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기술신용대출, 연초 대비 3.4조원 감소
4대 시중은행은 '18조원 감소', 공급건수도 8만건 이상 '뚝'
역대급 폭증한 기업대출과 역행…은행권 "유동성 공급 지속"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지난해 국내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감소분을 상쇄하기 위한 기업대출 강화에 집중한 가운데, 기술력 기반의 혁신‧벤처기업 대상 마중물 공급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의 상생기조의 흐름을 타고 취약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늘렸지만, 정작 실제 자금이 필요한 초기 혁신 기업에는 오히려 유동성이 메말랐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업계에서는 자금이 필요한 중소벤처들이 전반적인 고금리 기조에 부담을 느끼고 대출 창구를 찾지 않은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리스크 관리의 목적으로 기술신용대출의 ‘담보’ 격인 기술신용평가(TCB) 기준을 높인 당국의 결정이 오히려 자금 공급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업계 안팎에선 현재 긴축 기조를 고려하면 이같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출금리 인하 등 중소벤처기업의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국내 5대 시중은행 사옥. 사진. 각 사.

연초 대비 뚝 떨어진 ‘혁신 마중물’

25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 은행권에서 공급한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310조3334억원으로 지난해 1월(326조9338억원) 잔액 대비 3조4000억원 가량 감소했다. 금융당국의 ‘상생압박’ 여파로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소 반등하는 흐름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연초 수준으로까지 회복에는 실패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공급 건수 역시 83만6300여건에서 74만17건으로 10만건 가까이 줄어들었다. 만기가 도래해 줄어든 대출 건수가 신규 공급된 대출 건수보다 많은데 따른 것이다.

특히 이러한 기술신용대출 공급 감소세는 가장 많은 대출을 공급하는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으로 비교 범위를 좁혀보면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국내 4대 시중은행이 공급한 지난해 11월 기준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154조832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월 기준 잔액(173조0778억원) 대비 18조2458억원 줄어든 수치다.

각 은행별로 살펴보면 가장 많은 기술신용대출을 공급한 곳은 43조5574억원을 기록한 신한은행이었다. 특히,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초 대비 1조원 가량 감소하는 데 그치며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작은 감소 폭(44조5928억원→43조5574억원)을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KB국민은행이 38조5034억원, 하나은행이 38조2156억원의 잔액을 기록했다. 각 행의 연초 대비 감소규모는 각각 4조8000여억원과 4조2000여억운 수준이다.

공급 규모가 가장 작은 곳은 34조5556억원을 기록한 우리은행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연초(42조6618억원) 대비 감소 규모가 약 9조1000억원으로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디자인=김민영 기자.
디자인=김민영 기자.

건전성 위기에 문턱 높아진 기술금융

이같은 혁신기업 대상 마중물 위축이 더욱 두드러지는 이유는 같은 기간 기업대출의 추세와 상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주요 시중은행은 공격적으로 기업대출을 확대해왔다. 고금리 기조 속,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인 가계대출의 부족분을 만회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기업대출 영업력 확대에 나선 결과다.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해 12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767조3140억원으로 전년 대비(703조6746억원) 63조6393억원 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692조4094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291억원 가량 감소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반된 흐름이 명확히 포착된다.

세부적으로 대기업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136조4284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30.9조원 가량 증가했다. 또 중소기업 대출(개인사업자 대출 포함)도 지난해 연간 32조6718억원이 불어나며 연말 기준 630조8855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물론 지난해 12월 기준으로는 전월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이는 계절적 요인에 기인한 결과로 전반적인 기업대출 확대 추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단행된 조직개편을 통해 영업력, 특히 기업금융 부문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찍은 변화를 일제히 도모했다. 이는 고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금리경쟁력에서 회사채 대비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업대출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예측에 대한 대응이다. 또 중소기업 대출 또한 우량기업을 발굴, 건전성을 담보하는 방식으로 대출 영업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대출 영업 강화도 중요하지만, 기업 대출 중심으로 치솟고 있는 연체율 등 건전성 리스크도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며 “특히 대기업 대비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 대상 대출은 심사나 관리·감독이 보다 더 철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은행권 “유동성 차질 없이 공급한다”

일단 은행업계에서는 당분간 기술신용대출을 포함한 중소벤처 및 혁신기업 대상 금융 공급이 경기침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신용대출 공급 심사에 필요한 TCB 기준이 보다 깐깐해진 데다, 대출 금리 역시 여전히 연 5%대 이상의 고금리가 적용돼 쉽사리 대출을 받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올해 주요 시중은행의 경영 화두로 떠오른 ‘건전성 관리’는 혁신기업 대상 유동성 공급을 위축시킬 핵심 변수로 거론된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은행권 내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49%로 전년(0.27%) 대비 0.25%p 확대됐다. 특히 중소기업을 포함한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 연체율도 각각 전년 동기 대비 0.19%p, 0.27%p 높아진 0.33%와 0.46%로 집계됐다.

특히, 올해는 대다수 은행이 그간 충당금 적립과 관련해 유지해 온 보수적 기조를 다소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충당금 적립 규모를 다소 줄이는 대신, 대출 심사 및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건전성 제고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술신용대출 공급 자체가 줄어든 것은 맞지만, 기타 중기 대출 상품은 공급을 유지했고 금리 인하 등의 지원도 확대됐다”며 “올해도 기술신용대출을 포함해 초기 기업, 스타트업 등 혁신기업 대상 유동성 공급은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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