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콜옵션 행사 연기에 채권 시장 급락

보험사 발행 채권에 대한 신뢰 회복도 상당 시간 소요

자본성 증권에 의존했던 보험사는 새 확충 수단 찾아야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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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임팩트 최동수 기자]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중도상환권(콜옵션) 사태'가 보험업계는 물론 금융 시장 전체를 흔들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긴축 기조와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시장 악재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콜옵션 연기 쇼크로 해외 시장에서 급락했던 한국 기업들의 채권 가격은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시장 경색으로 인한 자금 조달 부담이 더 커지면서 보험업계에선 제2의 흥국생명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도 채권 시장 안정화를 위해 규제 완화로 업계의 유동성 숨통을 틔워주고 있지만 보험사의 자본증권 의존이 심각한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문가들은 수익 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싱가포르 거래소를 통해 이날 만기를 맞는 5억달러(당시 5570억원 수준)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공시했다.

흥국생명은 자체 자금과 대주주인 태광그룹의 자금지원, 시중은행들을 상대로 한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 타 보험사 대출 등을 통해 5억달러를 마련할 계획이다.

앞서 흥국생명은 기준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지난 1일 콜옵션 포기를 선언했다. 이같은 결정이 알려지면서 해외 채권시장에서 국내 회사 발행 외화표시 채권의 가격이 급락하는 등 한국물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악화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3일 생명보험업계와 간담회를 열어 흥국생명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했고 흥국생명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자 급하게 결정을 바꿨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당사의 기존 결정으로 인해 야기된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앞으로도 시장 안정과 고객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보험사 유동성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연말까지 경영실태평가(RAAS) 때 유동성 지표 평가 등급을 한 단계씩 상향해주는 식으로 일부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주기로 했다.

다른 보험사들도 이러한 규제 완화에 차례로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도 내년 5월로 연기한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예정대로 이달 13일에 진행할 예정이다. 한화생명과 KDB생명 등 내년 상반기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앞둔 회사들도 예정대로 콜옵션을 행사할 계획이다.

사진. 흥국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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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흥국생명 사태 발생할 수도…

흥국생명이 유예 계획을 철회하고 당초 일정대로 조기상환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번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일각에선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보험사 자본성 증권(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규모가 4조원에 달하면서 제2의 흥국생명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이 내년 말까지 콜옵션을 해야 하는 자본성 증권 규모는 총 20건, 3조4470억원이다. 각각 원화 자본성 증권 17건과 외화 자본성 증권 3건이다. 이 중 내년 상반기 기준으로만 콜옵션 도래 자본성 증권 규모는 1조8260억원으로 집계됐다.

보험사 별로 보면 DB생명 후순위채 800억원, 푸본현대생명 신종자본증권 600억원, 메리츠화재 후순위채 1000억원, 한화생명 신종자본증권 10억달러, DGB생명 후순위채 500억원, KDB생명 신종자본증권 2억달러, 롯데손보 후순위채 600억원, 신한라이프 후순위채 2000억원 등이 포함됐다.

내년 상반기 콜옵션 행사가 도래한 국내 보험사들은 모두 콜옵션 이행할 계획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보험사의 자본성 증권 규모가 점차 늘어나면 유동성이 부족한 보험사 중 흥국생명과 비슷한 행보를 보일 보험사가 또 등장할 수 있다고 꼬집는다.

더불어 단기자금 시장 경색과 유동성 우려가 당분간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국내 보험사가 발행하는 외화표시 채권에 대한 신뢰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자본 확충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해외 자본 시장의 접근성과 신인도 저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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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수익 구조 개편이 근본적 해결책

일각에선 자본조달 측면에서 발행이 쉬운 자본성 증권을 크게 늘린 국내 보험사들의 수익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 보험사들은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상황에서 대규모 자본성 증권 발행으로 자본확충을 꾀하다 금리가 인상되면서 역풍을 맞았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가 발행한 자본성 증권의 연간 금융비용은 올해 기준으로 8200억원에 달한다. 금융비용은 보험사들이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와 배당을 합한 금액이다.

보험사들의 자기자본 대비 자본성 증권 비중도 크게 늘었다. 생명보험사들의 경우 자기자본에서 자본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8.5%에서 올해 6월 기준 38.6%에 달했다. 같은 기간 손해보험사들은 17.7%에서 39.6%까지 올라갔다.

RBC(지급여력) 비율 하락을 방어하고 내년부터 도입될 새로운 회계제도(IFRS17)를 대비하기 위해서 자본확충이 필요했던 보험사들에겐 자본성 증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문제는 시장금리의 급격한 인상이다. 저금리 상황에서는 부담이 크지 않지만 연이은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로 금융비용 부담이 커졌고 실제로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중이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보험사의 금융비용 부담은 내년에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이미 자본성 증권 발행 한도를 다 소진해 외부의 도움 없이는 추가 자본확충이 어려운 보험사들의 경우 과도한 금융비용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보험사의 수익구조가 개편되지 않으면 제2의 흥국생명 사태는 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수한 자본확충 없이 자본성 증권 발행을 통해 규제자본 비율을 관리하고 있는 보험사는 수익성과 자본적정성이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카드가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무리가 있다"며 "결국 내년이 되고 IFRS17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보험사들은 새로운 자본 확충 방안을 찾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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