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투자업체, 중대재해처벌법 내 처벌 대상 포함 가능성↑

모호한 법 규정…저마다 다른 해석에 법무법인 문의 건수도 폭증

투자업계 “건설현장 관행‧환경 변화가 법 집행보다 우선시돼야”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김병주‧임은빈 기자]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부동산 개발 및 임대사업을 영위하는 ‘자산운용 및 리츠, 신탁사(이하 투자업계)’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시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법 적용의 모호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법인 등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가 예방조치 소홀에 따른 사고라는 것이 밝혀지면 경영책임자 및 사업주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또 법인에게 책임이 있을 경우에는 50억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중대재해처벌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을 경영책임자의 범위로 지정하고 있다.

설익은 법 시행, 투자업계는 ‘당혹’

애초, 투자업계에서는 시공사, 시행사 등 실제 건설에 관여하는 일부 업종만 실제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초점이 사업자 대표 및 책임자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에 맞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실제 시공 작업에 직접 참여 또는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건설 과정에 개입한 투자사 및 운용사들 역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내부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현재 투자업계에서는 이러한 경영책임자에 자산운용사, 리츠(부동산투자회사), 신탁사 등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5조에 따르면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 책임이 있을 경우,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 방지를 위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돼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자’의 범위를 바라보는 법리적 해석이 저마다 다른 데다, 조항 자체가 굉장히 포괄적이고 모호한 부분이 많아 정확한 대비책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 까닭에 현재 관련 업계에서는 법이 국회를 통과한 올 초부터, 주요 로펌을 통해 법 적용 대상 및 조건, 사고에 따른 경영책임자 범위 등의 부분을 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계·전문가 등 2146명이 17일 국회 앞에서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제공
학계·전문가 등 2146명이 17일 국회 앞에서 공동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참여연대 제공

신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예를 들어 형식상 신탁사가 법적 소유권자로 설정됐을 경우, 실질적인 소유자(위탁자본)가 엄밀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신탁사가 많은 책임을 져야 된다”며 “이처럼 실질적 지배와 법적 지배의 범위, 심지어 이를 확인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법 자체가 현실과는 맞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내부에서는 법령에 대한 해석이 보다 명확해질 때까지 법 시행을 다시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사실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전문가들은 법 자체의 모호성을 근거로 2년 이상의 유예기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국내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한 ‘기업과실치사법’ 도입에만 무려 13년의 논의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 외 선진국들도 꽤 오랜 숙고의 시간을 거치는데 반해,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안 심의 시작 2주 만에 국회를 통과하며 졸속입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유예기간 역시 1년(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에 그쳤다.

신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세부적인 규제안에 대한 업계의 입장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선뜻 제안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라며 기존의 법체계와 계약체계를 흔들어 버릴 수 있는 법임에도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채 시행되는 것은 아쉽다”라고 하소연했다.

모호한 책임 소재 규명에 ‘혼란 가중’

당장 관련 업계에서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다. 실질적인 투자·관리업무에 특화된 투자업계에게 까지 안전사고의 책임까지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특히 법 자체가 강력한 규제를 통한 사전예방이 아닌, 사실상 사후 처벌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우선 상당수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자금 투자‧관리 사업에 특화된 신탁, 리츠사는 공사과정에서 기술적인 지시나 관여를 할 수 있을 수준의 전문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민간인 또는 건설 분야와 무관한 발주자에 비해서는 경험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해당 경험 역시 △준공기한 관리 △공사대금 지급 등 원활한 공사 진행을 위한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지금도 신탁 업계에서는 자체 기술관리팀‧건설사업관리(CM)사 등을 통해 기성검사, 현장점검 등을 수행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법에서 명시한 ‘위험에 대한 제어 능력’, 즉 관리책임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 내부의 주장이다.

신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아무리 신탁사가 현장에 안전조치를 지시해도 실질적인 안전조치 보강, 비용 집행, 관리자 선임 등은 시공사 책임하게 이뤄진다”며 “이런 상황에서 신탁사에 위험 제어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법 제5조에 대한 해석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산관리사, 신탁사 등 투자업계는 자금 투자 및 관리 사업의 목적으로 시공에 참여할 뿐 사업장 운영과 관련한 어떠한 결정권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이라고 명시된 처벌 대상에 투자업계가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리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자산관리회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실제 시공 사업장 내 조직·인력·예산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며 “실질적인 지배 및 운영이 사업장의 조직과 인력, 예산 관련 결정을 총괄‧행사하는 의미라면 사실상 자산관리·리츠사는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또 리츠 업계에서는 사업의 특성 간 차이도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위 차입형 신탁(신탁사가 개발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것)방식 정비사업의 경우,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의 책임이 부여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외 개발 방식에는 책임 자체가 부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한 법무법인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위탁자가 주체가 돼 사업을 진행하고 리츠사가 부동산 유지보수, 임대차 관리 등의 업무만 담당하는 방식의 신탁상품은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 책임이 인정될 수 없다”며 “결론적으로 신탁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대부분을 누가 가져가는지의 여부가 책임자를 가늠할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명목상 소유권자인 신탁사가 아닌, 해당 사업으로 실질적인 수익을 가져가는 위탁자(수익자)가 중대재해법에 명시된 ‘지배·운영·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 시행 보다 현장의 관행 개선이 우선

일단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여를 앞두고 신탁, 자산운용, 리츠 등 투자업계는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모호한 법령과 이에 따른 적용 범위의 불확실성, 내부 시스템 정비 미비 등의 문제는 법 통과 직후와 크게 달라진 바 없지만 일단 현실에서 부딪히며 해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우선 건설 현장에서는 최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고, 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노력이 잘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난간‧안전망이 제대로 설치됐는지, 또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시 즉각 119에 신고하는 등의 조치 의무를 시행하는지의 여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보건 조치의 의무’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를 지키지 않을 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러한 감시의 역할이 현재 투자업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는 입장이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주체는 경영책임자인데, 앞서 언급한 대로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상 ‘경영책임자’에는 신탁, 리츠사 등이 포함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마저도 업계 내부에선 물리적인 관리가 녹록지 않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신탁사가 안전설비 확충을 위한 예산을 현장 시공사에 지급하더라도 이를 실제 사용처에 맞게 집행하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보고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신탁사의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결국 이러한 문제는 강력한 법 시행 못지않게 그동안 건설 현장에 누적돼온 관행과 환경을 바꿔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법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안전 문제가 현장에서 개선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데일리임팩트가 만난 상당수의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성급한 법 시행 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법 자체의 취지에는 투자업계에서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촘촘하게 만들어진 법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며 충분한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피력하고 있다.

신탁업계 내부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수많은 변호사들이 내놓는 규정에 대한 해석과 의견이 매번 달라질 정도로 법안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충분한 대비가 안된 상황에서 갑자기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는 것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는 시행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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