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 차등 배상' 홍콩ELS 배상안, 은행 수용여부에 '관심'
논의 및 의견수렴 시작했지만배임 이슈에 先배상에 난색
은행권 "주주 등 의견 수렴, 자율배상 전제 실적 영향도 점검"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손실규모만 1조원을 넘어선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이하 홍콩ELS)’ 원금 손실 사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배상안이 공개되면서 이제 공은 은행권으로 넘어갔다. 

은행권에서는 금감원의 배상안이 큰 틀에선 예상가능한 수준으로 나왔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피해 투자자들에게 적용해 자율배상할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여전히 배임 등의 리스크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일부 시중은행은 내부 의견 취합을 위해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가 예정돼 있는 이달 말까지 상황을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금융감독원 제공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사진=금융감독원 제공

‘0~100% 차등 배상안’ 제시한 당국

12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홍콩ELS의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한 일종의 투자자 대상 ‘배상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면서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은행권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진다.

일단 그간 나온 이복현 금감원장의 발언대로 투자자들이 원했던 일괄배상은 사실상 배제되면서 은행권에도 이번 배상안 수용을 위한 일종의 당근을 쥐여준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다만, 여전히 불완전판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자율배상이 자칫 배임 이슈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은행권에서도 여전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일단 이번 배상안이 나온 직후, 홍콩ELS를 주로 판매했던 시중은행들은 이번 금융당국의 배상안이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이 요구했던 일괄배상은 선택지에서 빠졌고, 나이‧투자경험‧투자 목적 등에 따라 0~100% 사이에서 차등 배상이 권고됐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라임이나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와 마찬가지로 판매사의 명확한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경우에는 100% 배상도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ELS상품 자체가 20년 이상 장기간 판매된 상품으로 설계상 문제가 없는 데다, 해외 주식시장을 100%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은 과거 사례와 다소 다른 점이다.

이에 따라 당국뿐 아니라 은행권 내부에서도 이를 근거로 이번 홍콩ELS 사태에서 100% 배상 사례가 나올 확률은 극히 드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원장 또한 “이번 ELS 손실사태의 특수성과 상품 특성, 판매채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거 사모펀드 사례에 비해 보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배상안을 설계했다”며 “이번 배상안을 근거로 분쟁조정 절차를 조속히 시행하고, 나아가 은행권의 사적화해(자율배상) 실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 사진=김병주 기자.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11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홍콩ELS 배상안 발표에 대해 "당국과 금융사, 투자자 간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사진=김병주 기자.

은행권 “자율배상, 여전히 쉽지 않아”

다만 은행권에서는 당국 배상안이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나온 건 맞지만 이를 받아들여 자율배상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입장이다.

일단 당국의 배상안을 받아들여 은행권이 자율 배상에 나설 경우, 이는 사실상 암묵적으로 은행이 홍콩ELS를 불완전판매했다는 걸 전제하는 셈이다. 만약, 향후 이번 투자금 손실 사태가 은행권과 투자자 간 소송전으로 이어질 경우 투자자들은 이같은 은행권의 ‘자율 배상’ 행위를 불완전판매의 근거로 거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은행권이 스스로 배상 비율을 결정해 투자자에게 ‘선(先) 배상’하는 것 자체가 배임 이슈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예를 들어 특정 투자자에게 원금의 50%를 선배상한 상황에서 이후 해당 투자자와의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 조정 결과 배상 비율이 30%로 결정될 경우 과지급한 20%의 원금을 은행이 회수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사다. 만약 은행이 최종적으로 20%의 과지급금 회수에 실패할 경우, 이는 실질적으로 은행에 재산상 손실 피해를 입힌 배임혐의 적용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역대급 실적의 영향으로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주주들의 요구가 그 어느 곳보다 큰 금융사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배임 혐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자율배상’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또한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홍콩ELS 배상안과 관련해 “당국과 은행, 투자자 간 소통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배상안은 이미 지주사나 은행 차원에서 공유가 됐고 이제 내부적으로 자율배상 관련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원론적 입장만 피력했다.

국내 주요 은행의 '스피커' 역할을 담당하는 은행연합회의 수장이 사실상 선배상에 미온적 반응을 보인 셈인데 은행권 전반의 분위기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금융권 주주총회 및 정기이사회에서도 홍콩ELS 자율배상안 수용 여부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주주총회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금융권 주주총회 및 정기이사회에서도 홍콩ELS 자율배상안 수용 여부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주주총회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주주설명에 별도 기구까지…바빠진 은행권

이번 금융당국의 배상안을 확인한 은행권에서는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는 내부 논의를 즉각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배임 등 민감한 이슈가 엮여 있는 상황인 만큼 충분한 의견 수렴, 그리고 자율배상 수용 시 부담해야 하는 비용 등 세부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본다는 입장이다.

홍콩ELS 판매사인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일단 업계 안팎에서 예상했던 수준의 배상안이 나왔고 이미 내부에서도 이를 공유했다”며 “배상위원회(가칭)과 같은 조직을 별도로 구성해 자율배상 시 연간 실적에 미칠 영향 등을 분석하는 등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 또한 데일리임팩트에 “금융당국이 자율배상을 행한 은행에 제재 감경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현재 당국과 은행권 간 관계를 고려하면 이를 100% 신뢰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불확실성이 큰 당국의 유인책만을 믿고 ‘선 배상’에 나섰다가 자칫 배임 이슈에 휘말리면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불거진 해외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과 중징계 철회 소송전을 진행했던 우리금융(손태승 前 회장)과 하나금융(함영주 회장)은 사건 당시 자체적으로 ‘자율배상’을 시행했던 바 있다. 사실상 자율배상을 했음에도 CEO 징계 등 핵심 제재에 대한 감경 혜택을 받지 못한 셈인데, 은행권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이번에도 재현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일단, 오는 18일 주요 은행장들로 구성된 은행연합회 이사회와 이 원장의 정례회의가 예정돼있다. 은행권에서도 남은 일주일 동안 업권 내 의견을 수렴해 이 원장에게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해당 회의와는 무관하게 은행별로 자율배상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선 배상’이 배임 이슈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절반 이상의 지분을 점유하고 있는 외국인 주주들 및 기관 주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일단 이달 말 지주사 및 은행 별 정기 주주총회가 예정돼 있어 성급하게 '선 배상' 여부를 결정하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은행권의 사적화해 조치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시행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