팀장

문제는 라벨을 부착하기만 하면 내용이 부실해도 불이익이 없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2018년 7월 개정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전안법)을 시행하면서 의류·가죽 등 소비자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낮은 23개 품목을 안전기준준수대상 생활용품으로 분류해 안전성 검증시험과 KC마크 표시 의무가 면제했다. 대신 ‘가정용 섬유제품 부속서’에 따라 품목별로 라벨에 표시해야 하는 관련 정보를 명시했다. 

이에 따르면 의류 라벨에는 혼용률·제조자명·제조국명·제조연월·치수·취급상 주의사항·표시자 주소 및 전화번호 등 크게 7가지 정보가 들어간다. 특히 취급상 주의사항에는 물세탁 방법, 산소 또는 염소표백 가부, 다림질 방법, 드라이클리닝 방법, 짜거나 건조하는 방법 등 세탁법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다. 

하지만 취급상 주의사항은 업체가 자율적으로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부속서에서 명시한 대로 라벨에 표시하지 않더라도 법적인 처분이 없다. 품질과 관련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겠다는 라벨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패션산업협회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라벨 부착에만 강제성이 있을 뿐 표시를 잘못했거나 접착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도 법적인 처벌은 사실상 없다”며 “‘이런 내용을 담으라’는 권고 정도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옷은 세탁이라는 과정을 거쳐 깨끗하게 단장하게 되며 비로소 날개를 달게 된다. 사진=구혜정 팀장
 옷은 세탁이라는 과정을 거쳐 깨끗하게 단장하게 되며 비로소 날개를 달게 된다. 사진=구혜정 팀장

라벨의 부착 상태 또한 문제다. 부속서는 ‘세탁 시 떨어지지 않도록 박음질을 하되, 속옷·스카프 등 미관을 해칠 경우에는 개별제품 포장, 스티커 등으로 별도 표시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세탁과정에서 상표 등이 떨어져 나가는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세탁 관련 소비자 분쟁을 분석했더니, 3469건 중 147건이 상표 등 접착 불량이었다. 특히 접착 불량 건수는 최근 3년 간 지속적으로 늘어난 만큼, 제조업체가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국가기술표준원의 라벨 담당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1명이 섬유, PVC관, 스포츠보호용품의 안전기준 업무를 모두 맡고 있다.  

결국 부정확한 정보 전달과 느슨한 관리에 따른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 되고 있다. 국내 세탁업체 이용 과정에서 손상을 입었을 경우, 소비자가 피해보상을 받기란 쉽지 않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구입가를 기준으로 감가상각해 피해보상액을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단 세탁물처럼 소비자 과실이 일부 있다고 보여질 경우,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한다. 

게다가 품명, 구입가격, 구입일 등을 소비자가 직접 입증하지 못할 경우 세탁금액의 20배까지만 보상받을 수 있다.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의류를 맡겼어도 구매 영수증이 없으면 피해 보상액은 절반도 되지 않는 셈이다 .

특히 관리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의류 제조업체와 세탁업체가 섬유 종류와 관계없이 드라이클리닝을 권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소비자단체에서는 ‘소비자의 의사를 고려치 않는 행위’라며 라벨 표기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수입 과정에서 물세탁이 드라이클리닝으로 바뀌는 등 드라이클리닝 표시 제품 중 물세탁이 가능한 제품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라벨 표시 기준 개발을 검토하고 있으나, 공정위, 관렵업계 등에서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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