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조 육박한 中企대출, 5% 고금리에 ‘흑자도산’ 현실화 조짐

‘상환능력 상실’ 좀비기업 증가 우려도…정책적 지원 필요성 커져

사진. 이미지투데이.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3고(高)’ 기조와 국내외 강도 높은 긴축정책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 전반에 ‘흑자도산’, ‘좀비기업’ 등이 리스크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미국 연준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하겠다고 밝히는 등, 불확실한 대내외 여건이 이러한 리스크의 등장을 앞당기고 있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특히, 역대급으로 치솟은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이미 코로나19로 기초체력이 약해진 이들 기업을 시작으로 한 리스크 현실화를 앞당기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최근과 유사한 금융·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팽배했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처럼 중소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고, 한발 더 나아가 기준금리 인상 기조의 속도조절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강도 높은 긴축 정책과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의 경색, 이에 따른 유동성 문제가 겹치면서 국내 산업계 내부에서 흑자도산 또는 좀비기업이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상당수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채무 리스크에 노출된 상황에서, 갈수록 커지는 불확실성과 예상치 못한 대내외 변수가 이러한 리스크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

치솟는 금리에 엄습한 채무리스크

좀비기업과 흑자도산은 기본적으로 고금리에 의한 채무 부담, 그리고 경색된 자금 유동성이 원인이 돼 발생한다. 실제로 좀비기업(한계기업)은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의 기초체력을 보유한 기업을 의미한다. 흑자도산 또한 영업 실적 및 재무 상태가 비교적 건전한 기업이 단기부채를 갚을 수 있는 수준의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지 못해 도산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기업이 맞닥뜨리는 상황은 다소 상이하지만 △고금리 △이자 부담 △유동성 경색이라는 흑자도산·좀비기업 사태의 키워드는 모두 최근 국내 금융·경제시장에 불거진 현안 및 이슈와 일맥상통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주요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연평균 4.87%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4년 1월(4.88%) 이후 8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주목할 부분은 대출 금리 구간별 비중이다. 9월 기준, 5% 이상의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이용 중인 곳은 전체의 40.6%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3.1%)와 비교하면 무려 13배(37.5%p) 이상 확대된 수치다.

구간별로 살펴보면 4% 이상~5% 미만 구간이 42.1%로 전년 (7.3%) 대비 6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3% 미만의 대출금리 비중은 전년 동기(56.5%) 대비 급감한 4.7% 수준에 그쳤다.

그 사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전년 동기(873조원) 2000억 원 늘어난 늘어난 948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기 이전인 지난 2019년 말(717조2000억원) 대비 231조5000억원 증가한 수치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은행·신한·하나·우리·NH농협)으로 범위를 좁혀봐도 지난 10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이 전월 말(594조4167억원) 대비 2조9930억원 늘어난 597조4097억원 수준을 보였다. 이는 전체 기업대출 잔액(703조7512억원)의 84.9% 비중이다.

이처럼 부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지만 중소기업의 자금줄은 여전히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와 이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중소기업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자금 융통이 수월한 대기업들 역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예견된 퍼펙트스톰, 기업환경 악화 불가피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지속, 나아가 더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미국 연준과 한은 금통위는 내년 상반기까지 막힘없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시장에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최대 1%p 가까이 금리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에 따르면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이 단행될 때마다, 기업 대출 차주들이 감당해야 하는 이자는 약 3조9000억원 가량 늘어난다.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된 기준금리 인상분(2.5%p)을 감안하면 1년 3개월간 기업 이자 부담은 11조7000억원 증가한 셈이다.

여기에 이달 중 예정된 한은 금통위에서 사상 세 번째 빅스텝 단행 가능성도 높은 만큼 이자 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금리인상 기조가 생각보다 강도 높고, 길게 이어질 경우, 좀비기업 및 흑자도산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기업 가운데 좀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9% 수준이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14.8%) 수준으로 회귀한 완만한 회복세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수치를 들여다보면 위험도는 여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19년 3463곳이었던 한계기업 수는 2020년(3465곳), 2021년(3572곳)으로 매년 증가해왔다. 특히, 지난 2019년 3008곳이었던 좀비기업 중 중소기업의 숫자는 지난해에는 3035곳으로 2년 사이 소폭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최근 3고 현상과 자금시장 경색에 따른 기업환경의 악화, 여전한 국내외 변수를 감안하면 한계기업 비중이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외 경기가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계기업(좀비기업) 비중도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효율적인 기업구조조정 환경을 조성하는 등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변동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기준금리 변동 추이. 디자인. 김민영 기자.

'Again 2008년 위기' 우려, 금리조절 등 대책 필요

금융업계에서는 최근의 경제 상황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에도 5%를 넘어선 기준금리와 높은 물가상승률, 자금시장 경색으로 일시적 유동성에 직면한 중소기업의 흑자도산 우려가 팽배했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대책도 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은행권의 신속한 유동성 지원을 골자로한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한국은행이 중소기업대출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하는 정책금융 ‘총액한도대출’ 제도도 운용했다.

이는 최근 현 정부가 발표한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지원, 은행권 중심의 95조원 지원책 등과 유사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업계 내부에서는 당시 한국은행이 흑자도산, 한계기업 확대를 막기 위해 사상 유례없는 급격한 금리인하를 단행한 점에 주목하며 금리인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2008년 8월 5.25%의 고금리를 기록했던 기준금리는 지난 2009년 2월 기준 2%까지 하락했다. 불과 6개월 사이 3.25%가 내려간 셈인데, 당시 한국은행 또한 자금시장 경색, 기업환경 위축 등을 기준금리 인하의 근거로 언급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GDP 대비 105%에 육박한 가계부채 비중, 80%에 근접한 변동금리 비중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최근 금리 인상에 속도 조절에 나선 다른 국가의 현황을 고려하면 11월에는 0.25%p 수준으로 속도 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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