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책임자·안전보건 확보 의무 등 핵심조항 불명확‥자의적 해석 가능

사망사고 발생률 높은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산재 예방 실효성 미지수

법조계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형사처벌 가능‥포퓰리즘 법안의 전형”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자의적 해석 여지가 많은 과잉입법에 대한 우려가 산업계 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커지고 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한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자의적 해석 여지가 많은 과잉입법에 대한 우려가 산업계 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커지고 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자녀가 성적이 떨어지면, 학습 능률이 떨어지는 이유가 뭔지 부모가 원인도 분석하고 공부법도 바꿔보고 노력을 해야지. 회초리부터 들이미는 격이죠. 미사여구로 갖다 붙여도 ‘악법’입니다.”(A법무법인 관계자)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법 시행까지 딱 한달이 남았다. 그러나 현장은 그야말로 혼동 그 자체다. 정부는 지난 8월과 11월 두 차례 지침까지 내놨지만, ‘자의적 법 해석이 가능하다’는 우려가 산업계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산업안전 역량 강화 보다 ‘처벌’에 방점을 찍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산업재해의 예방, 나아가 재발 방지다. 중대재해에 대해 ‘더 센 처벌’을 함으로써 후진국형 산재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게 이 법의 취지다. 

문재인 정부는 매년 100명 가까이 발생하는 산재사고 사망자를 임기 내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고용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재 사망자는 2017년 964명에서 2018년 971명, 2019년 855명으로 줄어들다가 지난해 다시 882명으로 늘었다. 결국 정부는 올해 목표치를 616명에서 705명으로 조정했지만, 이미 11월 기준으로 790명에 달했다. 특히 정부는 현장 관리감독을 강화했다는 입장이지만, 산재 사망사고의 절반 가량이 끼임이나 추락 등으로 나타나 현장의 안전관리 체계가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해법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고(故)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 처벌법률안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2017년 4월 38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건이 계기가 돼 발의됐다. 이듬해 김용균씨 사건으로 인해 산업재해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법안 제정에 속도가 붙는 듯 보였지만 20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이 노 의원 안을 보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은 현장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사망자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과 같은 의무를 위반한 게 확인되면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과실이 인정되면 징벌적 손해배상도 가능하다. 

문제는 기준과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경영책임자다. 경영책임자에 대해 대표이사와 같이 사업 총괄 권한이나 책임을 가진 이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는 이에 대해 해설서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와 책임의 귀속 주체는 원칙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고 분명히 했다. 실제 안전·보건 관련 예산과 조직 등에 대한 전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고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만큼, 최종적으로 대표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관한 해석도 논란거리다. 본사 또는 원청이 현실적으로 모든 사업장을 관리·감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협력업체에서 관리 소홀로 산재가 발생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원청이 지는 건 과잉처벌이자 산업 현장 선진화라는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실질적’이라는 의미가 불분명하다. 안전 관리·감독을 하기 위해서 원청과 하청 중 누가 무엇을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할지 분명히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얼마나 예방 효과가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게다가 산재 발생이 높은 주체가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50인 미만 사업장은 오는 2024년부터 적용키로 했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체 사업장 중 50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은 98.8%, 대부분의 중대재해는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의 81%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특히 5인 미만의 비중은 35.2%에 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대상이 되는 중대시민재해의 경우도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중대시민재해로 인정되는 공중이용시설의 범위에 교량·터널 등을 포함시켜 놓고 정작 도로와 건설·철거 현장을 뺐다. 이대로라면 광주 붕괴 사고와 같은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해도 사실상 처벌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 이미지투데이.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 이미지투데이.

법조계에서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부정적 기류가 팽배하다. 시행령에서조차 ‘적정’ ‘충분한’ ‘필요한’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데다, 중대재해의 범위가 굉장히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중대재해를 처벌하거나 안전역량을 강화하기에 모자람이 없는데도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가능하다. 또 5년 내 사망사고가 재발하면 최초 확정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을 할 수 있다. 

정진우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영국의 경우, 사망재해가 발생하면 가중처벌 한다는 규정이 없었으니 새 법의 필요성이 있었지만,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비교해 보호 대상을 넓혀 ‘처벌이 더 쉬워진’ 것 외에 기본적으로 안전 관련 법령을 준수할 수 없는 게 문제”라며 “죄질,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약한 것까지 포괄하면서 처벌만 강화시켰으니 헌법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사망자 발생 시 기업에 대한 벌금형만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개인사업주)·경영책임자(법인의 대표이사) 형사처벌을 비롯해 법인 처벌, 안전보건교육 수강(20시간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5배 이내) 등 4중 제재로 이뤄진다. 호주와 캐나다는 산업안전보건법과 형법을 통해 기업과 사업주를 처벌하고 있다.

특히 유럽과 일본, 북미 등 산업 안전 선진국들의 처벌 수준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낮았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한 경우 징역형을 행하는 경우 최대가 1년이었다. 벌금 또는 과태료를 부과하더라도 최대 3400만원에 그쳤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처벌수위는 징역형은 3년 이하, 벌금은 1000만원 내외였다. 심지어 프랑스와 일본, 오스트리아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이 아닌 형법으로 책임을 물었다. 

이미 대형 법무법인들은 ‘공포 마케팅’에 편승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처벌 1호 기업이 되면 징역을 면키 어렵다’는 점을 부각시켜 오너리스크를 고민하는 기업들에게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로펌마다 전문TF를 구성해 대응 중”이라며 “대표이사의 처벌을 피하려는 기업의 심리를 이용해 ‘경영과 안전 관리를 분리하라’ 같은 원론적인 컨설팅을 해주고 수익을 챙기고 있다”고 귀띔했다. 

기업들 역시 ‘꼼수’가 횡횡한 형국이다. 당장 안전 교육 및 체계 강화보다 처벌을 피할 방도를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는 이유로 CCTV나 바디캠을 설치하는 추세다. 아예 안전에 대해 전권을 가진 대표이사를 별도로 세우거나 지배구조를 바꿔 지주사로 전환해 오너 또는 대표이사가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도 생겼다. 

말썽이 될 소지는 처음부터 싹을 자르는 기류 또한 강해졌다. 현장에서 산재가 발생하면 형사처벌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인과관계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동자의 자기 관리 소홀로 떠넘기거나, 아예 건강상 우려가 되는 인력은 채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국내 대기업 하청업체 직원 B씨는 데일리임팩트에 “회사에서 ‘건강관리에 신경 쓰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현장 상황에 따라 추천 채용이 이뤄지는데, 디스크, 당뇨와 같은 질환을 갖고 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을 추천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고 전했다.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부실한 안전 관련 체계를 보완하거나 사고 발생률을 경감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인과관계가 불분명한데도 처벌을 가함으로써 ‘자기 책임’이라는 법치주의의 원리가 훼손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면서 “헌법상 금지하는 연좌제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면책 조항이 없으니, 형식적으로 ‘안전 체계를 갖춤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며 “대응체계가 잘 갖춰진 대기업은 빠져나가고 결과적으로 여력이 되지 않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부담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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