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꽃‘ 임원 진입장벽 존재…특정 학교 출신 높아

여성 사외이사만 증가…이사회 전문성·다양성에서 한계

ESG 공시 의무화에 여성 등용 나섰지만…“여전히 한 자릿수“

국내 주요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아직까지 턱없이 낮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국내 주요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아직까지 턱없이 낮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직장인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 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단기 계약직에 가깝다. 고용 계약을 맺을 때 길어야 2년 안팎의 임기가 보장되지만, 이마저도 실적에 따라 중간에 낙마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임원 승진을 가리켜 “별을 단다”고 표현할 정도로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야망을 품어봄직한 자리이기도 하다. 임원이 되면 연봉, 복리후생과 같은 혜택이 급격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맥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골프장을 비롯해 고급 시설 이용권이 주어진다. 품위 유지를 위해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업무추진비’ 금액도 억대로 올라가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들은 사업장 인근에 숙소를 제공하거나, 자녀의 해외 국제학교 진학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별을 달기 위해선 진입장벽이 높았다. 기업들의 무대가 국내에서 해외로 옮겨가면서 매출 규모가 늘어나자 ‘검증된 역량’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척도는 ‘학력’이었다. 

실제 국내 500대 기업의 CEO 5명 중 2명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었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10월 말 기준 으로 500대 기업 CEO 659명의 출신 이력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44.6%(265명)에 달했다. 2012년 47.1%에서 불과 2.5%포인트 줄었다. 서울대 출신은 24.8%에서 22.9%로 1.9%포인트 감소했지만 타 대학 출신들을 압도했다. 서울대 다음으로 CEO 등용이 많았던 고려대(12.5%)와 비교해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출신 대학 외에 전공에서도 상경계열 출신의 비율이 높았다. 조직 관리와 위기 대응에서 적절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학력보다 더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 성(性)이다. 지난해 8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 2조원 이상 국내 상장사는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도록 했다.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강화해 ‘오너 일가에 대한 건강한 견제’라는 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함이다. 동시에 여성 인재의 고위직 진출을 늘려 사회적으로도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사내외 이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 점을 이용했다. 주요 경영현안을 결정하고 인사·재무 등을 직접적으로 총괄하는 사내이사 대신 사외이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꼼수’를 부린 것이다. 기업분석업체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등기임원을 분석한 결과,  2020년 상반기 95명 가운데 65명이 사외이사였다. 올 상반기 여성 등기임원은 221명으로 늘어났지만 사외이사(193명) 증가세가 컸기 때문이었다. 

국내 매출 500대 기업의 여성 사내외이사 현황. 자료. 리더스인덱스.
국내 매출 500대 기업의 여성 사내외이사 현황. 자료. 리더스인덱스.

올해 새롭게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경우, 나름의 변화는 있었다. 남초 현상이 강한 중후장대 산업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속속 등용한 것이다. LG화학(이현주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효성중공업(윤여선 카이스트 경영대학장), 삼성엔지니어링(최정현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DL이앤씨(신수진 한국외대 초빙교수) 등이 이사회 진출에 성공했다. 

문제는 여성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수행할만한 판을 깔아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영입한 여성 사외이사 이력을 보면, 학계 49%(94명), 관료 18%(34명), 재계 17%(33명), 변호사 10%(19명), 회계사 4%(8명), 언론 2%(4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를 놓고 여성 인력의 활용방안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와 동떨어진 인물인지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핵심 사업이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연관성이 깊어 보일 법한 분야의 학자를 주로 등용했다는 것이다. 여성 사외이사에게 참신한 시각을 요구하기보단 단순히 이사회의 ‘다양성’을 입증하는 역할만을 기대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여성 사내이사는 전문경영인이 도전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여성 사내이사 수는 30명에서 28명으로 정체됐는데, 16명이 오너가 출신이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 임상민 대상 전무 등 오너가 사내이사 비중은 57.2%나 됐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데일리임팩트에 “이사회 내 여성 인원이 늘어나긴 했지만, 사외이사에 집중됐고 사내이사 상당수는 오너일가에 속했다”며 “이사회의 다양성 확보를 통해 의사결정의 독립성·전문성을 높여 글로벌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제고하자는 법의 취지에 부합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여성 인력 활용도는 처참한 수준이다. 회계법인 딜로이트 글로벌은 “국내 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4.2%로 카타르(1.2%) 사우디아라비아(1.7%) 쿠웨이트(4%) 등 여성 인권이 낮다고 평가되는 중동권에 이어 네 번째로 적다”고 진단했다. 

LG그룹에서 여성 CEO가 배출되면서 올해 유리천장 지수가 변화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온다. 그러나 남성 중심적인 기업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된 만큼, 유의미한 수준의 양성 평등이 이뤄지기까지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LG그룹에서 여성 CEO가 배출되면서 올해 유리천장 지수가 변화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온다. 그러나 남성 중심적인 기업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된 만큼, 유의미한 수준의 양성 평등이 이뤄지기까지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다만 올해 유리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임원 인사를 단행한 기업 중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배출된 까닭이다. CJ그룹은 1977년생인 이선정 경영리더를 CJ올리브영 신임 대표로 앉혔다. 올리브영 최초의 여성 수장이다. LS그룹도 최숙아 전무에게 LS EV코리아 대표직을 줬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강했던 LG그룹은 LG생활건강과 지투알 CEO에 이정애 사장, 박애리 부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특히 재계 4대 그룹 상장사 중에서 C레벨급 여성 임원이 처음 탄생되면서 핵심 경영진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2025년부터 ESG 공시가 의무화 되는 만큼, 올해부터 조금씩 여성 인력의 전진 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상무급 이상, 미등기임원까지 넓혀도 여성 임원의 숫자는 한 자릿수에 머문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유리천장지수를 29개국 중 맨 아래로 봤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유리천장이 단기간 내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데일리임팩트에 “ESG 공시에 대비해 전통산업을 포함, 다양한 업종에서 여성 인력을 충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반적으로 여성 인재 증가 속도는 빨라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오 소장은 “100대 기업 상반기 보고서 기준으로 여성 임원 비율은 5.6%에 그친다”며 “전체적으로 두 자릿수가 되려면 5년은 잡아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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