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투자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고려는 더 이상 투자 의사 결정의 외부 변수가 아닙니다. ESG 공시 표준화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블랙록을 포함한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시장 참여는 ESG 투자 주류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기후'는 국제 정치에 있어 핵심 아젠다로 부상한 지 오래입니다. 기업의 ESG 공시는 재무 공시에 통합되고 있으며 ESG 경쟁력은 새로운 무역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공급망 안보를 위한 경쟁 속에도 ESG가 녹아(실사법)들고 있으며 ESG 투자는 침체기에 진입하고 있는 세계 경제 재편의 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글로벌 증시와 시장 참여자들은 ESG 아젠다를 선점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 정립을 위해 분투하고 있습니다. 데일리임팩트는 이번 기획에서 이들이 어떤 기준으로 ESG 투자를 변화시키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사진 : 데일리임팩트 DB
사진 : 데일리임팩트 DB

룰 메이커들 시급성 인식, ESG 정보공시 표준화 '속도전
ESG 투자 접근성, 해상도 높인다
상장 심사에도 ESG 반영된다, 규범에서 주류화로

[데일리임팩트 이승균, 박민석 기자] ESG 투자 빅 체인지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이어 미국 바이든 정부가 재정 지출을 통해 ESG 투자 전면에 나서면서 기업과 투자자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28일(현지시각) AP통신, 뉴욕타임스 등 복수 외신에 따르면 미국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같은 당 조 맨친 상원의원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관련 예산안이 담긴 패키지 법안에 합의했다. 조 맨친 상원의원은 인플레이션 가중을 이유로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재정 정책에 반대해 왔다.

조 맨친 상원의원이 합의한 3690억달러(480조원) 규모의 기후대응과 에너지 전환 예산안이 최종 통과하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기후 및 에너지 전략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 배출감축 실패 기업에 대한 제재 등에 나서겠다고 밝혀왔다.

법안이 통과하면 증권거래소와 신용 평가기관을 중심으로 한 ESG 정보 선별과 공시 등 투자 환경 조성이 빠르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배출감축 실패 기업 제재,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등 관련 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규제 당국과 시장참여자의 사전 준비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어 ESG 공시 표준화 및 의무화도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주 등 일부 지역은 최근 기온이 섭씨 46도까지 치솟고 미국 인구의 20%가 37.7도(화씨100도) 이상의 온도에 노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위기의 크기만큼 ESG 투자의 '룰'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룰 메이커들 시급성 인식, ESG 정보공시 표준화 '속도전'

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기후변화와 관련한 공시 규칙 제정에 이어 환경, 사회,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하위 공시 지표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일각에서는 기후 관련 공시 의무화도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로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사실상 ESG 정보 전반에 대한 공시 의무화를 추진 중인 셈이다.

기후변화 공시 규칙이 통과하면 미국 상장 대기업은 당장 2023년 회계연도의 재무제표부터 바꿔야 한다. 직접 및 에너지 사용 과정(스코프 1,2)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사업보고서와 증권신고서를 통해 공시해야 한다. 나아가 SEC는 상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오는 2024년, 2025년부터 간접 배출량(스코프3) 공시 의무도 부여하기로 하는 등 공시 정보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는 지난 28일 기후 관련 재무 위험에 대한 보고서를 토대로 위원 15명이 전원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관련재무위험위원회(CFRC)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FSOC는 기후 위험에 대한 금융 시스템의 회복력을 촉진하기 위해 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FSOC는 이날 성명문에서 SEC가 추진하고 있는 기후 관련 공시 의무화 규칙이 ESG 투자자들에게 비교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SEC의 기후 공시 의무화는 지난 1년간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을 이어 왔으나 이번 발언으로 사실상 의무화를 공식화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엠마뉴엘 파버(Emmanuel Faber) ISSB 의장. 사진 : 위키미디어

국제 표준화기구도 속도전에 나선다. 지난 20일 엠마뉴엘 파버(Emmanuel Faber) 국제 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 의장은 올해 하반기 ESG 공시와 관련한 표준(IFRS S)을 발표하고 조속히 다른 ESG 공시 표준 연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ISSB의 IFRS S 공시 초안은 산업별 특성에 맞는 ESG 공시에 대한 기본적인 골격을 제공하고 있고 핵심이 되는 SASB와 TCFD를 포섭하고 있어 기업의 ESG 공시의 국제 표준으로 안착할 것이라는게 국내외 금융권의 판단이다. SEC와 ISSB를 중심으로 한 ESG 정보 공시 표준화는 올해 하반기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ESG 투자 접근성, 해상도 높인다

ESG 투자에 필요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투자 상품의 ESG 반영 여부를 적합히 판별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미국 로펌 깁슨던 앤 크러처 분석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에서 최다 과반수 찬성표를 받은 안건은 환경과, 사회 관련 주주 결의(45%)로 지배구조 관련 결의(38%)를 처음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기반으로 한 기업 관여 방식의 ESG 투자가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주요 투자 전략으로 안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투자자들은 올해 기업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282건의 ESG 결의안에 투표했으며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 60% 증가한 수치다. 해당 결의안 중 34건은 과반수 찬성표를 얻었다.

미국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ESG 요소를 고려한 투자는 신의성실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SEC가 환경, 직원 중재 등 공공 정책 관련 이슈에 대해 투자자들의 투표 개최 요구를 강화하고 ESG 이슈에 대해 동일한 제안을 다시 제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규칙안을 변경한 것이 주주 행동주의를 직접적으로 촉발하고 있다.

SEC의 일련의 규칙 변경으로 기업관여 방식의 ESG 투자자들은 ESG 관련 공시를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SEC는 지난 5월 ESG가 포함된 투자 상품에 대해 자산운용사에 관련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새로운 규칙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ESG 투자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ESG 투자 접근성과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이 지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ISSB와 SEC가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 심사에도 ESG, 규범에서 주류화로

2022년 7월 29일 기준 SSE 가입 전 세계 116개 거래소 ESG 국제 표준 준수 비율. 제공 SSE. 편집 : 김민영 기자
2022년 7월 29일 기준 SSE 가입 전 세계 116개 거래소 ESG 국제 표준 준수 비율. 제공 SSE. 편집 : 김민영 기자

한편, 각국 거래소가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 개선을 위해 상장 심사에 ESG를 반영하거나 ESG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주류화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유엔 지속가능증권거래소 이니셔티브(SSE)에 따르면 전 세계 116개 거래소 중 32개(27.5%)가 필수 ESG 상장 요건을 두고 있고 76개(56.8%)에 달하는 거래소가 ESG 보고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SSE에 따르면 29일 기준 116개 증권거래소 중 95%가 가이드라인에 GRI(지속가능보고 이니셔티브) 표준에 대해 안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ASB(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와 IIRC(국제통합보고위원회)에 대한 고려 여부도 각각 79%, 76%에 달했다.

나스닥은 2019년 5월 개정한 ESG 보고 가이드 2.0을 통해 동일한 ESG 성과 추적에 대한 불합리함을 인정하면서도 SASB, TCFD, IIRC, CDP 등을 활용해 기업이 목적에 부합하는 ESG 성과를 관리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나스닥은 지난해 8월 이사회 다양성 및 공개에 관한 규칙 변경을 통해 여성과 소수자를 1명 이상 선발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설명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은 올해 상반기 ESG 평가를 통해 평가 대상 기업의 온실가스 전략에 대한 광범위한 검증 모델을 만들어 민간에 공개했다. ESG 정보의 투자 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이벤트의 시계열 가중치 반영과 산업별 비교 평가를 통해 정규화하고 있다.

매년 ESG 등급을 재조정하고 있으며 5개 글로벌 자산 오너와 협의를 통해 가중치에 대한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MSCI는 각 기업의 최대 20여년 주주총회 의안안을 정규화해 분석하는 등 1000개 이상 세부 지표 세트를 확보하고 상품화에 나서고 있다.

김윤정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국제 ESG 공시 표준(IFRS S)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연내 최종 발표되어 규범화가 이루어지면 ESG 투자도 정교해지고 이는 ESG 투자 주류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지속가능투자연합(GSIA)이 지난해 7월 발간한 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총 운용 자산 대비 ESG를 고려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관리한 자산 비율은 35.9%로 35조 3010억달러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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