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급증에도 '마중물' 기술신용대출 감소세
관계형금융도 문턱 높아…정책 확대 필요성 제기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최근 국내 시중은행들이 건전성 관리, 수익성 제고를 위해 기업대출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실질적 자금 확보가 절실한 벤처‧중소기업 대상 유동성 공급에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상생’, ‘포용’ 등을 앞세워 중견‧중소기업 중심의 대출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일성과는 달리 실제 이를 지원하는 ‘기술신용대출’ 공급 규모는 올해 들어 꾸준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업계에서는 여신 건전성 관리를 위한 불가피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관계형 금융 등 다른 방식으로 자금을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 은행권의 주장이다.

다만, 벤처‧중소기업 중에서도 초기 자금이 필요한 신생기업들의 경우 사실상 기술신용대출 외에 별다른 자금 확보 창구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관련 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자인=김민영 기자.
디자인=김민영 기자.

급증하는 기업대출, 중기대출은 ‘찔끔?’

22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기준 국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기업대출 잔액은 약 668조70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전년 말(646조1000억원) 대비 22조6000억원(3.7%) 가량 늘어난 수치다.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의 여파로 감소세를 이어가던 가계대출이 최근에서야 증가세로 전환된 반면, 기업대출은 올 초부터 꾸준히 늘어났다. 기업 유동성 공급을 지속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과 동시에 은행권에서도 가계대출 감소세를 상쇄하기 위한 공격적인 기업대출 영업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반 기업들 사이에서도 고금리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 보단, 이보다 다소 낮은 금리로 책정된 은행 대출 상품을 사용하는 것이 자금 조달에 좀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같은 여파로 유동성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이 쉬운 대기업들도 은행 대출 창구를 적극 노크했다.

실제로 지난 상반기 기준 전체 기업대출 가운데 대기업 대출 잔액은 127조9000억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539조8000억원 수준이다. 단순 총량으로는 중소기업 대출이 월등하지만 전년 말 대비 증가규모로 살펴보면 대기업 대출이 17조3500억원 가량 늘어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5조원 가량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같은 대기업 위주의 대출 공급 증가는 건전성 관리를 위한 은행권의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됐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고 상환능력이 좋은 대기업 중심의 대출 공급을 통해 이자수익 뿐 아니라 건전성 관리도 동시에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 공급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다. 물론, 실질적인 대출 공급을 제외한 △수수료 면제 △대출금리 인하 △이자 및 원금 일부 탕감 등 중소기업 대상 조치가 시행되기는 했다. 다만, 그럼에도 실질적인 대출 공급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았다는 점은 중소기업 대상 유동성 공급에 그만큼 소극적이었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연체율이 사실상 0%에 수렴하는 대기업 대출에 우선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 대상의 자금 공급도 지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디자인=김민영 기자.
디자인=김민영 기자.

감소세 이어가는 ‘혁신기업 마중물’

이처럼 중소기업 대출 공급이 감소하는 듯한 추이를 보이면서, 당장 사업 초기 또는 별도의 담보가 마땅치 않은 벤처 및 중소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상대적으로 건전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운 탓에 은행권에서 자금 공급에 인색한 때문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술신용대출’이다. 기술신용대출이란 기술력은 보유하고 있지만, 담보나 신용이 떨어지는 혁신·중소기업에 기술력 또는 지식재산권(IP)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대출 상품을 의미한다.

일반 신용대출 또는 중소기업 대출보다 금리도 낮아 성장잠재력은 높게 평가받지만, 아직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혁신 중소기업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기술신용대출은 지난 2014년 도입된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부동산PF 사태 등 최근 3년 사이 계속된 위기 속에서도 소폭이지만 꾸준히 대출 잔액과 대출 공급 건수 모두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고금리 기조 및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기술신용대출 또한 본격적인 감소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이같은 감소 기조가 더욱 두드러지는 추세다.

실제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국내 은행권 내 기술신용대출 잔액(누적 기준)은 306조3892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307조55억원) 대비 6100억원 가량 감소한 수치다.

공급 건수도 감소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기술신용대출 공급 건수는 74만4744건으로, 전월 말 기준 공급건수(74만9679건)보다 5000여건 가량 줄었다.

특히 은행권 내에서도 기술신용대출을 가장 많이 취급하고 있는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기술신용대출 잔액도 줄어들었다. 지난 7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대출 잔액은 152조9232억원을 기록, 전월 말(153조741억원) 대비 1500억원 가량 감소했다.

공급 건수 또한 지난 7월 말 기준 37만1221건 수준을 기록했는데. 이 역시 전월 말(37만4042건) 보다 2800여건 정도 줄어들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기술 등 무형의 담보로 대출심사를 해야 하는 만큼 건전성 관리를 위해 기술신용평가(TCB) 발급 기준을 한층 강화하는 등 심사 문턱을 높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는 기술신용대출을 취급하는 모든 은행들이 갖고 있는 공통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혁신 중기’ 자금 공급 지속돼야

일단 은행업계에서는 기술신용대출이 감소한 건 맞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들 벤처 및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꾸준히 유동성 공급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관계형 금융’이다. 관계형금융이란 은행이 자체적으로 계량 또는 비계량 정보를 종합 평가해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대출 상품이다. 특히 신용도가 낮고 담보가 부족한 기업들도 향후 비전에 대한 평가를 통해 3년 이상의 장기 대출, 경영자문 서비스등을 제공해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기준, 관계형 금융 잔액은 15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말(14조4000억원) 대비 9000억원(6.3%) 가량 증가했다. 개인사업자 대출(+7000억원), 중소법인 대출(+2000억원) 모두 늘어나며 관계형금융 상품에 대한 높은 관심도 확인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관계형금융 상품을 취급하는 은행과 최소 2~3년 이상 거래관계를 유지해온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출이 공급되고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실질적인 초기 기업들은 관계형금융 상품 또한 공급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직접 관계형상품 실적을 공시하고 취급 은행 중 ‘우수은행’을 선정하는 등 당국의 관심도 기술신용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계형금융에 쏠려있다”며 “다만, 기술신용대출의 경우에도 건전성 우려가 다소 해소된 이후에는 증가세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